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칼럼 분류

파리에 살아야 할 몇 가지 이유 Ep.37 <Bonjour, 알고리즘>

작성자 정보

  • 최고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918a0e37f7fb9c863c1eb146e1a88dbd_1762790724_7994.png
 

프랑스에 온 이후, 어쩌면 이번 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그건 매일 이어지는 인공지능과의 대화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전기와 스마트폰이 그랬듯, 다시 한 번 인류의 일상을 바꾸어 놓을 문명의 변곡점을 목격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자신의 이름 석자, 알파고(AlphaGo)를 널리 알린 것은 2016년 우아하고 창의적인 수로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했을 때였지만, 사실 우리는 그보다 오래전부터 인공지능을 함께 길러왔다. 웹 페이지에서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신호등이나 고양이가 있는 이미지를 골라내는 캡차(Captcha) 테스트를 통과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인공지능의 인식 능력을 성장시키기 위한 일종의 공동 육아였다. 비록 인간의 뇌보다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가졌지만 이미 방대한 데이터를 흡수한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때로는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특히 ChatGPT처럼 생성형 인공지능이 수십 개 언어로 유려하게 쏟아내는 대답에 파묻혀 있다 보면, 문명의 이기를 향한 감탄과 일자리 종말에 대한 불안감이 동시에 찾아온다. 


인공지능은 알고리즘을 한다, 고로 존재한다. 우리가 인공지능이라고 부르는 것은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알고리즘들의 집합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리즘을 사용해 왔다. 구글 지도에서 두 지점 사이의 최단 경로를 찾을 때나 데이팅 앱에서 운명의 짝을 추천받을 때처럼. 알고리즘 자체 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알고리즘이란 단지 모호하지 않게 적힌 일종의 절차, 레시피일 뿐이다. 크레페를 구울 만큼 단순할 수도 있고, 인류를 화성에 착륙시킬 수 있을 만큼 복잡할 수도 있다. 여러 알고리즘을 층층이 쌓아 서로 학습하도록 만든 것이 인공신경망이고, 그 층이 깊어질 때 우리는 그것을 딥러닝이라 부른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얼마 전 ChatGPT의 CEO 샘 알트먼조차 "ChatGPT가 내부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 는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의 학습은 끊임없이 그리고 탐욕스럽게 데이터를 요구한다. 지난 십수 년 동안 축적된 우리의 데 이터는 인공지능이 한계를 뛰어넘을 유일한 재료이자 동시에 그 한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생성형 인공지능의 답변 속에는 간혹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이나 편향, 불평등이 그대로 담겨있다. 인공지능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 않는다. 우리가 보여준 세상을 그대로 반복할 뿐이다. 


 ‘미국이 창조하면, 아시아는 모방하고, 유럽은 규제한다’는 오래된 클리셰가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반복된다. 데이터 경쟁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과 생성형 인공지능 기업들은 대부분 미국 중심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문화 덕분에 결과적으로 매우 잘 작동하는 모델을 손에 넣었다. 중국과 한국은 이 격차를 좁히기 위해 인공지능 인프라에 정부 차원의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지만, 인공지능의 운영 능력을 키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모델의 구조나 패러다임을 주도하기는 어렵다. 한편 유럽은 이 현상을 통제하고, 보호하고, 숙고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유럽은 이미 개인 데이터가 무한히 추적·수집되는 것을 막기 위해 GDPR(개인정보 보호 일반 규정)을 만든 바 있다. 지금은 그 연장선에서 '어떤 조건 아래에서 인공지능을 써야 하는가'에 관한 규정(AI Act)에 열을 내는 중이다. 오늘날 우리가 만든 도구는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고 다루는 능력보다 더 빠르게 진화한다. 인공지능은 그 가속화 현상의 정점일 것이다. 교육, 정치, 도덕 등은 여전히 인간의 속도로 움직이지만 기술은 알고리즘의 속도로 발전한다. 그러나 빠르게 생각하는 것이 곧 잘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인공지능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마저 기계에 위임한다면 결국 인간성 또한 위임하게 될 것이다.



<윤영섭 0718samo@gmail.com>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