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베이비시팅 알바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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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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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30분
열쇠로 굳게 잠겨있는 학교 정문 앞, 프랑스 학부모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한 쪽에 자리를 잡는 동양인 여자, 바로 나다. 학교 수업이 없는 수요일을 제외한 평일에는 이렇게 학교로 직접 아이를 데리러 간다.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사람은 부모, 조부모, 나 같은 학생 베이비시터 등으로 다양한 편. 시간이 지날수록 정문 앞은 사람들과 애완견, 자전거, 유모차 들로 점점 북적이기 시작한다.
오후 4시 40분
학교 종이 울리고 관계자가 문을 열어준다. 시멘트 바닥으로 된 작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 앞에 도착. 교실 앞 복도에는 다섯 살배기 아이들의 이름이 써있는 선반과 행거가 나란히 줄지어 있다. 나는 아이의 가방을 집어 들며 담임선생님께 인사를 건넨다.
“봉수와! (Bonsoir)”
나의 얼굴을 확인한 선생님이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후 5시
“오늘 학교 어땠어?”
“좋았어. 근데 오늘 간식 가져왔어?”
아이의 가방을 뒤져보니 다행히 아이 엄마가 과일 주스와 비스켓 한 봉지를 넣어두었다. 다행이다. 아니면 또 빵집을 지나가면서 마들렌(Madeleine)을 사달라며 울고불고 난리를 칠 지도 모를 일. 간식 비용은 부모가 지불해주지만 집에도 먹을 것이 있기 때문에 부모는 되도록이면 밖에서 간식거리를 자주 사주지 않았으면 한다.
다 마신 주스 통을 건넨 아이가 보도블럭 한 켠에 피어있는 들풀을 꺾는다.
“그건 왜?”
“이거 엄마 주려고. 엄마가 좋아할 거야.”
오후 5시 30분
아이와 한바탕 신나게 놀아주는 시간.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맘모스 모형인 ‘마니’ (‘아이스 에이지’에 나오는 맘모스의 이름을 붙임)와 카우보이 피규어인데, 이 둘을 포함한 몇몇 선택 받은 장난감만 아이의 ‘해적단’에 들어갈 수 있다. 이 ‘해적단’에겐 멋진 레고 집과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나머지 피규어들은 학교나 병원에 가는 등 소소한 일상을 살다가 갑자기 쳐들어오는 해적들에 의해 항상 처참한 결말을 맞게 되는데, 슬프게도, 이게 내 역할이다.
오후 6시 20분
“10분 후에는 샤워할 거야.”
이런 식으로 두 세 번 미리 언지를 주어도 아이의 놀이를 멈추기는 늘 어렵다.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더 놀겠다고 떼를 쓰고, 욕실에서 괜한 물건을 헤집어 놓으며 심술을 피우기 일쑤.
아직도 프랑스 부모들에 비해서는 물렁하기 그지없지만 나도 처음보다는 훨씬 단호하게 아이를 대하는 편이다. 아이가 고래고래 울고 소리를 질러도 부모의 눈치는 안 본다. 부모들이 전적으로 내 권위를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아이가 잘못했으니 혼내고 울리려니 한다.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헹구는데, 도통 가만히 있질 않는 아이 탓에 내 옷에도 여기저기 물이 튄다. 커다란 타올로 감싸고 나와서 잠옷으로 갈아 입히고 드라이기로 시원하게 머리를 말려준다.
오후 7시
부엌 냉장고를 열어본다. 전날 먹다 남은 음식이 있으면 그것을 데워준다. 아니면 간단히 빵, 슬라이스 햄(jambon), 삶은 야채를 꺼내서 접시에 담아준다. 요즘 같이 더운 날에는 멜론을 꺼내서 썰어주기도 한다.
밥 먹기 싫어서 딴청 피우는 아이와 씨름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부모가 온다. 보통 아이의 아빠가 탁아소에 있던 둘째를 데리고 먼저 도착한다. 그 날 그 날 기억나는 아이가 잘한 일, 못한 일, 특이사항 등을 부모에게 전달해주는 것으로 알바 끝!
프랑스에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다양한 알바를 할 수 있겠지만, 베이비시팅의 가장 큰 장점은 프랑스인 가정으로 직접 들어가볼 수 있다는 점이다. 베이비시팅을 하면 아이의 가족과 일상의 일부를 공유하게 되기 때문에 언어를 포함해서 프랑스 문화에 대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물론 아이의 안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이 있고,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단점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을 좋아하고 단순히 일만 하는 것보다 사람들과 깊이 관계 맺는 것을 좋아한다면 도전해 볼만한 일이다.
<파리광장 / 김연수rachelle.kim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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