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의 숨겨진 여인, 안 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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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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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미테랑과 주고 받은 연애 편지 출간-
지난해 (2016년) 10월 중순,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의 숨겨진 여인으로 알려졌던 안 팽조 Anne Pingeot가 그와 주고 받은 1천여통의 연애편지는 출간해서 화제가 되었다.
‘안 Anne에게’ 로 시작되는 편지 내용들을 보면 사회주의 지도자의 다른 삶을 그리고 있다고 프랑스 언론은 전했다. 이들의 관계는32년간 지속되어 왔고, 미테랑에게 안 팽조는 그에게는 삶의 행운이었다고 한다. 그가 사망한지 20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이 주고 받았던 연애 편지 출간은 기대치 못했던 것이었다. 프랑스엥포는 미테랑이 사망한 뒤에도 항상 그늘에 있기를 원했던 이 여인과 전 대통령의 관계를 짚어보았다.
사회주의 지도자의 매력에 빠져
안 팽조가 미테랑을 처음 만났을때 그녀는 14살이었다. 안의 부모는 미테랑이 니에브르Nièvre지역의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친구가 되었다. 1943년생인 안 Anne은 미테랑의 장남인 쟝 크리스토프 보다 겨우 3살이 많았다.
미테랑이 처음으로 안을 주목한 때는 그녀가 출연한 연극 공연을 보러가서였는데, 당시 그녀 나이 18살이었다. 미테랑의 세 아들 중 한명인 질베르 미테랑은 ‘1960년대 초반, 골프를 치고 나서 안의 아버지 집에 차를 마시러 갔을때 안을 보았는데 아버지의 장례식때 말고 그녀와 세마디 이상 이야기해본적이 없다’고 했다.
안 팽조는 1960년대초에 바깔로레가 다가오자 파리로 올라온다. 파리마치Paris-March지에 의하면, 그녀는 결혼하기전에 장식일을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파리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서 후견인이 필요했고 미테랑을 그 역할을 받아들였다. 안 팽조는 사회주의 지도자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미테랑과는 27살의 나이 차이
그들의 인연은 미테랑이 47세, 안 팽조가 20세였던 1963년부터 시작되었다. 안은, 아내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사회주의 지도자의 애인이 된다. 이를 두고 미테랑의 친구들은 정치 생활과 가족의 가치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미테랑의 의지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안 팽조는 이를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다. ‘그는 선택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 다니엘도 그의 선택이었다’고 필립 쇼트 Philippe Short의 저서 <프랑수와 미테랑, 모호한 이의 초상François Mitterrand, portrait d'un ambigü>에서 밝혔다.
안 팽조는 그늘에서 살 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같은 이중 생활은 곧 재정적인 독립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예술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미테랑의 격려를 받으며, 안은 박물관 큐레이터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게 된다. 1965년 대통령 후보였던 미테랑은 1차 선거와 결선 사이에 그녀의 일반 노동조합에 관한 논문 작성을 도와주기도 했다.
미술사 전문가가 되다.
안 팽조는 몇년뒤 그가 공부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 드가, 보나르, 고갱 등 19세기 프랑스 조각을 재발견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또한 발레리 지스까르 데스땡 프랑스 전 대통령이 기획한 오르세 박물관 설립에 함께 하게 된다. 1986년 12월 1일에 있었던 오르세 박물관 오픈식의 공식 가이드는 안 팽조였다. 그녀 앞에는 작크 시락, 발레리 지스까르 데스땡, 프랑수와 미테랑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의 몇몇 측근들만 그들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또한 안 팽조는 루브르 박물관의 복원 사업에도 참여하게 된다. 나폴레옹 정원의 피라미드 복원은 미테랑이 안 팽조에게 준 선물이라고 르몽드는 밝혔다. 안 팽조는 매일 공사장에 가서 작업 진척을 살폈다.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의 전 관장이었던 미셀 라클로뜨Michel Laclotte가 저서에서 밝힌바에 의하면, 알렉산더 3세교 복원에도 그녀는 참여했다.
그들의 딸, 마자린
안 팽조에게 남자는 오로지 미테랑뿐이었다. 그녀 인생에 어떤 다른 남자도 없었다. 미테랑이 유일했다. ‘사랑하는 이를 존경하는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라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32년간 지속된 행복이었다. 하지만 그게 행복이었을까 ? 그녀는 힘들었다고 한다. ‘ 나는 죄를 지었어요. 하지만 그 댓가는 치루었어요 ‘라고 했다고 한다.
안 팽조는 미테랑에게 이혼이나, 정절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테랑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했다. 미테랑은 설득당했고, 1974년 그들의 딸인 마자린 팽조Mazarine Pingeot가 태어난다. ‘그가 나에게 준 유일한 선물’이라고 안 팽조는 마자린의 출생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때부터 미테랑은 두 집 살림을 하게 된다. 크리스마스와 주말, 로맨틱한 저녁은 안과 함께 보내고, 신년과 친구들, 그리고 공적인 일에 연관된 저녁 식사에는 그의 아내인 다니엘과 함께 했다. 사생아, 마자린의 존재는 1994년에, 파리마치Paris-Match지가 마자린과 미테랑이 함께 식사하고 있는 사진을 싣게 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1981년 미테랑의 대통령 선출은 그들의 관계 유지에 청신호
미테랑이 1981년 5월 10일 프랑스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때 , 안 팽조는 그들 관계가 끊어질까봐 불안해 했다. 그녀는 ‘내 생의 가장 끔찍한 날이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반대로1981년의 승리는 그들의 관계를 지속하는데 좋게 작용하게 되었다’고 미테랑의 측근은 밝혔다.
그때부터 안 팽조의 삶은 파리 6구, 자콥가에 있는 아파트에서 이루어진다. 이 아파트는 엘리제 궁에서 마련해준 것으로, 이곳에서 안 팽조는 미테랑을 거의 매일 만났다. 안 팽조는 매일 오르세이 박물관에 자전거로 출근을 하면서, 경찰에게 그의 안전을 책임지게 하는 등, 일상 습관을 바꾸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 프랑수와 미테랑, 모호한 이의 초상 » 책에서, ‘우리는 함께하는 삶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정상과는 다르게 살았고, 다르게 끝이 났다’고 했다.
이 같은 이중 생활은 미테랑이 암에 걸려 사망할때까지14년동안 지속되었다. 안 팽조는 그의 암 선고 소식을 먼저 알았던 이들 중 한명이었다. 그는 미테랑의 마지막날까지, 그의 건강을 걱정하며 함께 했다.
미테랑이 사망했던 날인 1996년 1월 8일, 안 팽조는 미테랑의 주치의였던 쟝 피에르 타로를 불렀다. ‘ 타로가 도착했을 때 그(미테랑)는 떠나야겠다고 했다’고 그녀는 회상한다. 타로는 미테랑이 생을 끝낼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안 팽조는 이것 때문에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미테랑이 무의식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을 막았다는 안도감도 함께 있었다고 측근은 전했다.
미테랑이 사망하기 6, 7시간전부터 안팽조는 혼자서 그의 병상을 지켰다.미테랑은 당시 뇌암도 있었는데, 이런 경우 사망은 급격히 빨리 올수 있다고 한다. 아직도 미테랑이 안락사했는지, 자연사했는지는 모른다고 한다.
‘어떻게 다른 가족과 함께 장례를 치를수가 있어요 ?’
미테랑 사망 2시간후에, 안과 마자린 팽조는 그의 병상을 떠났고, 아내인 다니엘 미테랑이 남편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왔다. 다니엘은 미테랑 장례를 맡은 이에게, ‘어떻게 다른 가족과 함께 장례를 치를수가 있어요 ? 라고 했다. 미테랑의 아내, 다니엘은 장례식장에 미테랑의 애인이 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미테랑의 아들인, 쟝 크리스토프 미테랑은 이를 논의했고, 모두 함께 하는게 낫겠다는 결론을 빨리 내렸다고 한다.
1996년 1월 11일 샤랑뜨 Charente 지역의 자르낙 Jarnac 묘지에, 프랑스 전 대통령이자, 사회주의 지도자였던 미테랑의 장례식에 두 가족이 함께 했다. 아내인 다니엘 미테랑은 그의 아들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좀 떨어진 곳에 안 팽조는 그들의 딸인 마자린을 위로하는듯한 자세로 있었다. 프랑수와 미테랑의 이중 삶이 합쳐지는 유일한 순간이었다고 프랑스 언론은 전한다.
이후 안 팽조는 다시 익명의 인물로 돌아가 2011년 퇴직까지 루브르 박물관의 큐레이터이자, 루브르 학교 교수직에 있게 된다. 미테랑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2015년 필립 쇼트 Philippe Short의 저서, <프랑수와 미테랑 : 모호한 이의 초상 >에서 단 한번 언급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미테랑과 주고 받은 편지를 출간하면서 그들 관계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많은 것들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평생을 미테랑의 그림자에 가려 산 그녀는 그녀가 보낸 편지는 넣지 않았다고 한다.
<파리광장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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