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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Art contemporain)’의 막을 올린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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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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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1887-1968), 화가이자 조형예술가이며1955 미국인으로 귀화한 프랑스의 지식인이기도 하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의 ‘근대적 예술’ 또는 ‘모던아트(Modern art/Art moderne)’라 불리는 시대에서,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포스트 모던아트(Postmodern art/Art postmoderne),  ‘동시대 예술’로 지칭되는 ‘현대예술(Art contemporain) (개념) 막을 올린 인물이다간략히 말하면근대예술(모던아트)시대는  고흐모네세잔피카소  오늘날 우리에게 ‘미술가의 전형’으로 자리잡고 있는 대다수 화가들의 시대로화폭에 화가 자신만의 ‘고유한 신체적 물질성’을 고스란히 담아내는데 주목하던 시절이다그런데 이런 시대적 맥락에서 처음으로 벗어나 도전장을 내민 탈근대(postmoderne) 인물이 바로 마르셀 뒤샹이다그는 미술작품의 전통적인 제작방식과 예술적’ 관습에 정면 도전하면서작가의 개념(컨셉) 바로 예술이 된다는 ‘개념미술(conceptual art/art conceptuel)’의 시초를 마련한 것이다바로 ‘레디 메이드(ready-made)’의 고안이다.   

1887년 블랭빌-크레봉(Blainville-Crevon)에서 앙리-로베르트-마르셀 뒤샹(Henri-Robert-Marcel Duchamp)으로 태어났다다다이즘(Dadaïsme) 중심적 인물인상주의(Impressionnisme)포비즘(fauvisme)큐비즘(cubisme) 영향을 받은 기계와 육체가 결합한 듯한 작품을 그려 대부분의 회화를 파기하였다변기를 작품화한 ‘샘(Fontaine, 1917)’과 같은 기성품(objet tout fait) 활용한 '레디 메이드(ready-made)오브제를 제시했다이로서 그는 미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 혁명적인 예술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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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 메이드(ready-made)’의 발명

1911년에 뒤샹은 퓌토(Puteaux)라는 입체주의 그룹에 가입해 프란시스 피카비아와 로베르 들로네, 후안 그리스가 등과 함께 잠시 활동한다. 이곳에서 불화를 겪기도 했는데, 그의 작품 «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 », (le Nu descendant un escalier) 이들이 호되게 비평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당시 크게 논란이 되었는데, 골절된 인물의 누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뒤샹은 작품을 입체주의 ‘앙데팡당전(Salon des  indépendants)' 출품했는데, 주최 측은 그에게 작품의 이름을 바꾸던가 아니면 작품을 도로 가져가라고 요청했다. 크게 상처 받았던 뒤샹은 전시회장에서 작품을 내오면서 다시는 그룹에 참여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고 회상한다. 1913 그는 작품을 뉴욕의 '아모리 (Armory Show)' 출품했는데, 당시 사실주의적인 그림에 익숙해 있던 미국인들은 비평조차도 할 수 없을 만큼 이해하지 못했다. 뒤샹은 결국 이러한 사람들의 반응에 실망했다. 특히 소위 아방가르드(avant-garde)미술가라 자처하는 이들의 정신적 안일함과 폐쇄성에 실망한 것이다.

이런저런 규칙들에 제약받고 끌려 다니는 것에 신물이 뒤샹은 마침내 '레디메이드' 고안하며, 미술 작품의 전통적인 제작 방식을 뒤엎었다. 뒤샹은 예술가가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진부하거나 대량생산된 물건들도 얼마든지 예술 작품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관습적인 미의 기준을 무시하고 미술 작품과 일상용품의 경계를 허물었던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은 « 자전거 바퀴 (Roue de bicyclette)» (1913)이다. 그 유명한 작품, «  (Fontaine)» 은 그의 세번째 레드메이드 작품이다. 1917년 뒤샹은 기성품 소변기를 하나 골라 자신의 이름대신 이 제품을 만든 제조업자의 이름’ -‘R.MUTT1917’- 으로 서명을 하고, «  » 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장에 갖다 놓았다. 여기서 뒤샹은 (작가)자신의 존재조차 철저히 감추며, ‘예술의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 일상적인 오브제일지라도 예술가의 서명과 함께, 이것이 미술관이라는 특정 공간/장소, 즉 예술제도의 산물인 ‘미술관에 놓이게 됨으로써 이 오브제는 더 이상 기존의 공산품이 아닌 예술작품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마르셀 뒤샹은1960년대 이후 다수의 미술사학자들과 비평가들에게 20세기 현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가’로 인식된다. 그 전에 이미, 앙드레 브레통(André Breton, 1896-1966, 20세기 대표적인 프랑스 시인, 소설가, 초현실주의 이론가, 예술가) 그를 ‘가장 지적인 세기의 인물’로 규정했다.

요약하면, 마르셀 뒤샹은 1945년 이후 예술의 발전에서 가장 근본적인 주요 전개양상과 관련된 예언자이며 선구자적 인물이다. , 미니멀 아트(art minimal)와 개념미술(art conceptuel), 그리고 신체예술(art corporel/body art)의 주동자이다. 그가 몰두했던 다수의 에세이에 따르면, 그는 또한 동시대 예술적 흐름, 즉 팝아트(Pop art), 네오다다이즘(Néodadaïsme), 오프아트(op art, 광학예술)과 동력예술(cinétisme)분야 등에 영감을 주었던 인물로 평가된다.

196881세의 일기로 마르셀 뒤샹은 오뜨드센 (Hauts-de-Seine)지역 뉘이쉬르센(Neuilly-sur-Seine)에서 화려했던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발명작, ‘레디 메이드(ready-made)’를 비롯해 그의 예술적 작업과 태도는 현대 예술의 다른 여러 조류에 막대한 영향을 여전히 미치는 중이다.


< 파리광장 / 현 경, dongsimijs@gmail.com >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23-01-21 16:25:14 문화 / 예술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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