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회화의 아버지’ 폴 세잔느(Paul Céz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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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화가이자 ‘큐비즘(cubisme, 입체파)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폴 세잔느(Paul Cézanne)은 1839년 프랑스 남쪽 지방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에서 태어나1906년 67세의 나이에 같은 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세잔느는 사물의 기본이 되는 형태를 탐구한 작가다. 사물의 본질적인 구조와 형상에 주목하며, 자연의 모든 형태를 원기둥, 구, 원뿔로 해석한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이런 까닭으로, 20세기 초 구상미술에서 추상미술로 넘어가는 연결고리를 제시하며 큐비즘의 탄생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작가로, 미술사적 관점에서 ‘현대 회화의 아버지’ , ‘입체파의 아버지’로 평가된다.
생뜨 빅뜨와르 산(Montagne Sainte-Victoire, 1904),
피라델피아 미술박물관 소장 (Philadelphia Museum of Art)
세잔느는 프로방스의 수많은 풍경을 다양하게 그린 작가다. 특히 엑상 프로방스 시골의 풍경에 몰두했던 그는 대표적으로 생뜨 빅뜨와르(Sainte-Victoire)산을 주제로 여러 작품을 제작했다. 생뜨 빅뜨와르 산 작품은 최초로 추상적인 개념을 생각해낸 그림으로 기하학적 형태와 견고한 색채의 결합이 추상에 가까워 보이는 걸작이다. 세잔느는 이 그림을 그린 후 자신은 « 빅뜨와르 산을 그린 것이 아니라, 선과 색의 배치를 그린 것이다 » 라는 자신만의 견해를 밝혔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적(모더니즘적) 발언으로 받아들여지며 ‘현대미술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갖게 된 것이라 알려져 있다.
자연을 단순화된 기본적인 형체로 집약하고, 색채와 붓 터치로 입체감과 원근법을 나타내는 새로운 기법으로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그의 개념과 작품은 피카소와 브라크 등 입체파(큐비즘) 화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특히, 피카소를 중심으로 하는 입체파는 세잔느 예술의 직접적인 전개라고 볼 수 있다.
« 나의 유일한 스승, 세잔느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
-파브로 피카소 (Pablo PICASSO, 1881-1973)-
소설가 에밀 졸라(Émile Zola)와의 우정과 결별 그리고 사과
세잔느는 당대 유명한 소설가였던 에밀 졸라(Émile Zola, 1840-1902)와의 오랜 세월을 걸친 우정과 결별로 유명하다. 그들은 엑상 프로방스에서 만난 어린시절 친구로 30여년이 넘는 긴 세월 우정을 나누지만, 졸라가 후에 그의 소설에서 세잔느를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재능 없는 실패한 화가로 표현한 것이 계기가 되어 둘 사이는 영원히 멀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 (Nature morte aux pommes et aux oranges, 1895-1900), 파리 오르세이 미술관 소장(Musée d'Orsay, Paris)
폴 세잔느의 작품 중 사과가 그려진 정물들은 모두 에밀 졸라와의 관계속에서 비롯된 소재로 졸라가 세잔느에게 항상 우정의 표시로 사과를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세잔은 사과로 파리(미술계)를 정복하겠다는 야심을 가졌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사과 그림에 몰두하며 다양한 시점(각도)과 색감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하나의 캔버스에 각각의 모든 다른 순간 다른 각도(위, 아래, 옆 등)에서 바라본 사과를 (한 화면에) 담고 일정치 않은 선과 명암, 뒤틀린 형태로 구성한다. 이 작품들에서 그는 또한 사과를 표현하기 위해 사과가 아닌 사물과 배경 역시 밀도있고 치밀하게 묘사하며, 대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빛의 반사광, 색감의 조합을 통해 (작가가) 원하는 부분(주제)을 자연스럽게 강조하는 특징을 보인다.
«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세 개 있다. 첫째가 이브의 사과이고, 둘째가 뉴턴의 사과이며, 셋째는 세잔느의 사과이다. 평범한 사과는 먹고 싶지만, 세잔느의 사과는 나에게 말을 건넨다. »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 1870-1943, 상징주의 예술가)-
세잔느는 평소 « 나는 그림을 그리다가 죽기로 맹세했다 » 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1906년 어느 추운 늦가을 그는 엑상 프로방스 교외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 그림을 그리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되었고, 며칠 뒤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폐렴이었다. 그의 고향인 엑상 프로방스에 있는 공동묘지에 묻혔다.
선구적 예술가로서 일생을 치열하고 고독하게 살았던 세잔느는 그러나 20세기 가장 혁신적인 미술 영역에 큰 영감을 주며 고전주의를 ‘미술의 역사 속’으로 밀어낸, 현대 미술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된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과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이 등장하기 전까지…
< 파리광장 / 현 경, dongsimijs@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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