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시대의 예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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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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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저널리즘 속 고통 받는 아이들
지난 4월 4일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 주의 칸 세이칸 지역에 화학 무기 공격으로 인해 70여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서방의 주요 언론에선, 시리아 정부군이 반정부군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마을에 화학무기를 이용한 공격을 가하여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연일 보도했다. 이 공습으로 인해 5일에 열린 유엔 긴급회의에서 미국 유엔 대사가 화학 가스로 인해 숨진 희생자들 사진을 보여주며 아사드 정권의 학살 행위에 대한 국제 사회의 움직임을 촉구하였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독자적인 행동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다음날인 6일에, 프랑스 대표 일간지 중 하나인 리베라시옹은 이 끔찍한 사건에 의해 숨진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전면에 실었다. 같은 날 뉴욕 타임즈 등 다른 언론에서도 이보다 덜 폭력적이었으나 사건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수많은 희생자들의 사진과 영상을 보도하였고, 이러한 이미지들은 빠른 속도로 SNS를 통해 대중에게 유통되었다. 그 중 우리에게 끊임없이 노출 된 대표적 이미지는 죽은 쌍둥이를 양손에 안고 비탄에 잠긴 아버지 모습과 응급 처지를 받고 있거나 입에 거품을 물고 죽어가는, 또는 이미 죽은 어린 아이들의 모습들이었다. 이러한 이미지들로 인해 세계인들은 다시 충격에 빠졌고, 끝나지 않은 시리아 내전의 심각성이 다시 도마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수많은 분쟁의 사진과 영상이 우리에게 쏟아져 들어오고 우리는 이미 이러한 보도 사진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대중에게 보다 더 뜨겁고 강한 도덕적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이미지는 참사 속에서 고난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그 중 아이들의 사진은 더욱 큰 이슈를 낳았 다.
작년 9월 터키 해안에 익사 채로 발견된 시리아의 난민 소년 아일란의 사진은 세계인들에게 난민의 심각한 인권 문제를 부각시켰다. 이 세 살 배기 아이의 죽음을 담은 사진으로 인해 유럽 내의 난민 수용 거부의 목소리는 다소 잦아들게 되었고, 독일과 프랑스의 난민 수용 정책에도 힘이 실렸다.
더 오래된 예로는, 1972년 네이팜탄에 의해 화상을 입고 거리로 뛰쳐나와 나체로 울며 달리고 있는 킴 푹의 사진을 들 수 있다. 이 사진은 당시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고, 반전 운동을 확산 일으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2013년, 알제리 출신인 작가 아델 압데세메드는 이 보도사진 속 킴 푹의 모습을 실제 크기의 조각상을 제작을 했다. 작품명이 "Cri" 인 이 작품은, 잔뜩 겁에 질린 채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뛰어가는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했던 2차원의 평면적 사진 속 인물이 3차원의 입체적 조각으로 제작되자, 사진 속에서 인식 되지 못했던 소녀의 앙상한 체격과 화상의 아픔으로 인해 드러난 얼굴의 고통이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또한 그녀는 울고 있으나 울음 소리는 들리지 않는 이질감은 뭉크의 절규와는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왔다.
이 작품은 상아로 제작되었는데, 밀렵꾼들에 의해 수많은 코끼리들의 고통과 죽음으로 채취되는 이 재료가 역사 속 피해 아동을 재현하는 조각에 사용됨으로써 인간의 폭력과 시대의 악행으로 인한 그들의 동일한 아픔을 함께 표현하고자 하였다. 작가는 무엇보다 이 보도 사진 속 인물을 입체적 조각으로 재현하여 그들의 아픔을 대중에게 마주보게 함으로서 그 동안 잊혀져 가고 있던 그들의 역사적 맥락의 일반화를 경계 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이 다른 형태의 희생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 시켜주고자 했다.
사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참상을 담은 보도 사진들은 일상에서 쉽게 검색이 되고 리트윗 되며 빠르게 전달 되고 있다. 그러나 그 전달되는 속도만큼 또 다른 자극적인 뉴스의 이미지의 대체로 사태의 위중함을 인식하기도 전에 쉽게 잊혀진다. 이러한 현상이 낳는 사건들의 일반화가 우리를 집단 무의식 속에 사로 잡히게 하여, 고통을 받는 아이들을 외면한 채 그들의 고난은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 지속 되고 있는 것이다.
시리아에 화학 무기로 인해 사망한 어린이들 사진이 주요 언론을 뒤덮은 당일, 트럼프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거치지도 않은 채 시리아 정부군을 향해 미사일을 날렸다. 이미 대중에게 각종 매체에서 쏟아내는 희생자 아이들의 사진으로 인해 시리아 정부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고 있었다. 취임 석 달 만에 주요 정책 시행 실패로 지지율이 하락세였던 트럼프는 이로 인해 러시아와의 내통 스캔들에 물타기 효과와 함께 서방 국가들의 지지를 받음으로써 정치적 입지 굳히기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시리아 공격이 결코 무고한 희생자 발생을 막는 근본적 문제 해결은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수많은 무고한 아이들이 터무니없는 전쟁의 희생자가 되어가고 있고,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담은 사진은 지속적으로 여러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 된다. 킴 푹의 이미지가 베트남 종전의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면, 과연 시리아에서 희생된 아이들은 어떠한 상징으로 우리에게 남을 것인가?
<파리광장 / 김지현 july79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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