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일의 한국 영화 이야기] 나운규의 영화 '신라노(新羅老)'와 반전된 시라노
작성자 정보
- 최고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0 추천
-
목록
본문

『태풍(Le Typhon)』의 분장 사례.
출처: Fonds photographique de l’Association de la Régie Théâtrale
중국과 일본이 크게 한 판 붙을려는 듯 연일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전차안에서도 프랑스인들이 중국과 일본을 이야기한다. 내 얼굴을 보고는 잠시 놀라 하던 이야기의 화제를 돌리기도 하지만…'극동'을 향한 서구의 상상은 어떻게 발현되었을까?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세기 초 파리 무대로 시선을 옮겨보자.
당시 파리의 여러 극장들은 이국적 환상을 소비하는 ‘테아트르 에그조틱(théâtre exotique)’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이 극장들은 실제 지리적 맥락과는 동떨어진 먼 나라의 풍경을 무대 위에 재현했고, 배우들은 눈꼬리를 짙게 찢어 그린 분장과 과장된 의상을 통해 동양인을 흉내내곤 했다. 그 무대 속의 동양은 현실의 아시아가 아니라, 서구의 상상과 욕망이 만들어낸 환영이었다. 이러한 작품들 중 하나인『태풍(Le Typhon)』 은 일본의 강력한 군국주의의 욕망 그리고 그 무서운 전파력와 세계와의 충돌을 다룬다. 무대는 파리이며, 주인공인 젊고 야심찬 일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1911년 사라 베르나르 극장에서 48회 공연되며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또 다른 작품인『메뚜기들(Les Sauterelles)』 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를 배경으로, 프랑스 식민지 거주자들이 중국 이민자들로부터 경제적 지배력을 빼앗기는 과정을 그린다. '메뚜기들'로 비유되는 중국인들은 프랑스 엔지니어 몽-클라르(Mont-Clar)를 비롯한 식민지 프랑스인들의 입지를 체계적으로 무너뜨리는 냉혹한 사업가들로 묘사된다. 이 드라마는 식민지배국으로서의 경제적, 문화적 우위를 중국계 이주민들에게 잃을지도 모 른다는 프랑스 사회의 불안감을 반영하는 서사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1911년 12월부터 1912년 1월까지 보드빌 극장에서 23회 공연되었다.
위의 사진은『태풍(Le Typhon)』에 출연한 프랑스 배우 에두아르 드 막스(Edouard de Max)가 일본인 역할을 맡으면서 한 분장을 보여준다. 이 분장은 당시 프랑스 무대에서 동양인을 재현하기 위해 사용했던, 눈꼬리를 강조하는 과장된 방식(yellow-face 분장)을 보여주며, 서구의 극동지역의 상상력을 반영한다.

일본 순사와 결투하는 듯한 이미지의 나운규. 출처 : 한국영상자료원
그런데. 지구 반대편 한반도. 한국 내셔널 시네마의 출현을 알린 1세대 영화인 나운규가 파리에서 하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자신을 분장하여 무대에 등장한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코가 크고 서구적인 얼굴로 분장한 채 ‘서양 남자’로 나타났다. 파리의 배우들이 동양을 상상속에서 재현하는 반면 이 극동의 한반도 영화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고 또 다른 타자의 얼굴로 등장했다. 이렇게 한반도의 관객들은 파리의 이국적 근대 연극인 테아트르 에그조틱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의 근대 공연을 극장에서 경험하게된다. 그들은 서울의 단성사라는 극장에서 아마도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한 번도 방문하지 못할 수도 있는 먼 나라로 관객석의 안락 의자에 앉아 떠나는 여행(voyage dans un fauteuil)’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당시 한반도를 포함한 극동 지역에서는 ‘키노 드라마’라 불린 잡종적 영화 상영 양식이 있었다.
무성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실제 배우가 스크린 뒤편에서 나와 연기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영화와 연극이 섞인 과도기적 상영방식이었다. 나운규는 이러한 장르 안에서 자신의 초기 영화들의 시나리오, 연출, 주연을 모두 맡는 전천후 창작자였다. 그러나 그의 창작 활동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기와 겹쳤고 그래서 늘 식민지 권력의 감시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일제 강점기의 검열과 경찰 통제 때문에 그는 ‘감독’이라는 이름을 온전히 사용할 수 없었고, 자신이 창 작한 작품임을 드러낼 권리조차 박탈당했다. 바로 이 억압된 상황 속에서,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쌓여 있던 욕구와 무의식은 어느 순간하나의 인물로 폭발하듯 표면화된다.
나운규는 신작 신라노(新羅老)로 관객과 만나다. 신라노…신라의 신사는 도대체…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은 다름 아닌 프랑스의 문학 작품, 에드몽 로스탕(Edmond Rostan) 의『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Cyrano de Bergerac)』였다. 시라노는 탁월한 문장가이자 검객이지만, 스스로의 외모 특히 크고 우스꽝스럽다고 여겨진 코 때문에 사랑을 당당히 고백하지 못한 채 타인의 이름 뒤에 숨어 글을 대신 써주는 인물이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글을 쓰는 사람’, 바로 이 모티프는 식민지 조선에서 자신의 이름을 숨겨야 했던 나운규의 처지와 기묘하게 겹쳐진다. 이렇게 나운규는 반전된 시라노가 된다. 시라노가 자신의 재능을 타인의 이름 뒤에 감추었다면, 나운규 신라노는 식민 권력의 강요로 자신의 창작성을 지워야 했다. 알지도 못하는 일본사람의 이름을 감독 타이틀로 올리면서 그는 이렇게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 작품을 쓴 사람은 바로 나라구!
전차에 탄 사람들이 나의 눈치를 살피며 물어보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당신은… 일본사람? 중국사람 ?
-나 ? 한국사람이라구.
<강창일>

파리 8대학 연극영화 박사, 파리 10대학 비교문학 연구자, 무성영화 변사. 프랑스 방방곡 곡을 누비며 강연회와 상영회를 통하여 한국영화를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 »(Ocrée Editions, 2021), «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Ocrée Editions, 2023)가 있다.
관련자료
-
다음
-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