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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그린 화가’ 호안 미로(Joan Miró)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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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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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의 거장 호안 미로(Joan Miró,1893-1983) 피카소(Pablo Picasso)살바드로 달리(Salvador Dalí) 더불어 스페인 현대회화를 대표하는 걸출한 예술가다화려하고 명료한 색으로 자연과 인체문자를 상징하는 형태를 자유롭게 표현한 독창적 화풍으로 미술사에 획을 그은 화가로 평가된다.

미술사적으로 초현실주의 작가로 분류하지만원시미술에서 현대 야수주의입체주의미국 추상표현주의 회화에 걸쳐서구 문화뿐 아니라 서예 등 동아시아의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 예술에서 영감을 받아작가 자신만의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축했던 미로는물론 그의 생전 (미술사의 여느 거장들과 마찬가지로그 어떤 부류/사조로 정의되거나 분류되길 원치 않았다고 한다.   

살아생전뿐 아니라 사후에도 여전히 세계 각국에서 작품조명이 이뤄지고 있는  거장의 작품들을9 2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꿈을 그린 화가 호안 미로 특별전은 스페인 마요르카 호안 미로 재단에 소장된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된 대규모 전시로 총 2 64점의 작품들을 선보인다이는 재단 설립 이래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이번 전시에서는 유화과슈드로잉꼴라주테라코타브론즈태피스트리액션페인팅 등으로 제작된 주요 작품들을 크게 다섯 가지 테마로 구성되었으며작가가 예술적 영감을 얻은 소품미완성 작품 등을 활용예술 창작 공간인 작업실을 재현하여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자유롭게 구사한 초현실적이고 추상적인 미로의 작품 세계를 구체적인 시각에서 심층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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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 Miró , « Hommage à Picasso »,1966-1973 


호안 미로는 189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시계 제조업자이자 금속 공예 장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907년 바르셀로나의 미술학교에 입학, 1912년 이후 아카데믹한 교육보다는 실험적이며 자유롭고 독창적인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지도했던 프란세스크 갈리(Francesc Galí)가 운영하는 갈리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당시 미로는 당대 최신 경향이었던 야수파와 입체주의 작품을 보고 큰 영향을 받았다. 1918년 첫 개인전을 열며 등단한 미로의 작품에서 야수파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다.

1919년 파리로 나와 파블로 피카소와 알게 되었으며, 마쏭(André Masson) 옆집에 거주하면서 짜라(Tristan Tzara), 르베르디(Pierre Reverdy), 자꼽(Max Jacob), 아르토(Antonin Artaud) 등과 같은 시인들과 자주 만나며 교제하였다. 입체주의의 영향이 강한 일련의 정물화 제작에 몰두했던 미로는, 1921년 파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는데, 이때부터 입체파 풍의 데포르마시옹(déformation)이나 역학적 구성 속에 에스파냐인 특유의 강렬한 꿈과 시정이 감도는 화풍으로 변하였다. 1922년 고향으로 돌아와 농원에서 소재를 딴 역작을 발표, 특히 « 몬트로이그 농원 (La ferme) » (1921-1922)은 카탈루냐의 로마네스크 문양과 그림자, 빛을 사용해 자연과 사물을 소박하고 명확하게 표현했다. 현실을 변형시켜 꿈같은 상상의 세계로 흐르게 하는 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급속히 초현실주의로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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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 Miró, « La ferme », Barcelone – Montroig, Paris, Juillet 1921 - Mai 1922


1924년 미로는 초현실주의를 주창한 브르통을 비롯하여 마쏭, 에른스트, 탕기 등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활동하며, 점차 자유롭고 여유로운 화풍을 구사한다. 이후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 , 습관적 기법이나 고정관념, 이성 등의 영향을 배제한마음으로부터 순수하게 표현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기법을 가장 잘 구사하는 작가로 간주된다. 미로는 그러나 초현실주의의 예술적 재료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꿈과 무의식을 사용하면서도 이전의 민속적이고 환상적이며 마술적인 신비한 요소들을 종합해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 방법을 자유롭게 사용한 작가로 평가된다.

1925년 에른스트(Max Ernst)와 협력하여 러시아 발레를 위해 의상과 무대장치를 담당하고 벽화도 창작했다. 같은해 개최한 초현실주의 제1회전에도 출품한다. 이 시기에 끌레(Paul KLEE)에게 자극을 받아 더욱더 초현실주의적 환상에 장식성을 가미한, 유머감각이 넘치면서도 율동적 에너지가 돋보이는 리드미컬한 곡선과 밝고 경쾌한 색채를 사용한 독자적 화풍을 형성한다


< 파리광장 / 현 경, dongsimijs@gmail.com >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23-01-21 16:25:14 문화 / 예술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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