인종 갈등을 달달하게 녹여낸 영화, <도그 D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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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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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과 유대인이 함께 만드는 빵집, 대박의 비밀은?
런던의 서쪽, 유대인 빵집 주인 냇(Nat)은 가게를 넘기라는 인근 대형슈퍼 사장의 압박이 심해지는 가운데에도 꿋꿋하게 선조의 가업을 이어간다. 그는 노쇠한 몸을 이끌고 오늘도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서 율법에 따라 기도를 들이고 정성스레 빵을 만든다. 변호사로 성공한 하나뿐인 아들은 아버지의 바램과 달리 낡은 변두리 가게의 존재 자체가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냇이 모든 기술을 전수해줬던 조수가 갑작스레 가게를 그만 둔다. 알고 보니 이는 대형슈퍼 사업가의 농간이었고, 냇은 하루빨리 조수를 구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린다.
그 때 아야쉬(Ayyash)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가게로 들어온다. 아프리카 무슬림 청년인 아야쉬는 다르푸르의 내전이 악화되자 엄마와 함께 영국행을 택했던 것. 그러나 바로 따라오겠다던 아버지는 소식이 없고, 엄마가 밤낮 일을 해서 입에 풀칠은 하지만 지붕에서는 오늘도 물이 샌다. 이민자 소년에게 백인 마약업자는 끊임없이 유혹의 손을 뻗친다. 현재의 가난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아야쉬는 냇의 빵집에서 제빵을 배우기 시작함과 동시에 마리화나 가루를 팔기 시작한다. 그것도 빵집에서. 온갖 요상한 복장을 한 젊은이들이 이 가게를 찾아오는 이유를 주인인 냇은 알 리가 없다. 하물며 그들이 빵만 찾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던 어느날, 마약 소지 사실이 들통날 뻔한 아야쉬는 마리화나 가루를 신나게 돌아가고 있던 빵반죽 기계에 넣고 만다. 하지만 웬일인가. 그렇게 만들어진 빵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가면서 빵집은 그야말로 ‘대박’이 난다. 이때부터 아야쉬는 빵 반죽(이 영화의 제목인 dough)에 계속해서 이 마법의 가루를 첨가한다. 물론 빵집 신화의 비밀은 오래지 않아 드러나고, 이로 인해 냇은 평생 지켜왔던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아야쉬와의 관계도 금이 간다. 그리고 이를 빌미 삼아 야심찬 사업가는 냇의 목을 점점 죄어온다. 이제 빵집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 갈곳 없는 아야쉬는 마약업자에게 쫓기는데…
잠깐. <도그 Dough>의 쫄깃쫄깃한 줄거리는 여기까지만이다.
그러나 안심하시길. 여기서 밝히지 않은 클라이맥스 이후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지하다.
헐리우드 액션영화나 한국의 막장 드라마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거나 우리를 깜짝 놀래키는 반전은 없지만,
모든 갈등은 영화 속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되며 밉지 않은 악당들 역시 그만큼의 벌을 달게 받는다. 권선징악? 그렇다.
이 영화는 ‘그 후로 모두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어릴적 동화를 닮았다.
종교, 인종, 계층, 세대간 갈등 등 현대 유럽 사회가 당면한 모든 갈등의 요소들을 촘촘한 플롯 안에서 케잌 속 재료들처럼 잘 배합해 놓은 성인용 동화라 할 만하다.
이 성인용 동화에서 가장 솔직한 이들은 바로 젊은 세대이다. 엄마로부터 유대인 빵집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아야쉬는 말한다. “헉, 유대인은 빵에 사람 피를 넣는다던데…” 그리고 근무를 시작한 다음날 주인이 출근하기 전에 부엌에 들어가 빨간 액체를 직접 혀로 맛본다. 또 다른 에피소드. 아야쉬가 출근해서 아침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냇의 손녀딸인 올리비아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묻는다. “이 양탄자 타고 주문 외우면 날 수 있어요?” 그러나 아야쉬와 올리비아는 편견의 장벽을 가장 먼저 뛰어넘어 소통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대도시의 테러에 대한 공포가 만연한 이 시대에 비추어 보면 너무 순진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첨예한 전선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순진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 속을 파고든다. 그리하여 민족간 인종간 종교간 갈등이 실은 선조들에게서 대물림
된 편견과 공포라는 유산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능청스럽게 보여준다. 그 편견이 얼마나 허무맹랑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인간을 중시하는 인본주의(humanity)만이 해결책이라는 것을. 영화를 보고 나서 가슴 한 켠에 뭉글거리며 올라오던 그 따뜻한 무엇이 작은 시작이라는 것을.
<파리광장 / 조미현 gitanc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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