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 2의 도시, 마르세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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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의 항구,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단테스가 갇혀 있었다는 이프성이 있는 곳
-이재형 번역가-
성당에서 내려다본 마르세유 시내
구항. 그 뒤쪽은 마르세유의 서민동네인 르파니에
북쪽으로 보이는 광경. 사진 오른쪽은 코르시카 섬 등으로 가는 배가 떠나는 Gares Maritimes,
사진 중간쯤에는 세잔 등의 화가가 화폭에 담았던 항구 Estaque가 있다. 그 뒤로 보이는 것은 Etoile 산맥.
2600년의 장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이 고도시는 심각한 교통 정체와 불결, 높은 실업율, 대도시 특유의 긴장 등 온갖 오명에 시달려왔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이야 파리나 리옹, 릴 같은 다른 도시들도 안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사람들이 이 도시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심각한 편견은, 이곳이 온갖 인종 갈등이 벌어지는 현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오히려, 세계 곳곳에서 찾아든 이 민족들은 마르세유라는 용광로에 자신들을 녹여서 이 도시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단련시켜 왔다.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에 살던 포세아에 사람들이 건너와 건설한 이 도시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이민자들의 물결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뒤로 이 도시는 쥴리우스 씨저에게 점령당하면서 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연이어 서고트족과 동고트족의 손에 넘어가면서 그리스 사람, 라틴 사람, 유태 사람, 아르메니아 사람, 이태리 사람, 코르시카 사람, 스페인 사람, 알제리 출신 프랑스 사람, 북아프리카 사람, 베트남 사람, 캄보디아 사람, 코모르 사람, 서인도제도 사람, 레위니옹 사람, 아프리카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1822년 그리스인들은 터키인들의 학살을 피해 마르세유로 대거 밀려와서 구두장이와 양복장이, 어부, 상인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19세기 말에는 본국에서 심각한 농업 위기를 겪은 엄청난 숫자의 이태리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를 해왔다. 이들은 부두와 담배공장, 건설 현장에서 자신들을 ‘바비스’라고 부르며 박해하는 프랑스 사람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살아남았다. 1915년의 아르메니아 학살과 1922년의 터키 독립전쟁 당시에는 수천 명의 아르메니아인들과 그리스인들이 유입되기도 했다.
1925년부터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이태리 사람들이 다시 한번 이민의 물결을 이루었다. 그들 중에는 이보 리비라는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열한 살 때부터 비누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부두 노동자로 잔뼈가 굵어갔다. 거칠고 냉혹한 거리의 학교에서 인생을 배운 그는 1938년 가수로 데뷔, 서민들의 애환을 노래하기 시작하였고, 어머니가 발코니에서 그를 "이보 몬타!"라고 부르곤 했던 고함소리를 예명으로 삼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프랑코 독재로부터 추방당한 스페인 공화주의자들이 이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북아프리카 이민의 역사도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특히, 20세기 초 북아프리카 사람들, 그중에서도 알제리인들이 대거 "수입"되어 도시 북부에 정착, 기름 공장과 설탕 공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는 근교의 포스 제철소에서 일하게 될 알제리인들을 또 수천 명 불러들였다. 이 수많은 민족들은 갈등과 투쟁, 화해를 거치며 마르세유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프랑스의 그 어느 도시도, 그 기원이 너무나 다른 이들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를 마르세유만큼 조화롭게 융합시킨 곳은 없다. 미국식으로 말하자면 이 도시야말로 멜팅 포인트(melting point)인 것이다. 멸시당하며 살았던 ‘바비스’들의 2세, 3세가 이제는 마르세유의 정체성을 옹호하고 있다. 그리고, 내일은 북아프리카인들의 4세대가 ‘마르세유인임을 자랑스러워하며’ 또 축구경기장에서 목이 쉬어라 OM(마르세유 프로축구팀)을 응원할 것이다.
나는 이런 마르세유가 좋다. 수세기 전부터 인종 통합의 종교를 신봉하면서 함께 어울려 사는 이 도시가 좋다. 가파른 언덕에 닥닥 붙어 있는 집들, 동시에 두 명이 지나가기도 힘들어 보이는 좁은 골목, 창문마다 널려 있는 빨래들, 이집 저집에서 흘러나오는 고함소리와 웃음소리, 마늘 냄새, 사람 냄새가 나는 프랑스의 옥수동과 신림동이 좋다.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공존하는 이 도시가 좋다 .
마르세이유의 서민 동네가 배경이었던 영화, <마르우스와 자네트>
그리고, 나는 이 동네에 사는 마리우스와 자네트가 좋다. 마르세유의 전형적인 서민 동네 에스타크(l'Estaque)가 배경인 프랑스 감독 게디귀앙의 작품 <마리우스와 자네트( Marius et Jeanette)>에 등장하는 자네트는 바른 말 잘 하고, 싹싹하고, 마음 여린 40대 아줌마다. 수퍼에서 계산원으로 일했으나 지배인과 싸우는 바람에 해고되어 실업자가 되었다. 자네트는 안뜰을 가운데 두고 여러 가족이 모여 사는 지중해의 전형적인 다가구 주택에서 피부 색깔이 다른 남매를 데리고 산다. 그녀는 문을 닫은 시멘트 공장에서 페인트 통을 훔치다가 경비원인 마리우스에게 들킨다. 마리우스는 자신을 <파시스트>로 취급하는 자네트에게 총을 겨눈다.
그러나, 그는 자네트를 집으로 찾아와 페인트통을 돌려주고 그녀의 집에 칠도 해준다. 그리고, 모두가, 아이들과 이웃들이 한마음으로 축하해주는 가운데 두 사람은 사랑을 꽃피운다. 그러나, 이들의 결합은 생각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사회적 상황으로부터 기인하는 어려움뿐만 아니라 삶으로부터 입은 상처가 그들을 가로막는다. 그러자, ‘한지붕 세 가족’이 나선다. 말솜씨 좋은 전직 초등학교 선생님 쥐스탱, 젊었을 때 독일 강제수용소에 끌려갔었던 골수 공산주의 투사 카롤린, 항상 원기에 찬 모니크와 그녀의 비실비실한 남편 데데가 이들을 힘차게 격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게 다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일 때 마리우스가 더 이상 자네트를 찾아오지 않고 시멘트 공장에 틀어박혀 버린다. 그 때문에 자네트가 활기를 잃자 쥐스텡과 데데가 나선다. 그들은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마리우스를 찾아가고, 잔뜩 술에 취해 술집에서 난투극을 벌인 끝에 마리우스는 사고로 인해 아내와 아이들을 잃었으며 그 때문에 다시 가정을 이루기가 두렵다고 고백한다. 쥐스텡과 데데는 잠든 마리우스를 한밤중에 자네트에게로 데려가 다시는 종적을 감추지 못하도록 그녀의 침대에 꽁꽁 묶어놓는다.
마당을 둘러싸고 모여 사는 등장인물들은 마치 일상사를 언급하듯 교조주의와 극우파 르 펜, 실업과 신자유주의를 이야기하며, 정치와 종교가 점차 관용이라는 미덕을 잃어가는 현실을 걱정한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장황한 이론으로 그런 문제들을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러기는 커녕, 이들은 아이올리(ailloli, 잘게 다진 마늘과 올리브유, 레몬 등을 섞어서 만드는 일종의 마요네즈)를 만드는 방법에서도 현실의 법칙을 발견한다. "마늘(ail)은 아직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식물이야." 또, 이들은 단 한 문장으로 사회의 문제를 요약해버린다. "쎄잔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풍경과 동네를 그렸지요. 하지만 그의 그림들은 부자들의 집에 걸려 있는 걸요." 그리고, 이들은, 극우 정당인 인민전선에 투표한 데데에게 욕설을 퍼붓고 핏대를 올려가며 비난하지 않는다. 그냥 그가 잘못 생각한 것이라고 가르쳐 줄 뿐이다.
그리고, 이 노동자의 소우주는 현대판 모권사회다. 여기서, 여성들은 강하다. 마르세유의 태양 아래서 그들은 수다쟁이가 되어 토론을 이끌어간다. 그들은 말도 많고, 목소리도 크다. 그들은 반항하고, 때로는 사랑한다.
더욱이나 다행스러운 것은, 그곳에는 우리 아이들이 놀고, 꿈꾸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피부색이 다른 남성과 여성, 아이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방식은 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공동체가 붕괴되어 가는 이 시대에 과연 어떻게 함께, 그리고 몸을 부딪쳐가며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제공해 준다.
<이재형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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