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이자 배우, 리디 솔로몽(Lydie Solo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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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뿌리가 중요해요’
-프랑스 어린이들에게 ‘심청전’ 들려 주기도
<파리광장>과 인터뷰 중인 리디 솔로몽(Lydie Solomon)
얼마전 전시 오프닝에서 한 엄마가 프랑스 아이들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하길래 주목해 보았다. 분명 한국말이었다. 알아 보니 엄마가 한국인이라는 아이들의 엄마는 « 저에게는 한국의 뿌리가 정말 중요해요 »라며 유창한 한국말을 한다. 아이들의 엄마는 프랑스에서 피아니스트이자,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리디 솔로몽(Lydie Solomon).
그녀는 15세에 프랑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음악무용학교인 파리국립고등음악무용원(CNSMDP)에 입학하여 18세에 최고 성적(Mention Très Bien)을 받고 졸업해서 피아니스트로, 그리고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리디 솔로몽(Lydie Solomon)의 유튜브 계정의 한 동영상에는 한복을 입고, 프랑스 어린이들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면서 <심청전>을 독백극처럼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삶을 보면 피아니스트에 머무르지 않고, 경제, 문학, 철학 등 다방면으로 자신의 역량을 넓혀갔다. 한 세계에만 잡혀 있으면 전문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쉽게 이기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사회의 다양한 분야들이 자신들의 전문성에만 매몰되어 있지 않고 소통하며 나아갈 때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녀의 이 같은 가치관은 어린 나이에 최고의 음악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앙리 IV(Henri IV) 그랑제꼴 준비반, 그리고 유명 상업 그랑제꼴인 에섹(ESSEC MBA), 그리고 연기 학교인 쿠르 플로랑(Cours Florent)을 거치게 했다. 10살, 4살, 1살 세자녀의 엄마이기도 하며, 자녀들에게 한국말과 문화를 심어주고 있는 리디 솔로몽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본인 소개 해 주세요.
-저는 리디 솔로몽으로, 오늘 10월11일 43살이 됩니다. 파리에서 태어났고요, 저의 어머니는 한국분이시고요. 아버지는 프랑스분이세요. 저는 태어나자 마자 모국어가 두 개 였는데, 어릴 때는 한국말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 딸이 태어났을 때 한국 뿌리와 문화가 저한테 중요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다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10년 되었어요.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한국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게 좀 신기하네요.
-이게 피아노하고 똑같아요. 혹시 프랑스의 유명한 만화인 "아스테릭스와 오벨릭크(Astérix & Obélix)"이야기를 아시는지 모르겠지만요. 거기에 ‘마약의 물약(Potion magique)’이 있어요. 싸울 때 힘이 쓸려면 이 물약을 먹어야 해요. 그런데 오벨릭스는 안먹어도 돼요. 왜냐하면 태어날 때 마약의 물약이 있는 냄비 안에 떨어진거에요. 그때 너무 많이 먹은거에요. 그렇기에 그 물약이 얼마나 귀중한 건지 몰라요.
저는 피아노와 한국말이 그랬어요. 그게 얼마나 귀중한지 모르고 있었어요. 아마 노력을 많이 안한 것 같아요. 피아노는 재능이 있어서 어렸을 때 그렇게 많이 연습하지 않았어요. 한 피아노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재능을 많이 받을수록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요.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더 노력해야 된다고요. 그 선생님은 철학, 수학 등 다양한 인문학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고, 잘 하세요. 피아노를 배우면서 작곡도 하고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피아노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도구에요. 목적은 아니에요. 목적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도우는게 목적이에요.
피아노는 몇 살 때부터 시작했어요?
-2살 때부터 했어요. 어머니가 한국에서부터 너무 피아노가 치고 싶었는데, 그럴 상황이 못 되었데요. 피아노는 어머니의 꿈이었어요. 제가 2살 때 베토벤 곡을 듣고 피아노로 쳤어요. 그때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부모님이 제가 5살때 파리의 유명 음악학교인 <L'École normale demusique de Paris - Alfred Cortot>에 등록했어요. 5살 입학이 너무 어려서 자격이 안되었는데, 특별 케이스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모든 게 어린 나이에 빨리 이루어져서 제가 피아노를 좋아하는지, 저의 선택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조금 전에 오벨릭스 이야기를 한거에요.
리디 솔로몽, 호텔 마르셀 다소 (Hôtel Marcel Dassault) 연주에서
한국에서도 연주를 했다고요?
-네. 금난새 지휘자님하고 몇 번 공연했어요. 2017년에 오페라 가수와도 연주했고요. 그때 <심청전>이야기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2007년부터는 프랑스에서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2009년에 <Vivre !> 라는 영화에 출연했는데, 저의 첫 역할이었는데, 혼혈 피아니스트역이었어요. 저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고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로 만들었어요. 광고 모델로도 활동 했어요. 한국에 가서 심청전 이야기를 발견했을 때, 피아노 치면서 연기하듯 하면 되겠다고 싶었어요. 프랑스에 돌아와서 음악을 좋아하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옹플레이(Michel Onfray) 하고 함께 철학과 음악이 합쳐진 공연을 했어요. 그때 연주 테마는 자유롭게 해라고 해서, 아이들에게 <심청전>를 알려주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심청전 이야기를 너무 좋아했어요. 심청전에 대해 많이 질문도 하고요. 한국 단어도 배우는 등 아주 좋았어요. 저는 혼혈이에요.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 문화를 모두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프랑스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프랑스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어요.
한국에는 여러 전설들이 있는데 왜 <심청전> 이야기에 끌렸어요 ?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가 두 개 있어요. <심청전>과 <신사임당>이에요. 이 두 이야기를 발견했을 때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심청과 신사임당이 너무 순수하고,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살아왔다는거…그리고 어떻게 하면 다 같이 하나되어 살수 있는지에,,,, 좀 유토피스트이지만 오늘날 휴머니즘은 더 필요해요. 예술가로서 마음이 아픈 게, 인터넷 발달로 인해 사람들 간의 연결이 부족한 거 같아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고민을 많이 해요. 사람마다 가슴속에 불꽃이 있을 텐데 그게 약해진 거 같아요. 삶의 모델처럼 심청과 신사임당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더 따뜻해질 수 있어요.
한국말은 혼자 공부하신거에요?
-어머니한테 배웠어요. 어릴 때는 피아노를 해서 아이들과 어울리기 위해 한국말을 일부러 안했는데, 11살쯤부터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있어 책 읽고 하다가 조금 전 말씀 드린 것처럼 딸이 태어나고 나서부터 한국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했어요. 딸을 한글학교에 보냈었는데, 지금은 피레네 지역과 파리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고, 공연 여행을 많이 다녀서 한글학교는 못가요.
공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저는 상황에 맞게 제가 연출을 해서, 때로는 작곡도 해서 연주해요. 코로나 때 봉쇄되면서 작곡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클래식 음악 멜로디를 넣어서 여러나라 언어로 노래를 만들기도 했어요. 예술가로서 이런 창작 활동은 중요해요. 쇼팽, 베토벤 등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려면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곡을 만들었는지를 알아야지만 잘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파리와 피레네를 오가고, 연주 여행을 많이 다니는데, 그럼 자녀들 학교는요 ?
-그래서 홈스쿨링해요. 홈스쿨링은 예전에는 가족 결정만으로 가능했는데, 최근에는 교육부의 허락이 있어야 해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해요. 홈스쿨링은 두 가지가 있어요. 온라인으로만 하는 것과 부모가 책을 사서 나름대로 가르치는거에요. 제가 아티스트니깐 후자를 택했어요. 홈스쿨링하면서 피아노, 노래, 그리고 한국어를 많이 해요. 작문 공부할 때 노래를 만들어 보라고 하고요, 아이들에게 맞는 교육을 할 수 있는, 오리지날한 학교라고 생각해요. 둘째인 아들, 토비(4살)는 생김새를 보면 한국티가 전혀 안나는데 불어보다 한국어를 휠씬 잘해요. 왜냐하면 코로나 봉쇄 때 태어나서 엄마의 한국말만 듣고 자랐기 때문이에요.
파리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한국 갔을 때 문화 충격 같은 건 없었나요 ?
-처음에는 낯설었어요. 익숙해지지 않으니 아이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어요. 프랑스에도 관심은 있지만 따스하지 않아요. 그런데 한국은 따스해요.
최근 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LVMH 사무총장으로 있는 마크 앙투완 자메(Marc-Antoine Jamet)의 부탁으로 봄에 노르망디의 발 드 회이(Val de Reuil)에서 연주를 했어요. 거기가 프랑스에서 가난한 지역이어서 문화 혜택을 잘 못 받고 있어요. 마크 앙투안 자메가 3일 동안 지역 주민들을 위해서 음악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라고 했어요. 발 드 회이에는 최고의 음악 공연장이 있어요. 연주를 하니 주민들이 처음으로 피아노 연주를 본다고 했어요. 연주도 하고 강의, 마스터 클래스도 했어요. 그리고 파리 5구에 있는 아름다운 가톨릭 건물인 콜레쥬 데 베르나르댕(Collège des Bernardins)에서 음악과 경영을 연결하는 컨퍼런스도 해요.
리디 솔로몽은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언급하면서, 현재 한국이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아지고 있다며 반가움을 표하면서, 자신의 반쪽인 한국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파리광장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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