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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대의 예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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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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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모든 기준을 전복시켜 버린 1,2차 세계대전의 어두웠던 시간들이 지나고 산업혁명과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달로 불과 반 세기만에 인류는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현실 속에서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동시에  미디어의 발달은 과거 전쟁의 시절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전세계의 참혹한 현장의 실제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텔레비전과 컴퓨터, 그리고 휴대폰을 통해 여과 없이 우리에게 쏟아 놓는다.

이로 인해 현대인들이 받아들이는 참사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생생한 나머지 오히려 현실성을 잃어 버려 마치 3D영화를 감상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고, 심지어 반복되는 영상은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연민은 커녕, 자신은 참혹한 현장에 희생자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묘한 안도감 마저 느끼게 한다.

 "오래 전 호메로스에 있어서 올림푸스 신들의 관조 대상이었던 인류는 이제 자기 자신의 관조 대상이 되었다. 자신의 소외는 인류로 하여금 인류 스스로의 파괴를 최고의 미적 감각의 쾌락으로 체험케 하는 정도에까지 도달하였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

 중대한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원인을 분석 하기도 전에 또 다른 사건들이 포털과 SNS에 떠올라 종전의 사건은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못한 채 뒤로 밀리고 덮이게 된다. 헉슬리가 두려워했듯이 쓸데없는 뉴스들의 홍수와 정보들로 인해 사건의 진실들은 무감각의 바다에 수장이 되어가고, 우리의 기억은 그렇게 쉽게 망각 되어진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건들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클릭 하나로 이미 누군가에 의해 잘 정돈된 정보를 읽고 그 누군가 혹은 미디어가 각색한 사건의 표면적 모습을 사건의 진실이라 믿고 판단해 버린다.  현대인들은 이렇듯 쉽게 얻은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에 대한 사려 깊은 관찰과 본질에 대한 의미 있는 성찰을 하지 못하고, 급기야는 그것이 자신에게 드리워지는 일일 때에도 그 어둠의 그림자를 자각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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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제3차대전과도 같이 정보에 의한 인간의 대량학살이 이루어지는 시대에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 

아우슈비츠(Auschwitz) 이후 더 이상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한 아도르노와 예술은 허위적 사치가 될 수 있다고 한 카뮈, 정치의 심미화에 이용된 예술을 개탄한 벤야민은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를 써야만 하고, 자신의 시대의 노예선에 탄 예술가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창조를 해야만 한다고 하였으며예술의 정치화로 인해 파시즘에 대항할 수 있는 대중 미술에 희망을 가졌다.

이 어둠이 도처에 깔리고 있는 우리 시대에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표현을 빌려, 대중에게 사유를 던져주는 반딧불과 같은 미광의 예술을 통해 미처 의식하지 못한 현상을 공적인 담론으로 끌어올려 대중에게 인식 시켜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은 어쩌면 이 어두운 시대에 우리가 바라보고 가야 할 등대가 되어줄 지도 모른다.

홀로코스트의 직접적 경험이 없는 2세대로서의 기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볼탕스키와, 911 테러의 과잉된 미디어 영상에 의한 현실감 상실을 고발한 기욤 샤마히언의 작품, 그리고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정형화 되어버린 비극적인 보도 사진 속 인물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자 상아로 된 조각을 만든 아델 압데쎄메르와, 코소보에서 일어난 젊은 청년의 죽음에 대한 무슬림 문화권의 장례식을 담은 사진을 서구 도상학적 시선으로 해석하여 수용됨을 비난하는 작업을 한 파스칼 콩베르 등의 작품등을 살펴보며 그들의 작품이 그저 작은 불씨로써만 남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파리광장 김지현 july7911@gmail.com>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23-01-21 16:25:14 문화 / 예술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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