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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학교내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한 학생, 에밀리의 일기 책으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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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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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6일은 프랑스의 <학교 폭력 근절, Non au harcèlement >을 위한 두번째 기념일이었다. 증가하는 프랑스 학교내 폭력과 시달림에 경종을 울리며 예방과 대책을 위해 더이상 터부시하지 않고 교사 및 학부모 그리고 프랑스 정부에서 나선 것이다.

HBSC(Health Behaviour in School-aged Children 취학 연령 아동 건강 증진협회)의 조사에 의하면, 2010년부터 2014년사이 중학교에서 시달림은 줄어들었다고 두번째 학교폭력 근절의 날에 발표했다. 프랑스에서는 초등학생들12%, 중학생들 10%가 학교내 시달림을 겪은바 있다.

프랑스에서는 처음으로 수치가 내려간 것이라고 한다. HBSC에서는 4년마다 42개국의 중학생들을 상대로 학교 시달림에 대한 조사를 한다. 2016년 발표에 의하면, 프랑스의 경우 2010년에서 2014년사이 15%가 줄어들었고, 중학교 1학년들의 경우,  33%가 내려갔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프랑스 당국이 학교내 시달림이 감소되었다고 했음에도 그와중에 이로 인해 자살한 중학생이 있었다. 지난 2월 말, 파리마치 Paris Match지는 학교내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을 한 에밀리의 일기를 책으로 출간했다는 소식을 싣었다. 이로써 프랑스 학교내 폭력의 심각성에 다시 한번 경종을 울리게 되었다. 번역 정리해서 본지에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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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는 중학교에서 교사의 어떤 개입도 없는 상태에서 2년반 동안 구타,욕설, 조롱에 시달렸다. 그리고 201512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아이의 장례식 이후 발견된 일기를 그의 부모들은 책으로 펴냈다. 이를 세상에 알리고 더 이상 에밀리 같은 희생자가 생겨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 학교 운동장에 있었다. 다른 아이들의 시선들이 내게 머무는 것을 느꼈다. 웃는것을 보았고, 그들의 눈길이 나의 낡은 운동화, 마모된 바지, 말려올라간 스웨터 목과 가방에 머물렀다. 그리고는 몇명이 거지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별 상관하지 않았다. 항상 그랬듯이 그들에게 될수 있으면 멀리 피했다. 10미터의 운동장을 거쳐 156개의 계단과 복도를 지났다. 이 통로는 나에게는 투쟁의 통로였다.  구타와 발길질과 침뱉기를 피하고, 욕설과 조롱을 들을 귀를 닫아야했다. 가방과 머리카락을 살핀다. 눈물을 삼킨다. 계속 또 계속끝나지 않을것 같은 시간동안 상처는 습관이 되었다. 교실안에서 될수 있으면 다른 애들과 멀리 떨어져서 자리를 잡는다. 그때 어떤 남학생이 아이들이 다 들을 정도로 소리치며 이야기한다 : 너희들 아니 ? 각 나라에 가장 못생긴 이들에게 상을 주기로 했어라고 하니, 어떤 아이가 우리 반에 상 수여자가 있다는데에 너와 내기할래라고 하니 또 누군가가, ‘불행히도 여학생들만 참여할수 있어라고 에밀리를 겨냥해 조롱을 한다.이에 교실 전체가 떠나갈듯이 웃는다. 나는 아무 반응도 못한채 남학생이 던진 삼각자를 머리에 맞았다 »

 

이 귀절은 에밀리 몽크 Emilie Monk의 일기 중 발췌한 것이다. 에밀리가 자살하기 6개월전 일기로 에밀리는 당시 16살로, 프랑스 지방 릴Lille에 있는 노트르담들라페 Notre-Dame-de-la-Paix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에밀리가 세상을 떠난지2년이 지났다. 에밀리의 일기를 묶어 책으로 출판했다. 카타르시스 같은 이 책은 의심할 여지 없이 희생자들에게 세상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에밀리는 작가를 꿈꾸었다. 글 솜씨와 리듬, 선택한 단어들을 보면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다. 에밀리가 당한 일상의 학대와 다른 아이들의 잔학성, 그리고 어른들의 비겁함을, 에밀리의 부모는 그의 죽음 이후 발견하게 되었다.

 

에밀리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내가 중학교에서 겪었던 지옥을 어느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다. 이미 나는 부모님들이 내가 얼마나 비참한지 아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비록 너절하지만  순수한 탄생이라고 여기기를 원한다. 부모님들에게 걱정끼치고 싶지 않다. 결국 부모님은 교장 선생님에게 만나러 갈 것임을 나는 잘 안다. 그리고 상황을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거 또한 잘 안다[...] 가끔씩 창문으로 다른 아이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즐겁게 놀고 있다. 그들은 나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했다.’’고 에밀리는 일기에 적었다.

재혼 가정의 4번째 아이였던 에밀리는 릴 Lille외곽지역에 살고 있었다.  엄마는 간병사였고, 그의 아빠는 영국인 시인이자, 번역가다. 에밀리는 해리포터뿐만 아니라 발작, 졸라, 위고 작품들을 좋아했다. 에밀리 가족은 방학이나 저녁에 시 낭독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에밀리는 반에서 1등이었다. 과민하고 욕심없는 아이였다.  용돈을 아껴 측근들에게 선물을 하고, 동물 학대 대항 데모에 참여했으며, 기아 대항 투쟁 협회를 위한 마라톤에 참여해서 천식을 이기고 완주한 바 있다. 그때까지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갈때 그의 부모는 에밀리를 노틀담들라페 중학교로 전학시켰다. 이 학교는 카톨릭 사립으로 대부분 좋은 가정의 자녀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에밀리를 언니처럼 그 학교로 보내기로 결정을 했어요. 학업적인 면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존중하는 시민 교육을 잘 받기 위해서였어요라고 에밀리의 아빠는 이야기했다. 드물게도 좋은 의도로 행한 것들이 결과적으로는 끔찍한 선택이 되는 경우가 있다.

 

에밀리의 좋은 성적과, 사치스런 가방이나 남학생에 대한 무관심은 그를 희생양으로 이끌었다.  같은 반의 한 여학생은 에밀리는 옷을 잘 입지도, 머리손질을 잘 하지도 못하는 소녀였다고 한다. 남학생들은 껌을 에밀리 머리카락에 붙였고, 복도에서는 사용한 휴지를 얼굴에 던지거나, 가방 멜빵을 자르거나, 나쁜 성적을 얻게 하기 위해 안좋은 학생 무리속에 들어가기를 강요하기 위해 에밀리를 저지시켰다.

 

학교 식당에서는 항상 혼자 식사를 했다. 그리고는 에밀리는 책속으로 피신했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의 보석들, 나의 유일한 친구들, 나는 그들을 아기들처럼 좋아해. 환상적인 세계에서 한시간은 꽤 괜찮아. 누군가가 나를 거기서 벗어나게 하지 않는다면..’ 하지만 남학생들은 에밀리가 읽고 있던 책을 계단으로 던져버렸다.

 

신고식 같은 학교내 시달림

에밀리 엄마는 에밀리가 당한 시달림중에는 공부 못하게 공책이나, 학교식당 카드를 빼앗아갔다고 했고,  에밀리가 그나마 부모에게 이야기한게, 교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에밀리 코앞에서 문을 폭력적으로 닫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부모는 가정통신란에 알렸고, 교장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단지 학교의 명성만이 중요했다.

2년 반 동안 에밀리는 그의 고통을 감추었다. 그러다가 20134월의 어느날 아침, 피폐해진 에밀리는 학교 가기를 거부했고, 더 이상 가지 않았다. 에밀리는 중3을 우편으로 공부하면서 보내면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에밀리는 좋지 않은데 더이상 괜찮은척 할 수가 없었다고 부모에게 고백했다. 이후 항우울와 항불안 클리닉와 정신과 병원에 입원해 있곤 했다. 도움을 찾기 위해 불교에 입문했다. 그의 방에는 명상하고 향을 피울수 있는 불상이 있다.


에밀리는 노력했고, 가족들은 희망을 가졌다. 20151219, 에밀리는 즐거워했다.  원래 성탄절 축제를 좋아하지 않았던 에밀리는 엄마에게 트리와 장식들을 사자고 했고, 저녁에 아빠 집에 식사하러 가서 에밀리는 성탄절 드레스를 입고 즐거워했다. 아빠를 안으며 사랑한다고 했다. 이후 자기 방으로 갔고, 이어폰을 끼고는 담배 피기위해 발코니로 가서 허공에 몸을 날렸다. 한달간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2016111일 에밀리는 세상을 떠난다. 17살이었다.

 

그의 장례식이 끝나고 난뒤 얼마있지 않아 에밀리의 일기가 발견되었고, 그 일기속 내용은 에밀리 부모가 학교를 상대로 고소를 하려고 했던 의지를 더욱 강하게 했다. 201691일부터 이 학교 교장으로 부임해온 벵상 플레터Vincent Fleter는 에밀리 재학시 자신이 학교에 없었고, 교사와 옛날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를 한 결과, 에밀리는 숨어있었고, 슬퍼보였다고 했고, 아무도 신체적, 언어적인 폭력에 대한 증언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 교장의 이야기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이번 일로 무너졌다고 하면서, 에밀리가 이야기할 어른을 찾지 못한게 비참하다고 했다.  현재 조사는 위험에 처하거나, 죽음에 이르는 폭력에 노출된 이에 대한 비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다. 20165월부터 릴 Lille 교구에서는 학교 폭력 대항 위원회를 가동시켰다.


지역 일간지인 « 라브와뒤노르 La Voix du Nord»를 통해 에밀리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증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이 중학교에 있었던 10여명의 학생들이 에밀리 엄마에게 글로 증언하기 시작했다 : 욕설, 위협, 굴욕, 그리고 일부 교사들의 공모까지도 글로 남겼다. 시달림은 거쳐야 되는 신고식 같았다.  책속에서 에밀리의 부모는 학교 이름을 밝힐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딸의 명복을 비는 과정을 통해, 학교 폭력과, 그리고 대부분 단순한 사춘기 갈등과 비슷한 청소년들의 우울의  실태에 대해 부모, 교사,정치인들이 관심가져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미완성된 일기 서문에서 에밀리는 정성드려 이렇게 적었다 : ‘고통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에게, 싸우며 견뎌내는 이에게, 강하게 버티세요. 싸우세요. 결국은 벗어날 것입니다라고...

 

<파리광장편집부>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23-01-21 16:24:46 프랑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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