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사 ‘제2초강대왕도’, 40년만에 프랑스에서 환수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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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1693호(2010년 12월21일 지정) -
40년 전 도난당한 것으로 알려졌던 경남 고성군 옥천사의 불화 ‘시왕도(十王圖)’ 중 한 폭이 프랑스에서 환수됐다.
지난 28일 보물 제1693호로 지정된 옥천사 '시왕도'(十王圖)’의 한 폭인 '제2초강대왕도'(第二初江大王圖)’를 프랑스에서 환수했다고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자승스님)과 경남 고성 옥천사(주지 진성스님)이 밝혔다.
옥천사의 명부전에 봉안된 '시왕도'는 모두 10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에서 '제1진광대왕도', '제2초강대왕도' 2폭이 도난당해 현재 8폭만이 남아 있다. 도난된 사실은 사찰 기록물을 수집·보관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중앙기록관에 보관된 서류를 통해 1976년 11월12일 확인됐다. '제2초강대왕도'는 도난당해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작품(보물)이다.
조계종에 따르면 옥천사의 대웅전과 명부전 불화는 1744년 화승 효안(曉岸) 스님 주도하에 조성되었다. 대웅전의 '영산회상도'와 '삼장보살도'는 현재 1997년과 1988년에 도난된 상황. 명부전 불화인 '지장보살도'와 도난된 '제1진광대왕도', '제2초강대왕도'를 제외한 '시왕도' 8점은 2010년 12월21일 보물 제1693호로 지정되었다.
« 제2초강대왕도 »
총 10폭으로 구성된 옥천사 명부전 불화 '시왕도'는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을 근본경전으로 조성된 그림이다. 지옥을 다스리는 10대 왕의 역할을 담은 경전이다. 고려시대에 시왕신앙이 들어와 조선시대에 이르러 크게 유행하면서 많이 제작된 불화로 알려져 있다.
옥천사 '시왕도'는 한 폭에 시왕 1위(位)를 묘사한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각 화면에는 용두장식 의자에 좌정한 시왕과 권속을 상단에 배치하고, 하단에 채색된 구름문양으로 화면을 구획하여 각 시왕에 해당하는 지옥 장면을 묘사했다.
이번에 환수된 '제2초강대왕도'의 ‘초강대왕’은 죽은 후 이칠일(14일)째 되는 날 만나게 되는 왕을 지칭한다. 초강대왕은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지 않거나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주지 않은 자가 펄펄끓는 무쇠솥에 빠져 고통을 받는 지옥을 다스린다. 다시말해, 초강(初江), 즉 죽은자가 처음으로 건너게 되는 강, 에서 망자의 죄를 심판하고, 초강을 건너는 망자를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의 소장자는 프랑스인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국에서 체류하던 마지막해인 1981년에 인사동 고미술상에서 옥천사 '제2초강대왕도'를 구입. 이를 프랑스로 가지고 돌아갔다고 한다. 옥천사 '제2초강대왕도'는 35년간 이 프랑스 개인소장자가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최근 프랑스 국립기메박물관을 통해 문화재청에 알려졌다.
이 내용을 전해받은 조계종은 도난여부에 대한 근거서류를 조계종 중앙기록관에서 확인했다. 이후 조계종은 문화재청 국제협력과를 통해 프랑스법 및 국내법에 대한 법률자문을 받아 개인소장자와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난 문화재임을 확인한 소장자는 조계종과의 협의 끝에 불화가 보존되어 있던 원 사찰인 옥천사에 반환하는데 동의했다. 이후 옥천사 측에서 프랑스를 방문하여 환수 업무를 마무리했다. 이번 환수는 개인소장자에게 기증사례비를 지급하는 유상기증형태로 진행되어 환수됐다. 이어서, 지난 9월 23일 마침내 불교중앙박물관 수장고로 이운됐다.
환수된 '제2초강대왕도'는 구입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불화의 보존상태도 양호하다고 전해진다. 이 불화는 불교중앙박물관에서 불화 보존상태를 면밀하게 확인한 후, 안정화 기간을 거쳐 옥천사로 이운할 예정이다.
조계종은2014년과 지난 8월12일에도 옥천사의 도난 불교문화재인 나한상* 2점씩, 총 4점을 환수했다 : 고성 옥천사 나한전 나한상은 모두 16점이었으나 1988년 7점을 도난당했다. 이 중 총 4점이 돌아와 현재13구의 나한상이 모습을 갖추게 됐다.
* 나한(羅漢)은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주로 소승불교에서 수행을 완성한 사람을 이르며, 대승불교의 보살과 비교할 수 있다.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으므로 부처나 보살 못지않게 공양을 받을만한 위치에 있어서 대개 나한전이라는 전각에 모셔진다. 나한은 응공(應供)이라고도 하며, 진리와 함께한다 해서 응진(應眞),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해서 무학(無學)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나한상은 불상이나 보살상과 달리 불교 경전의 도상에 얽매이지 않는다. 즉, 여러 모습의 자세와 다양한 지물(持物), 염주(念珠), 발(鉢), 동물, 경전, 금강저(金剛杵), 과일 등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극도로 생략된 모습이 있는가 하면, 움직임이 크고 해학적인 모습도 있다. |
1988년 도난당했던 옥천사 나한상 2점(위), 28년 만에 환수(2016년8월12일).
옥천사 나한상은 조선후기 최고 조각승으로 꼽히는 색난스님이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각작품이다. 색난스님은17세기 후반 전라남도 고흥 능가사에 거주하면서 호남과 영남에 많은 불상을 만들었다고 알려졌다. 옥천사 나한상은1701년에 색난스님이 제작한 해남 대흥사 응진당 나한상과 동일하여 1700년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한다.
< 파리광장 / 현 경, dongsimijs@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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