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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평등하지만, 최고만 들어올 수 있다. 다큐멘터리 “프랑스 영화학교 입시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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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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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막을 내린 제 14회 (2017년)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 프랑스 영화학교 입시전쟁 »이라는 영화를 소개했다. 원제는 르 콩쿠르(Le Concours). 영화는 제목 그대로 영화학교 라 페미스(La Femis) 3주간의 입학시험이 치뤄지는 전쟁터를 탐구한다. 한국 사회에서 ‘입시전쟁’이라 하면 늦은시간까지 학원에서 고군분투하는 학생들과 그들을 뒷바라지 하는 학부모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의 ‘입시전쟁’은 입시생을 선택하는 수용자들, 즉 심사위원들의 치열한 공방전에 가깝다.

영화 포스터는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로 가득 메워져있다. 그 중 세 명의 학생만이 채색 되어있는데 이들이 실제로 ‘선택된’ 학생들이다. 매년 1200명이 넘는 지원자들이 페미스의 문을 두드리지만 자리는 단 40명에게만 허용된다. 페미스의 입학시험은 연출, 각본, 제작, 배급, 미술, 음향 등의 분야에서 한가지를 선택해 1차 필기시험, 2차 실기, 3차 심층면접을 본다. 흥미로운 점은 이를 평가하는 심사위원들은 학교 관계자가 아닌 각 분야 현역으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다. 페미스는 수업이나 교사가 없고 현역들이 찾아와 기술을 전수하는 방식으로 학업이 이루어진다. 프랑스에서는 예외 없이 수요일에 새 영화를 개봉하고 작품을 개봉하기 하루 전날인 화요일에 페미스에서 시사회를 갖는다. 페미스 학생들은 이 날 세계 유명 감독들에게 직접 조언을 구할 기회도 갖게 된다.

3단계의 입학시험의 꽃은 심층면접이다. 들뢰즈의 딸이자 유명 영화감독인 에밀리 들뢰즈, 프랑스 여성영화를 이끄는 레티시아 마송, 파트리시아 마주이와 영화학자 알랭 베르갈라 등 유명 프랑스 영화인들이 입시 사정을 맡은 교수로 나와 불꽃 튀는 논쟁을 벌이는 것도 이 영화의 볼거리다. 그 중에서도 모두에게 ‘미치광이’로 통하는 학생을 합격시킬 것인가 탈락시킬 것인가에 대해 갑을론박 을 벌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 학생을 두고 한 감독은 «그가 페미스에 입학한다면 그를 피할거에요. 미치광이니까. 하지만 그를 입학시킬거에요. 미치광이라도 훌륭한 감독이 될 수 있어요라고 한다. 이에 다른 심사위원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것 »이라며 반박하지만, 이 학생의 입학을 찬성하는 또 다른 심사위원은 « 그건 감독에 대한 당신만의 정의에요라고 첨언한다.

이 학교의 입학심사에서 실제 만장일치로 평가되는 학생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 다큐멘터리에서 만큼은 그런 광경을 볼 수 없었다. 후보를 떨어트리는 기준도 제각기 다르다는게 흥미롭다. 뛰어난 언변으로 수월하게 면접을 치뤘던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Science Po) 출신의 학생을 두고 “말로서 잘 표현하는 것이 영화로도 잘 표현한다고 말할 수 없다.”말하고, 1차 필기시험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거두고 면접장에서도 깊은 내공을 보여줬던 학생을 두고는 “이미 잠재력이 다 발현된 상태”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영화에서 심사위원들의 논쟁 장면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좋은 감독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한 심사위원은 긴 토론 끝에 숫자만 남겨진 채점표를 보며 « 숫자가 우리 희망을 들어주길 바래야죠. »라는 말을 남긴다. 그들이 그토록 격렬하게 주고받은 의견들을 수치화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허무하기도 할 것이다. 페미스의 입시현장은 ‘모두가 평등하지만, 최고만이 들어올 수 있다’라는 프랑스의 공화주의적 이상을 적나라하게 절감케 한다.

전쟁 같은 입학시험이 끝나고 선택된 학생들이 학교 스튜디오에서 프로필 사진을 찍는 장면은 잔잔한 여운을 준다. 사진기 앞에는 의자가 놓여있고 한 학생이 여기에 앉으면 되냐고 묻자 사진기사는 앉을 필요 없다고 말한다. 학생이 « 그럼 뭘하죠? » 라고 되묻자 « 그냥 안 해도 되요 »라며 심드렁히 답한다. 이 장면은 마치 우리가 ‘입시’라는 것을 위해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전쟁터는 입학 너머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격전을 벌이는 공간과 시간이다. 그 끝에서 <프랑스 영화학교 입시 전쟁>은 공교육과 엘리트 양성의 양립 가능성을 증명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프랑스 영화학교 입시전쟁»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감독 클레르 시몽이 <숲으로 이룬 꿈>(2015) 이후 발표한 신작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클래식 다큐멘터리 최우수상을 받았다.

 

<파리광장 /  차시은 nmejoj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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