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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부자, 로레알 상속녀 릴리안 베땅꾸르 별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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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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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20()에서 21() 사이 프랑스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의 상속녀 릴리안 베땅쿠르가 별세했다. 향년 94. 그녀의 딸은 엄마가 평온하게 떠났다고 했다. 릴리안 베땅쿠르는 19221021일 파리에서 태어나, 엄격한 집안에서 자랐다. 피아니스트였던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다섯살때 세상을 떠났다. 베땅쿠는 르15세에 로레알에서 처음으로 견습을 하게 되는데,  로레알 창업자인 그녀의 아버지, 위젠 슈엘레  Eugène Schueller의 수탁자로 여겨졌다.

릴리안 베땅쿠르는 2017년 미국 경제 잡지인 포비Forbes가 집계한 그의 재산은 400억 달러로,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고의 부자이고, 전체 재산가들 중에는 14번째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루이뷔통 모에 에네시(LVMH)의 사장인 베르나르 아르노  Bernard Arnault 다음으로, 두번째로 부자다.  

릴리안 베땅쿠르는  2012년 이후로 병약해져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물러났다. 로레알 이사회도 떠났다. 현재 로레알은 그녀의 딸이 회장으로 있는데, 20161231일까지 릴리안 베땅쿠르는 로레알사의 지분 33,05%를 가지고 있는 대주주였다.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베땅쿠르 사건

그녀는 은퇴하기전 10년 동안 힘든 법정 공방을 겪어야만 했다. 2007년말부터 딸과의 집안 싸움에서부터 시작된 이른바, 베땅쿠르 사건은 프랑스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고,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녹음 테잎이 드러나면서, 릴리안 베땅쿠르의 탈세와 불법 정치자금까지 드러나 버렸다.

2007년 그녀의 남편인, 앙드레 베땅꾸르가 사망한뒤, 릴리안 베땅꾸르는 천문학적인 재산을 상속받게 된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사진작가인 60대 남자친구가 있었다. 남편의 사망이후 사진작가를 자주 만나며 외로움을 달래던  베땅꾸르는 2007년 그에게 기부금 목적으로 1억 유로[1 5천억원]를 건넨다. 이 사실을 안 베땅꾸르의 외동딸인, 프랑소와즈와 그녀의 남편은 약점 남용혐의로, 엄마의 친구를 사기꾼으로 고소하고, 자산 관리 자격 부적격자로 엄마 또한 고소했다.

이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어떤 녹음 테잎이 언론사로 들어가서, 당시 엘리제 궁에까지 불똥이 튀게 된 것이다. 2010년 릴리안 베땅꾸르의 저택에서 있었던 대화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를 인터넷 언론인 메디아파르Mediapart가 보도했다. 녹음 내용을 보면, 그녀는 1999 Arros 섬을 구입했고, 신고되지 않은 두개의 외국 은행구좌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 사회를 동요시킨건 그녹음 내용중에는 당시 노동부 장관인, 에릭 베르뜨 Eric Woerth집안과 베땅꾸르가 묘한 관계가 얽혀있음을 알수 있었다.

베르뜨는 2007 5월에서 2010 3월까지 예산부 장관을 연임했고, 당시 집권여당인 UMP당의 회계를 맡고 있으면서, 사르코지 대통령의 연금 개혁안을 잘알고, 이해하고 있었던 장관이었다. 2008년말 지지도가 약한 사르코지는 베르뜨를 내세워 연금개혁을 이루고, 2012년 대권에 또 한번 도전할 야심찬 계획을 꾸미며 그를 2010 3월에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한다.

 사르코지가 시장으로 재직할때부터 베르뜨는 베땅꾸르와 관계를 가지며 정치자금과 연관되어 있었다. 2007년 사르코지의 불법 대선자금이 베르뜨를 통해 베땅꾸르에게서 현찰로 흘려나왔고, 베르뜨는 그외에 다른 정치인들의 자금줄을 대어주는데 중간 역할을 했다. 그리고 정치인들을 돕는 베땅꾸르의 장부를 잘 관리 해주기 위해 베르뜨 장관은 그의 아내를 로레알사 회계로 취직시키기까지 한다. 거대 상속녀의 탈세와 불법 정치자금이 드러나고, 정치인들의 도덕성과 공인의 거짓말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프랑스인들은 분노했고, 이는 2010년 가을 프랑스 전체를 달구었던 연금개혁안 파업을 더욱 불타오르게 했다. 당시 프랑스 국민들은 정년을 연장하지 말고, 베땅꾸르의 금고를 털어라며 시위를 벌였다.

2010 11월에 베르뜨 노동부 장관은 물러났고, 2010년을 얼마 안남긴 12월 로레알가의 모녀는, 딸이 엄마에 대한 고소를 취소하면서 화해했다. 2010년을 마감하며 프랑스 언론들은 베땅꾸르 사건을 <2010년의 연속극> 혹은 <복잡한 집안사>로 보고 있었다.

오랜 법정 공방 끝인 2016824, 문제의 사진작가는 약점남용으로 징역 4년의 집행유예와 375천유로의 벌금형을 받았고, 정치인들과 베르뜨 전 장관은 영향력 있는 거래 혐의로 조사만 받았다. 사건을 맡은 보르도 법정은 문제의 녹음 테잎에 대해서는 녹음을 한 전 집사가 그녀를 보호할 목적으로 녹음한 것이기에 형사 책임이 없다고 결론내렸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여성 재산가인 릴리안 베땅쿠르는 세상을 떠났다.

                            

<파리광장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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