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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파리광장 답사기- 소르본 광장 (Place de la Sorbonne), 일곱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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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과 <마농의 샘, Manons des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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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농의 샘> 주제가와 예고편 표지                                   이미지 출처: L'adrc


소르본 광장에서 뤽상부르 박물관(Musée du Luxembourg) 방향으로 향해 달달이 디저트를 파는 찻집 안젤리나(Angelina)에 도착했다. 이곳은 1903년부터 장사를 시작했다고 홍보하는데 파리의 화려한 시절 벨 에포크(Le Paris de la Belle époque)를 강조한다. 그때라면 한반도가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내건 시기. 고종황제가 앉아 있어도 어울릴 것 같은 곳이다. 암튼 이곳은 봄에 가면 좋다. 과자 구경도 하면서 만날 친구를 기다리려는데... 에고. 이 가게가 오늘 문을 닫았다. 아직 봄이 멀었나보다. 


잠시 후 남불의 시골서 온 필립을 만났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인지도 모르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오래 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둘 다 군대를 막 다녀온 예비역이었고 당시 필립은 자신이 군악대 출신임을 자랑했다. 


-필립: 아따, 거, 군악대가 얼매나 빡센지 알랑가 모르겄구만.

-나: 머라카노, 이 땡깡 당나라 군바리. 내는 야 군대 얼라의 꽃, 대수송부 출신 아이가. 


이렇게 예비역들은 지역과 국가를 불문하고 군대 이야기를 하며 논다. 필립은 배우 다니엘 오퇴유(Daniel Auteuil)를 떠올리게 한다. 아니, 꽤 그를 닮았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필립의 남불 사투리가 영화 <마농의 샘 (Manon des sources)>에서 등장하는 위골랭(Ugolin)과 매우 흡사하다. 배우에게는 인생 최고의 역할을 연기할 기회가 되는 영화가 있다. 다니엘 오퇴유에게 있어 그의 배우 인생을 통털어 아마도 최고의 순간은 <마농의 샘>에서 위골랭을 연기한 때일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의 감독을 처음 만났던 때를 회상한다.


-감독님이 저를 처음 본 순간, 다니엘, 너는 너무 잘생겼어, 라고 하더라구요. 나보고 너무 잘생겼다니 ...저는 당황했죠.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저는 프랑스 남부의 시골 농부 위골랭이란 인물에 대해 연구하면서 감독님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일 년에 한 번 씻을까 말까 하는 꾀죄죄한 외모에 멍청한 시골농부 위골랭을 연기한다. 그런데 눈만은 빛난다. 이브 몽땅(Yves Montand)과 제라르 드빠르디유(Gérard Depardieu)라는 쟁쟁한 초대형 배우들 사이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빛을 발한다. 


프랑스 남불의 대문호 마르셀 파뇰 (Marcel Pagnol) 선생은 <마농의 샘>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참이다. 요렇게.


-내캉 프랑스 극작이 얼매나 대단한지 함 똑띠 보여줄끼다! 


아니. 아니다. 어쩌면 요렇게?


-나가 말이시. 우리 프랑스으 글쓰기가 얼마나 겁나 죽여주는지 똑똑히 보여줄팅게! 


프랑스 남불의 사투리는 지리적으로는 부산, 음성적으로는 목포 지역과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사투리는 구수한 말맛이라는 풍부한 언어적 경험을 하게 한다. 이 구수함을 지나면 우리는 가슴 속 깊은 어떤 곳을 후벼파는 마르셀 파뇰 선생 '표' 극작의 처절하게 날 카로운 비수와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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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농의 샘>에서 열연 중인 배우, 다니엘 오퇴유(Daniel Auteuil)  이미지 출처: L'adrc


간략 줄거리: 때는 1차 세계대전 직후. 프로방스에서 우골랭이 카네이션 재배를 계획하고, 삼촌 세자르가 그를 도와주기로 한다. 땅 주인이 사망한 후 상속받은 남자가 이사 오자, 세자르와 우골랭은 샘을 막고 그를 고립시켜 농장을 망하게 한다. 


영화란 보는 이마다 반응도 다른 법. 어떤 이는 이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와! 너무하네, 이거. 시골 텃세가 장난이 아니고만. 귀촌할까 생각해 봤는데 안되겠네.


진한 사투리를 쓰는 필립의 고향 보클뤼즈 (Vaucluse)는 프랑스에서 오늘날 가장 텃세가 심한 지역이라고들 한다. 이들은 외지인들, 아니 외국인들이 정착하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가난해서일까? 그들이 부자여서일까? 어쨌든 이러한 분위기는 정치적 텃세로 부풀어 올라 극우라는 댐으로 샘을 막는다. 뉴스는 연일 독일에서도 미국에서도 여기서도 저기서도 선전하는 극우정당 소식을 실어 나른다. 남불에서 온 촌놈 필립은 의외로 김치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날 식당에서 김치를 계속 주문했다. 필립은 본인이 직접 돼지 고기로 만든 파테(pâté)를 선물로 들고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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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일>

파리 8대학 연극영화 박사, 파리 10대학 비교문학 연구자, 무성영화 변사. 프랑스 방 방곡곡을 누비며 강연회와 상영회를 통하여 한국영화를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 »(Ocrée Editions, 2021), «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Ocrée Editions, 2023)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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