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프랑스 첫 만남, 첫 만찬, 그리고 주병을 발견한 피에르-엠마뉴엘 후 Pierre-Emmanuel Roux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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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엠마뉴엘 후 Pierre-Emmanuel Roux 교수
2023년 5월 2일 대사관 주최로 한국과 프랑스의 첫 만남과 첫 만찬을 기념하는 행사가 세브르 도자기 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첫 만남 관련 공연이 있었고, 프랑스는 샴페인을 한국은 막거리를 선보이며 한불 간의 우정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한불간의 관계로 병인양요를 생각하고 있는데, 이에 앞선 만남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851년 5월 2일 한국, 이른바 당시의 조선과 프랑스가 첫 만찬을 가졌다고 하는데, 이를 밝혀낸 사람이 현재 파리 씨테 대학의 피에르 엠마뉴엘 후 Pierre-Emmanuel Roux교수다.
연구를 통해 한불 관계의 새로운 첫 만남을 발견한, 후 ROUX교수를 만나서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첫 만남을 어떻게 찾으신거에요 ?
-2005년부터 2007년부터 파리 동양언어학교(Inalco) 한국어과에서 석사학위를 했는데, 그때 지도 교수님이 병인양요를 다시 연구해보라고 한거에요.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1860년대만 연구하면 무슨 좋은 결과가 나올까 싶어서 앞과 뒤 시대를 함께 연구를 했어요. 그래서 1840년부터 연구했죠. 프랑스 영사나 해군 장교가 처음으로 동아시아, 즉 중국이나 일본 갔을 때부터 연구해보다가 고래가 나왔잖아요. 조선 바다에 고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잡으러 간거죠. 제가 외무부 고문서관에 처음 갔을 때 처음 요청한게 전라도 비금도에 난파된 나르발호(Narval) 관련 자료였어요. 조선 관련 자료들은 거의 중국 고문서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상하이 영사 관련 고문서를 한번 보려고 했죠. 처음 접한게 몽티니 영사가 조선으로 갔다는 보고서였어요.
그 첫 만남에 관련된 건 제가 2012년에 발간한 병인양요 관련 서적인 '십자가, 고래, 그리고 대포[La Croix, La Baleine et Le Canon, Ed. Cerf]에 10 페이지 정도 있어요.
병인 양요 관련 그의 서적 '십자가, 고래, 그리고 대포[La
Croix, La Baleine et Le Canon, Ed. Cerf]
그럼 책에 대한 소개 좀 해 주신다면요.
-병인양요 관련인데,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조선에 간 이유는 4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표적은 조선이 아닌 중국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북경으로 향하고자 했던 프랑스인들의 다리 역할을 한거에요. 그 다음 책 제목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고래는 상하이 프랑스 공사가 조선 바다에 고래가 출몰하기에 잡으러 간다고 했어요. 세 번째 러시아의 남하 진출을 방해하기 위한 것으로, 당시 러시아와 프랑스는 대립 관계였어요. 네 번째는1860년대 중국에 있는 선교사들이, 정부에 의한 박해가 아닌 암암리에 살해되는 일들이 있었어요. 중국의 서양 선교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선에서 대포를 쏘며 프랑스의 힘을 보여주는 대포 정책을 편 것이에요.
그럼 11년전에 발간한 교수님 저서 안에 첫 만남이라고 할 수 있는 비금도에서의 나르발호 난파에 대한 이야기가 이미 있었던 거네요.
-네. 그런데 술병인 도자기는 그때 발견을 못했어요.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어요. 아주 우연히, 2015년에, 이번 행사가 있었던 세브르 국립 도자기 박물관에서 한국 관련 전시가 있었습니다. 그때 작은 병이 있길래 뭐지 하고 보니 몽티니 기증이라고 되어있길래 이거구나 싶었어요.
몽티니는 상하이 영사로 임명되고 나서 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고 싶어했어요. 그러다가 조선의 비금도에서 나르발호가 난파되고 29명의 프랑스 선원들이 있었는데, 9명은 작은 배를 타고 상하이로 갔어요. 몽티니 영사한테 도와달라고 한거죠. 몽티니가 바로 내가 가야겠다 하면서, 이번 기회에 조선 문호를 개방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죠. 가보니 마침 한성에서 프랑스 선원들을 돌려 보낼 배를 준비 중이라고 해서, 5월 2일에 조선 관료와 함께 술을 마신거죠.
어제 대사관 행사에 하신 연설은 어떤 내용이었어요?
-첫 잔은 한 잔만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과, 과연 1851년이 첫 만남이었을까? 첫 만남이라고 하지만 그 전에 또 다른 첫 만남이 있습니다. 그럼 첫 만남의 기준이 무엇인가? 예를 들면, 13-14세기에 프랑스에 들어온 조선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이것도 첫 만남인가? 18세기에 북경에서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의 사신들을 만났는데, 이것도 첫 만남일까? 하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1851년의 첫 만남은 뜻 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불의 첫 만남은 대체로 천주교 박해와 병인양요만 생각하는데, 1851년의 만남에는 포경업(고래잡이)이 있고요, 중요한 것은 몽티니 영사는 조선으로 간 첫 서양 외교관이었다는거에요. 조선이 쇄국정책을 펼칠 때라서 외국인이 조선에 들어가는건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표류민이 있다면 잘 대접해서 다시 잘 돌려보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통상하러 왔다고 하면 안 받아들여졌죠. 그때 외국인들이 와서 문호 개방하라고 하면, 조선은 우리는 청나라의 종속국이어서 못한다고 그랬데요. 그래서 영국이 북경에 조선 문호 개방시켜달라고 했더니만, 북경에서는 그걸 왜 우리가 하나, 조선은 독립국이니까 그들이 알아서 하는거라고 했다는거에요.
5월 2일 대사관 행사에서 연설 중인 피에르 엠마뉴엘 후 교수
흥미로운건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인들은 술을 잘 마신다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19세기에 이미 외국인들에게 소문이 퍼져나간거죠. 예를 들면 1816년 영국 해군장교가 통상 요구하러 조선에 갔는데 계속 거절당해서 술을 권해보니 조선인과 이야기가 되기 시작했다는거에요. 어쨌든 실패로 끝났지만요. 몽티니가 조선에 갔을 때는 조선인이 이미 술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영국 해군 장교의 기록으로 알고 있었을거에요. 그래서 그때 샴페인, 와인, 독주를 가지고 갔어요. 1886년 조선과 외교를 맺을 당시의 프랑스의 해무부의 문서를 보면 우리가 조선과 외교를 맺으면 어떤 무역을 할수 있을까에서 술이라고 되어 있었어요. 그것도 독주.
책을 한국어로 번역 출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10년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한국어로 번역하면 주병, 즉 도자기까지 넣어서 하면 되는데요. 한국 쪽에 출판사는 있는데, 아직 적당한 번역가를 못 찾았어요.
프랑스 사학과에 한국 역사 연구는 어떤지요 ?
-2000년도에 사학 석사를 했는데, 그때 프랑스 사학계에 아랍 역사는 있었는데 동양 사학(한국, 중국, 일본)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 파리 1대학과 4대학인 소르본 대학에 동아시아 사학과가 생겼어요. 파리 씨떼 대학에도 생겼어요.
세브르 국립 도자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당시 막걸리를 담았던 조선의 술병
어떻게 한국역사를 연구하게 되신거에요 ?
-고등학교때부터 역사에, 특히 동아시아에 관심이 있었어요. 중국학 대학을 갔어요. 부모님이 언어만 배우지 말고 다른 것도 함께 해봐라 하셔서, 역사를 하게 되었어요. 중국과 한국 역사를 함께 연구하고 있는데 참 재미있어요. 특히 전근대까지 중국 역사를 알면 한국 역사를 연구할 때 도움이 많이 돼요.
앞으로 한불 관련 더 귀한 자료를 찾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 계획하는게 있다면요 ?
-지금 조선 후기와 청나라 연구하고 있어요. 중국과 한국에서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연구가 박사 논문이었는데, 지금 책 출판 중이에요. 청나라에서 천주교 탄압 관련은 다음 주에 책이 나옵니다. 조선에서의 천주교 탄압 관련 책은 다음에 나올겁니다.
<파리광장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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