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부는 한강 열풍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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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채식주의자> 세계 3대 문학상 수상 쾌거
잇단 표절 시비로 침체되어 왔던 한국 문학계에 지난 16일 가뭄의 단비 같은 낭보가 전해졌다. 한강 작가가 9년 전 발표했던 중편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 인터내셔날 부문(The 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의 올해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 영국의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의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3대 문학상으로 불린다. 살만 루시디, 아룬다티 로이, 줄리안 반스 등 쟁쟁한 작가들이 맨부커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리고 한국 작가가 이들 3대 문학상 중 하나를 수상한 것은 이번이 최초이다.
13세에 본 사진첩에서 시작된 질문
프랑스어판 <채식주의자>는 지난 2015년 5월에 ’Le Serpent à Plumes’ 출판사에서 <La végétarienne>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리고 올해 3월, 한강 작가는 파리를 방문해 프랑스 독자들을 만났다. 바로 파리의 최대 도서 축제인 파리 도서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선후배인 오정희, 김애란 작가와 함께 한국 여성작가들의 목소리를 주제로 한 컨퍼런스에 참가했던 것.
컨퍼런스에서 한강은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었음을 밝혔다. 모든 것은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을 집필한 중견 소설가이기도 한 아버지 한승원 작가가 열세 살이던 딸에게 당시 처참하게 학살된 광주 시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첩을 보여주면서 시작됐다. “그 사진들은 저로 하여금 인간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지극히 선하고 친절한 평범한 인간의 이면 어디에 도대체 다른 인간을 향한 저런 폭력성이 나온다는 말인가. 올해로 46세인 그가 줄곧 인간의 폭력이란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이유를 설명해주는 말이다.
<채식주의자> 역시 한강의 작품세계를 관통해온 폭력성과 그에 반응하는 개인의 저항을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그리고 있다. 영혜는 어린 시절 각인된 기억 때문에 철저하게 육식을 거부한다. 급기야 그녀는 식물이 되기를 꿈꾼다. 그리고 오로지 햇빛과 물만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소설은 육식을 거부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 ‘나’를 비롯해 세 인물의 시선으로 서술한다. 시인이기도 한 작가는 특유의 단아하고 서정적인 문체로 이 비극을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뒤늦게 불어닥친 <채식주의자>와 한강 열풍
<채식주의자>의 이번 맨부커상 수상으로 한국에서는 일명 ‘한강 열풍’이라는 문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수상 당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는 <채식주의자>를 몸소 구하러 나선 독자들이 몰려 품절 사태가 벌어졌다. 출판사인 창비는 부랴부랴 전국 서점에서 들어온 1차 주문량 25만부를 수급하느라 인쇄소를 여러 곳으로 늘려 불철주야로 책을 찍어내느라 진땀을 뺐다. 온라인 도서 시장도 달아오르기는 마찬가지. <채식주의자>는 온라인 최대 도서 전문 사이트 예스24에서 수상 당일 1분당 9.6권씩 판매되면서 역대 최고 판매 속도라는 진기록을 세웠고, 순수문학으로서는 드물게 5월 3주 집계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이와 더불어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같은 다른 작품들까지 덩달아 베스트셀러 차트 상위권에 진입했다.
영미권의 반응도 뜨겁다. <채식주의자>의 영어판인 <The
Vegetarian>은 세계 최대 온라인서점인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순위 100위 안에 성큼 진입한 뒤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마존이 언어와 문화권을 망라해 전세계에서 출간된 방대한 도서들을 취급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100위 내 진입은 한국 문학으로서는 전대미문의 성적이다. 특히 <The Vegetarian>은 한때 영국 아마존닷컴 순위에서 최고 16위까지 올라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영국 출판사는 바로 추가 2만부 인쇄에 들어갔다고 전한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날 부문은 원작자와 번역자 모두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비영어권 문학이 전세계에 소개되기 위해서는 원작의 우수성 못지 않게 ‘제2의 창작’이라 불릴 정도로 번역자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채식주의자>의 영어 번역은 영국인 데버러 스미스(Deborah Smith)가 맡았다.
<파리광장 / 조미현 gitanc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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