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아틀리에 탐방] 시선이 머무는 곳, 수직과 수평의 세계, 정창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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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기 작가, '불에 탄 나무가 소재인 <수직 명상> 작품 앞에서
사진작가 정창기(Chang Ki Chung)는 한국 상업 사진의 최전선과 순수 예술의 깊은 심연을 모두 관통해온 보기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중앙대학교와 일본 도쿄 비주얼 아트에서 사진을 전공한 그는 1980년대 제일기획과 아모레퍼시픽의 광고 사진을 도맡으며 당대 최고의 상업 사진가로 명성을 떨쳤고, 1990년에는 노태우 대통령의 공식 사진가로 활동하며 커리어의 정점에 섰다. 그러나 1993년, 그는 화려한 조명이 쏟아지는 서울의 스튜디오를 뒤로하고 남양주 월문리의 자연 속으로 은둔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택했다. 그곳에서 그는 인공의 빛 대신 자연광을, 연출된 피사체 대신 이름 모를 들풀과 식재료의 본질을 응시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식물학적 사유'와 '정물(Still Life)의 미학'을 구축했다.
2012년 파리로 이주한 이후, 그의 시선은 더욱 깊고 넓어졌다. 17세기 네덜란드 바니타스 회화를 연상시키는 그의 정물 사진들은 <르 몽드(Le Monde)>지의 찬사를 받았고, 최근 파리 디자인 위크의 '오텔 드 라 마린(Hôtel de la Marine)' 전시와 서울의 '수직묵상' 전을 통해 숯과 돌, 바다와 같은 근원적 물성으로 그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사물이 지닌 고유의 무게중심을 찾아 중력과 대화하듯 쌓아 올리는 그의 작업은, 위태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균형'과 '본질'이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파리의 겨울비가 잿빛 우울을 머금고 도시를 적시던 12월의 어느날, 16구의 한 조용한 아파트에서 그를 만났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와 습기를 피해 들어선 작가의 거처는 마치 시간이 멈춘 작은 박물관 같았다. 오랜 세월 그의 시선이 머물다 간 골동품들과 벽면을 채운 흑백 사진들이 뿜어내는 묵직한 침묵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 공간을 완성하는 것은 압도적인 예술품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였다.
"어서 오세요. 갑자기 날이 춥죠?"
주전자에서 물 끓는 소리가 규칙적인 리듬으로 공간의 적막을 따스하게 데우고, 작가는 익숙하고 유려한 손놀림으로 차를 우려내 건넸다. 세계적인 거장의 권위보다는, 오랜만에 마실 나온 이웃을 반기는 어른의 소탈함이 배어있는 몸짓이었다. 따뜻한 차 한 모금이 긴장을 녹이는 사이, 우리는 50여 년간 이어온 그의 집요하고도 아름다운 시선의 궤적을 조심스레 더듬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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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기원(Origins): 최초의 뷰파인더
-지금은 세계적인 사진가가 되셨지만, 카메라를 손에 쥐기 전 어린 시절 꿈꾸었던 장래 희망은 무엇이었나요?
"사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학도가 꿈이었어요. 한 달 내내 공작실에 틀어박혀서 나무로 비행기 모형(프라모델)을 만들곤 했죠. 다 만들고 나면 옥상에 올라가서 날려보기도 하고요. 무언가를 손으로 만들고 조립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제가 수학에 약했어요(웃음). 공학을 하려면 수학이 필수인데, 그게 안 되니 진로를 고민하게 됐죠. 집안 분위기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예술을 좋아하셨고, 사촌 형님이 1세대 만화가(정한기)였거든요. 누나도 그림을 그렸고요. 소위 '폼생폼사'라고 하죠? 아버지가 딱 그런 분이셨는데, 나이가 드니 제가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더군요."
-생애 처음으로 카메라를 접하게 되었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그리고 카메라로 가장 처음 렌즈에 담았던 피사체는 무엇이었습니까?
"고등학교 때 특별활동으로 사진반에 들어갔어요. 그때는 카메라도 귀해서 소풍 갈 때나 친척들한테 빌려서 쓰곤 했죠. 그런데 당시 영어 선생님이 저랑 친했는데, 그분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백사장에 여자가 누웠다 일어난 자리에 모래가 잔뜩 묻어 있는 모습을 흑백으로 찍은 거였는데, 1920년대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 스타일처럼 누드와 풍경이 결합된 아주 멋진 사진이었습니다. 그 사진 한 장에 충격을 받았어요. '아, 사진 예술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대단하구나.' 그때부터 그런 성향의 사진에 매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평생 사진을 업(業)으로 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나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나요?
"사실 아주 현실적인 이유도 섞여 있었어요. 대학은 가야겠는데 수학은 안 되고, 뭘 할까 하다가 사진과 입시 요강을 봤는데 영어 시험이 너무 쉬운 거예요(웃음). 당시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사진과가 있었는데, 제가 영어는 좀 했거든요. '이거다' 싶어서 지원했고 덜컥 수석으로 합격했죠. 하지만 학교에 다니다 보니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군 제대 후에 돈을 좀 벌어서 일본 도쿄 비주얼 아트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거기서 사진을 체계적으로 다시 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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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서울 시대: 빛을 통제하다 (1980~1993)
-1980년대 후반부터 제일기획 광고 사진과 대통령 공식 사진가 등으로 활동하며 상업 사진계의 최정상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1993년 돌연 순수 사진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상업 사진에서 예술 사진으로 전향하게 된 결정적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꿈은 늘 사진 작가였지만, 현실은 먹고사는 문제가 컸습니다. 그래서 광고 사진도 하고 스튜디오도 운영했죠. 그런데 제가 소위 말하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부족했어요. 사업을 하려면 돈 계산도 철저히 하고 이문을 남겨야 하는데, 저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이더라고요. 결국 비즈니스적으로 좌절을 맛봤고, '이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하고 싶었던 작품 생활을 하자'고 결심하게 된 거죠. 어찌 보면 떠밀리듯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제 본연의 자리로 돌아온 셈입니다."
-클라이언트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상업 사진'과 작가의 내면을 표현해야 하는 '예술 사진' 사이에서, 당시 작가님이 정의했던 사진의 본질적인 차이는 무엇이었나요?
"상업 사진은 철저히 목적이 있는 사진입니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하죠. 반면 제가 추구한 예술 사진은 제 내면을 투영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인물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1988년부터 한국 예술가 100인의 초상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도 했고요. 그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그 사람의 눈빛, 그리고 그 인물의 깊이를 드러내는 빛의 방향이었습니다. 그러다 점차 작업실을 서울에서 벗어난 곳으로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인물에서 정물로, 상업에서 순수로 피사체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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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월문리 시대: 침묵을 발견하다 (1993~2011)
-1993년, 서울을 떠나 남양주 월문리로 이주하셨습니다. 화려한 스튜디오를 벗어나 시골의 적막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던 가장 큰 내적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도시 생활에 지쳐있기도 했고, 누구나 시골에 작업실 하나 갖고 싶은 꿈이 있잖아요(웃음). 낡은 농가를 사서 수리해 들어갔는데, 교통도 불편하고 사람들과도 멀어졌죠. 자연스럽게 고립이 되니까 눈에 들어오는 게 마당의 잡초, 야생화 같은 것들이더군요. 서울에서는 인공 조명으로 이미지를 '만드는(Making)' 작업을 했다면, 월문리에서는 자연광 아래서 사물을 '발견하는(Finding)'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월문리 시절, 잡초나 식재료 같은 소박한 소재를 기록하기 위해 당대 가장 고가이자 까다로운 인화 방식인 '백금 인화(Platinum Print)'를 사용하였습니다. 그 역설을 통해 얻고자 했던 가치는 무엇이었나요?
"백금 인화는 흑백 사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깊은 톤,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이 배어 나오는 듯한' 깊은 울림을 줍니다. 길가의 잡초처럼 가장 하찮고 소박한 생명을, 변하지 않는 백금이라는 가장 귀한 그릇에 담아 그 존재에 영원성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A4 용지만 한 대형 필름을 써야 했기에 비용도 엄청났지만, 무엇보다 약품이 맹독성이라 방독면을 쓰고 고무옷을 입은 채 매일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약품 수입이 세 번이나 통관에서 막히면서, 6~7년 만에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때의 치열했던 경험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제가 한지(Hanji) 작업을 고집하는 이유가 바로 그 '백금의 깊이'를 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한지에 잉크가 겉돌지 않고 깊이 스며들게 하려고 종이를 여덟 번이나 물에 적시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이 디지털 작업이 과거의 아날로그 방식보다 더 많은 육체적 수고와 시간을 요하는, '더 아날로그적인' 수행이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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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파리 시대 I : 중력과 바니타스 (2012~2019)
-2012년 파리로 이주하신 후, 작가님의 사진 속 빛이 달라졌다는 평을 듣습니다. 한국 월문리의 자연광과 파리의 북쪽 창에서 들어오는 빛은 작가님에게 감각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다가왔습니까?
"환경이 바뀌면 시선도, 그리고 그 시선이 담아내는 빛도 바뀌기 마련입니다. 파리의 빛, 특히 북쪽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한국의 직사광선과는 결이 다릅니다. 차분하고, 은은하며, 무엇보다 '회화적'이죠. 무엇보다 파리는 한국에서는 미처 이해받기 힘든 시도들을 깊이 있게 수용해주는 인문학적 토양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빈치 사망 500주년 기념전에서 '다빈치의 정신을 현대 사진으로 되살려 달라'는 주문을 받았을 때처럼 말이죠. 과거의 유산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계승해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존중해주는 이곳의 공기가 저에게는 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대표작인 <수직 대화(Vertical Conversation)> 시리즈는 과일과 채소를 위태롭게 쌓아 올리는 작업입니다. 접착제 없이 오로지 중력에만 의지해 사물을 쌓았다고 들었습니다. 이 작업 과정에 담고자 하신 메시지가 있나요?
"이 시리즈의 시작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주세페 아르침볼도에 대한 오마주였습니다. 다빈치 사망 500주년 기념전의 의뢰를 받았을 때, 저는 다빈치의 기계 드로잉에서 보이는 그 정교한 균형 감각과, 아르침볼도가 과일과 채소로 인간의 얼굴을 구성했던 그 기발한 상상력을 사진으로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마치 '라 돈나(La Donna, 여인)' 시리즈처럼, 저는 식물들을 통해 사람의 전신 초상화를 그리고자 했습니다. 서로 기대어 지탱하는 그 위태로운 모습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의 초상과도 닮아 있습니다. 무너지기 직전의 그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기적 같은 균형. 그것이 제가 렌즈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생(生)의 아름다움이자, 중력에 대한 저항입니다."
-<꾸뛰르 정원> 시리즈에서는 19세기 마리아주 글로브(유리 돔) 안에 갇힌 조화들을 찍으셨습니다. 투명한 유리에 갇혀 박제된 그 아름다움을 통해 작가님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기억의 속성'은 무엇입니까?
"'마리아주 글로브(Mariage Globe)'는 19세기 프랑스의 낭만적인 풍습이 깃든 오브제입니다. 결혼식 이튿날, 신부의 어머니나 대모가 축복을 담아 꽃장식을 넣어 건네던 선물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며 댄스 카드나 브로치, 아이의 세례 기념품 같은 생의 파편들이 하나둘 더해져, 마침내 한 가족의 역사를 증언하는 내밀한 앨범으로 변모하더군요. 저는 4대를 이어온 레즈롱(Legeron) 공방의 섬세한 실크 꽃을 그 안에 배치해 촬영했어요. 견고하게 닫힌 유리 돔은 흐르는 시간을 멈춰 세우지만, 역설적으로 그 안의 세계를 바깥세상과 단절시키는 고독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폐쇄된 공간에 과일과 꽃, 곤충을 불러들여 가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독자적인 소우주를 구축했습니다. 시들기 직전의 가장 화려한 절정을 비춤으로써 역설적인 찬란함을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소멸이 예정되어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은 더욱 눈부신 법이니까요. 덧없이 사라지는 생명에 영원이라는 숨결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야말로 예술가에게 주어진 숙명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1월 소나무 예술가 협회 전시에 참여한 정창기 작가. 그의 뒤로 비구상, 풍경 작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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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파리 시대 II : 물성의 변주 (2020~2024)
-최근 전시 <수직 명상>에서 주된 소재로 등장한 '불에 탄 나무(숯)'는 기존의 싱그러운 과일과는 전혀 다른 소재입니다. 생명력 넘치는 소재에서 소멸된 소재로의 극적인 전환에 어떤 배경이 있으셨나요?
"이탈리아 프로치다(Procida) 섬의 해변에서 <수직 명상> 시리즈에 사용할 용암석을 찾던 중 우연히 발견한 검은 숯 조각은 제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중요한 신호였습니다. 과일이 생명의 환희를 노래한다면, 숯은 다 타고 남은 본질이자 침묵이며, 힘과 취약성이 공존하는 물질입니다. 주워 온 것만으로는 부족해 작업실에서 직접 나무를 태우기 시작했는데, 불은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 조금만 더 태우려다 형태가 훅 날아가 버리기도 하고, 원하던 모양이 잿더미가 되기도 하죠. 그것도 우리 인생 같아요. 너무 욕심내면 사라져 버리니까요. 숯 작업은 불이 만들어낸 우연과의 타협입니다. 그 예측 불가능함이 주는 짜릿함이 있어요. 이렇게 얻은 숯을 오로지 손끝의 감각으로 쌓아 올리는 과정은 중력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입니다. 균형이 조금만 틀어져도 무너져 내리는 위태로움 속에서 리듬과 기하학의 절대적인 조화를 찾아내는 것, 사람과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을 구현한 이 작품은 조각가 브랑쿠시에게 바치는 작은 찬사이기도 합니다."
-2025년 공개된 '파사지아타(Passeggiata, 산책)' 시리즈는 "내 영혼의 엑스레이"라고 표현할 만큼 내밀한 작업이라 하셨습니다. 구체적인 형상 대신 수평선과 빛, 색채만 남은 이 추상적인 바다 풍경을 통해 무엇을 보고 싶으셨던 건가요?
"이탈리아 나폴리 근처 섬에 머물면서 찍은 '파사지아타(Passeggiata, 산책)'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최근 작업들이 점점 추상으로 가고 있어요. 눈에 빤히 보이는 예쁜 풍경보다는, 어둠 속에서 배어 나오는 빛, 선과 면으로만 이루어진 덩어리 같은 것들이죠. 로스코(Rothko)의 그림처럼 색과 면만 남기고 싶었습니다. '장막을 올려라'라는 작품을 계기로,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풍경, 제 내면의 풍경을 찍게 된 것 같습니다."
-AI 기술이 이미지를 무한대로 합성해내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기술적 변화 트렌드에 따라 새롭게 시도하시려는 방향이 있으신가요? 혹은 이런 시대에 '사진'만이 줄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얼마 전 AI로 만든 꽃 사진 전시를 봤는데 퀄리티가 상당하더군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인공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있어요. 바로 '아우라(Aura)'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제가 손으로 과일의 무게중심을 느끼며 쌓아 올리는 그 물리적인 감각, 불이 나무를 태울 때의 우연성 같은 거요. 앞으로 저는 AI가 할 수 없는, 인간의 땀과 노동, 그리고 우연이 개입된 작업들을 더 깊이 파고들 생각입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손길이 묻어있는 아날로그적 수행은 더 귀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께 '사진'이란 무엇입니까?
"사실 저는 요즘 사진이 좀 더 쉬웠으면 좋겠어요(웃음). 그냥 팍 찍어서 팍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거요. 지금 제 작업은 너무 어렵고 오래 걸리고 힘들거든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쉽게 찍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수십 년의 내공과 고통스러운 시간이 필요한 게 사진인 것 같습니다. 사진은 저에게 여전히 어렵고, 그래서 더 매력적인, 평생을 바쳐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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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고 건물을 나섰을 때, 파리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빗줄기는 잦아들었고, 거리 곳곳을 수놓은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도시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들어올 때 느꼈던 매서운 한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사물의 껍질을 태우고 남은 숯처럼 본질만을 응시하던 작가의 단단한 철학이 가슴 한구석을 묵직하게 덥혀주었다.
정창기는 멈추지 않는 작가다. 상업 사진의 정점에서 미련 없이 자연으로 투신했고, 화려한 바니타스의 색채에서 흑백의 침묵으로, 다시 불(火)과 물(水)이라는 원초적 물질로 끊임없이 자신을 전복시켜 왔다. 그러나 그 변화무쌍한 변주 속에서도 '균형'과 '본질'이라는 하나의 화두를 향한 그의 집요함은 단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다. 쉬워 보이는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수행을 자처하는 그의 섬세한 결기는, AI가 이미지를 쏟아내는 시대에 예술가가 지켜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를 웅변한다.
밤을 새워 새로운 빛을 기다리는 이 영원한 청년의 다음 뷰파인더에는 또 어떤 세상이 압축되어 담길까. 황금빛으로 부유하는 파리의 밤거리 위로, 그의 신작이 가져올 고요하고도 거대한 파장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김이련 기자 nenufar07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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