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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아줌마 단상] 눈 보기 힘든 파리에 눈이 내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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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과 불만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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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을 시작하는 첫 주인 1월 5일 월요일에 눈 보기 힘든 파리에 많은 눈이 내렸다.

약속이 있어 외출했다가 들어오려고 보니, 차에는 눈이 수북히 쌓여있었고, 거기에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낙서를 해 놓았다. 자세히 보니 지나가다가 눈이 두텁게 쌓여 있는 차를 그냥 넘기기가 아쉬웠는지 두 사람의 이름과 함께 둘레에는 큰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재미있게 볼 여유를 가질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 덮인 차를 몰고 집에 갈 생각에 심란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 덮인 파리의 풍경은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한 건물 창에서 흘러나오는 오렌지빛 조명과 펑펑 내리는 하얀 눈 덕분에, 눈 내리는 파리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제설차는 고사하고, 눈 덮인 파리 도로는 차들이 기어가고 있는데, 쓰레기 수거차까지 있어 길을 막고 있었다.


차가 길에서 몇 차례 흔들리며 미끄러지는 바람에 식겁했다. 보통 30분 정도면 도착할 거리인데, 네비에서 1시간이 넘게 나온다. 큰 일 앞에 서고 나서야, 그동안 내뱉어 온 불평들이 얼마나 배부른 투정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고, 평소 차 밀린다고 한숨 쉬며 투덜거리던 ‘나’는 온데간데 없고, 1시간이 걸리든 2시간이 걸리든 무조건 무사히 집에 갔으면 싶었다. 그런데 미끄러운 도로에 하필이면 큰 트럭만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어서 많이 불안했다. 

이날 집으로 오는 길에 내가 낸 최고 속도는 20km, 보통 7,8km를 차 계기판이 기록하고 있었다. 서행한다고 뒤에 있던 성질 급한 운전자가 클랙슨 울리는 일은 없어 다행이기는 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파리 교통공사는 대중 교통 버스 운행을 중단했고, 버스를 기다리던 이들은 다른 방법으로 목적지로 가야만 했다. 파리 지하철 6번선 또한 운행을 중단하는 바람에 귀가하던 작은 아이는 다른 방편으로 둘러서 왔고, 파리 지하철 8번선 또한 눈으로 인한 운행 장애로 눈 내리고 있는 철로에서 승객들이 모두 내려야만 했다. 이날 파리 및 일드프랑스에는 1,000km가 넘는 교통 정체가 발생하면서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프랑스 교통부 장관은 파리 시민들에게 외출을 자제할 것과 재택 근무를 권했고, 5톤 초과 화물·위험물 차량은 일드프랑스 전역에서 운행이 금지됐으며, 항공편은 15% 감축되었다. 일부 지역 통학 교통이 중단되는 등 프랑스의 여러개 주가 눈과 결빙 황색 경보에 들어갔다. 


어쨌든 나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눈 쌓인 거리를 조심스레 걸으며, 발자국을 뗄 때마다 들려오는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참 좋았다. 마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소환되는 듯했다.


슈퍼마켓의 진열대가 텅텅 비어 있어

눈은 그 다음날 멈추었다가, 이틀만에 다시 많이 내렸다. 그날 오후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갔다. 다시 눈을 밟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슈퍼마켓의 과일 야채 진열대가 텅텅비어 있는 것이다. 혹시 눈으로 인해 대형 화물차 운행 금지 때문인가 싶어 직원에게 물어보니, 아니나다를까 ‘눈 때문’이라고 한다.

계란 진열대도 텅텅 비어있고, 슈퍼마켓에 사람이 없었다. 파리에 눈이 내리니 거의 국가 재난 수준으로 마비가 된 것이다.


하지만 요즘 SNS에 올라오는, 지난 눈 쌓인 파리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눈으로 인해 감수해야 했던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음이 후회될 만큼…

그렇게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파리에 내린 눈으로 인해,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기며 느낀 만족감과 눈 때문에 감수해야 했던 불편함 사이를 오가며 지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삶이란 결국 그 두 감정의 균형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면서, 불만 보다는 만족을 발견하는 법을 배운 새해의 첫 장이었다.

 

<파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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