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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파리광장 답사기- 소르본 광장 (Place de la Sorbonne), 여덟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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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앞 분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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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교육의 장단점 등을 이해하기 위하여 한국의 한 교대에서 일하고 있는 관계자들이 연수를 오는데 그 일환으로 프랑스를 방문하게 될 예정이며 파리대학의 방문을 원한다는 내용의 연락을 받았다. 구체적 희망 방문지는 파리 5구에 위치한 소르본 대학. 


학교에 연락하여 방문 날짜와 시간을 확정했다. 만남의 장소는 학교의 정문 앞 소르본 광장. 조그만 분수가 있는데 그곳으로 담당 교수가 나오겠다고 한다. 미팅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분수대에서 좌우를 두리번거린다. 누군가 커피 한 잔을 시키고 과제를 살피고 있으면 어느새 이놈 저놈 주위로 몰려들어 다양한 화제로 시끌벅적한 참새 방앗간이 되어버리는 담뱃가게 카페 (Tabac de la Sorbonne)가 아직까지 건재한가를 확인한 나는 그 뒤에 있는 큰 상점으로 눈을 돌려 이번에는 또 뭐 하는 가게로 바뀌었는가? 하고 궁금한 눈초리로 작은 눈을 더 크게 떠본다. 


그 자리에 서울 종로서적의 규모에 해당하는 서점이 있었다. 책이 하도 이뻐서 사지는 못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던 나는 

-아니 양심이 있어야지. 말이야. 이렇게 멋들어진 제목과 표지로 유혹을 해버리면…어쩌라고. 이건 또 도대체 뭐야! L'Abécédaire de Gilles Deleuze?


이 스타 철학자와의 8시간짜리 대담을 녹화하여 이 서점에서 판매를 하 다니. 이건 반칙이야. 포장까지 이렇게 간지나게……나는 중얼거리며 그들을 저주하곤 하였다. 알바를 뛰어 결국 사버린 이놈의 대담 녹화본은 질문자가 A comme Animal이라 물으면 Deleuze가 Animal에 대하여 본인이 아는 모든 지식의 설을 풀어놓는 그야말로 철학자의 말 잔치이다. 


참고로 질문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A comme Animal. B comme Boisson. C comme Culture. D comme Désir…… 무척 신선한 기획이었는데 사실 아주 전통적인 방법의 변형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플라톤의 철학은 그의 « 대화 »로 유명하고 (Les dialogues de Platon) 동양의 대표주자 공자선생의 논어는 프랑스어로 하 자면 « 공자와의 인터뷰 » (Entretiens de Confucius)이다. 그런데 질문자가 정치와 사회를 직접 묻지 않고 P comme Professeur 라고 질문한다거나 S comme Style이라고 질문한 것은 무척 영리한 선택이었다. 어차피 이 고집쟁이 철학자는 그만의 시각과 희한한 어법으로 요기 조기서 정치와 사회에 대한 설을 푸실테니까. 


아. 그런데 이후로 이 서점은 뜻밖에도 나이키 매장이 되었다. 프랑스까지 도착한 랩 문화의 영향인가 ? 암튼 이것은 MC Solaar 라는 랩퍼 (Rappeur)가 프랑스 가요시장을 바꾸고 난 이후의 풍경이었다. 지금은 영혼 없는 대형 체인점 카페가 들어서 있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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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ww.lelombard.com


담뱃가게 카페 (Tabac de la Sorbonne) 건너편에 조그만 골목이 있고 그곳은 천재 학자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 (1790-1832)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거리 Rue Champollion. 나는 이곳을 바라보며 이 골목길과 인사한. 파리 시내 한복판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이 조용한 골목은 미래 프랑스의 운명을 좌우할 젊은이들이 나치 독일에 대한 저항운동인 레지스탕스 활동을 전개한 아지트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들 중에는 인근에 위치한 사범학교(École normale supérieure de la rue d'Ulm) 학생으로 라틴어 경시대회 상을 모두 싹쓸이하고 철학 논문을 준비 중이던 모리스 클라벨(Maurice Clavel)이란 젊은이가 있었다. 


앞을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팽글팽글 도는 최상위 돗수의 안경을 착용한 22세의 클라벨은 자신의 메루치 같은 연약한 육체와 파릇한 새싹과도 같은 청춘을 걸고 이 좁은 골목에서 전투작전을 계획하고 무장투쟁의 선봉에 서게 된다. 정의로운 사회라는 것은 추상적인 측면이 있다. 예술과 교육과 복지의 개선과 그 말 많고 탈 많은 법률의 전문가 등이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 나가는 사회가 있다면 이는 지나친 이상일까? 그런데 나는 이러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한국의 한 작은 마을을 알고 있다. 몇 년 전 이분들이 파리를 방문하 게 되었고 나는 아무런 이유 없이 이 작은 골목에 있는 조그만 여관에 그분들의 숙소를 예약한 기억이 있다. 어쩌면 청년 모리스 클라벨과 이 분들의 젊은 날 사이에서 어떠한 유사점이 있다는 무의식이 작동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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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일>

파리 8대학 연극영화 박사, 파리 10대학 비교문학 연구자, 무성 영화 변사. 프랑스 방방곡곡을 누비며 강연회와 상영회를 통하여 한국영화를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 »(Ocrée Editions, 2021), «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Ocrée Editions, 2023)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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