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연한 아름다움이 인상적인 쉐농소 성(Château de Chenonc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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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âteau de Chenonceau » 는 유네스코(UNESCO)가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프랑스 루아르(Loire) 계곡에 있는 여러 고성(古城) 가운데 하나이다. 르네상스 양식이 돋보이는 16세기 건축물로, 1840년 프랑스 역사기념물로 등재된 성이기도 하다. 행정 구역상 앵드르에루아르(Indre-et-Loire)지방(도,道)의 소도시 쉐농소(Chenonceau)에 위치한다.
쉐농소 성은 셰르(Cher) 강 위에 다리처럼 세워진 건축물로 실제로 석조 아치교가 건물 하단을 지탱하고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기다란 회랑 건물과 장방형의 본채가 남북으로 연결되어 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둘 다 르네상스 양식의 영향을 받은 건물들이지만 16세기 초반 건립된 본채 쪽이 후반에 지어진 회랑에 비해 중세적인 요소가 강하다. 본채의 네 모서리에는 원형 모퉁이 탑이 각각 하나씩 서 있고, 상단은 후기 고딕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Château de Chenonceau - Photo by HYUNKYUNG (02.2016)
루아르 계곡에 있는 여러 고성들 중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손꼽히는 쉐농소 성은‘귀부인들의 성(Château des Dames)’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성을 소유했던 여러 여성 영주들에게서 비롯된 별칭이다. 이와 관련된 흥미진진한 역사는 쉐농소 성이 발산하는 독특한 건축적 아름다움과 무관하지 않다. 쉐농소 성은 크게 카트린 브리송네(Katherine Briçonnet, 1494–1526)에 의해 건축되어, 디안 드 뿌와띠에(Diane de Poitiers, 1499~1566)에 의해 보강 되었고, 까뜨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édicis, 1519~1589)에 의해 확장, 완성된 성이라 할 수 있다.
건물의 주요한 몸체는 오래된 물방앗간의 기반 위에 축조되었다. 1513년 쉐농소 성은 샤를 8세(재위 1483-1498)의 궁정 고관이자 왕실 재정 감사관이었던 토마 보이에흐(Thomas Bohier, 1460~1523)의 명에 따라 지어졌다. 그는 탑과 아성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을 모두 부수고 새로운 르네상스 양식의 저택을 건립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건축 작업의 대부분은 그의 아내인 카트린 브리송네(Katherine Briçonnet, 1494–1526)의 감독 아래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쉐농소 성은1535년 이렇게 왕실의 소유가 되었으며, 12년 후, 앙리 2세(재위 1547~1559)는 이 성을 자신의 애첩이었던 디안 드 뿌와띠에(Diane de Poitiers, 1499~1566)에게 선물했다.
디안 드 뿌와띠에는 강을 가로지르면서도 성과 이어지는 아치 모양의 다리를 짓도록 했다. 1556년에 시작된 공사는 막대한 자금을 소요하며 1559년에 끝이 났는데, 당시에는 아직 다리 위의 회랑 건물은 없었다고 한다. 디안의 이같은 계획이 마무리되기 전인1559년 앙리 2세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왕의 죽음과 함께 전부터 쉐농소 성을 갖고 싶어 했던 그의 왕비 까뜨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édicis, 1519~1589)는 왕의 정부였던 디안에게서 강제로 성을 빼앗고 대신 자신의 쇼몽 성(Château de Chaumont)을 내주었다고 한다. 까뜨린은 성을 증축할 목적으로 다리 꼭대기에 훌륭한 긴 회랑을 짓게 했으며, 성 내에 모조 전투지, 연극적인 전시물, 포도주가 샘솟는 분수 등 사치스럽고 웅장한 볼거리들을 설치했다. 왕비 까뜨린이 죽은 뒤 쉐농소 성은 그녀의 며느리인 루이즈 드 로렌(Louise de Lorraine, 1553~1601) 왕비의 차지가 되었다. 이후 성은 방돔(Vendôme), 부르봉(Bourbon) 집안으로 넘어갔다가 18세기 초 새로운 주인인 여상속인 루이즈 뒤팽(Louise Dupin, 1706~1799)을 새 주인으로 맞았다. 그녀는 쉐농소 성을 일종의 문화 살롱으로 만들며 좀 더 진지한 성격의 연회를 열었는데, 볼떼르(Voltaire), 몽떼스끼외(Montesquieu), 장 자끄 루소(Jean-Jacques Rousseau)등 당대 저명한 계몽주의자와 작가, 예술가들이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쉐농소 성 내부는 총 3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에는 거대한 홀과 예배당, 디안의 침실, 경비병 초소 등이 있다. 2층에는 벽과 천창 모두 금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까뜨린의 침실이, 3층에는 미망인의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검은색으로 어둡게 꾸며진 루이즈의 침실이 인상적이다. 남편인 앙리 3세(재위 1551~1589)가 암살된 뒤 그녀는 이 성에서 한동안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길이 60m에 폭 6m, 2개 층으로 된 회랑에는 36개의 창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있다. 1577년 까뜨린은 회랑 완공을 기념하여 이곳에서 연회를 열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 본채 위쪽으로는 섬과 같은 사각형 광장과 1432년 만든 마르케 탑이 있고, 더 위쪽으로는 5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가진 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여성이 쉐농소 성의 성주였던 까닭에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 쉐농소의 귀부인들 »이라는 제목의 유명한 야간 스펙타클 «송 에 뤼미에르(sons et lumières)» (유명 사적지에서 야간에 열리는 공연의 일종으로 밤에 조명을 비추고 녹음된 음악과 설명을 곁들이며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을 재현하는 방식)를 탄생시켰다.
1913년부터, 초콜릿 제조로 유명한 메니에르 가문(Famille Menier)이 쉐농소 성의 소유주이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동안 메니에르 가(家)에서는 건물을 임시 병원(Hôpital militaire)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 파리광장 / 현 경, dongsimijs@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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