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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맘 지니의 단상> 진천동 양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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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동 양 여사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핑크색이랑 민트색이다. 내가 봐도 고운 그녀의 복숭아 빛 얼굴을 더 화사하게 해준다

양 여사는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때마다 가슴 속 어디선가 울컥하며 시 한편을 쏟아낼 것같은 감성을 가졌다

7월의 검푸른 산을 보고 "펼쳐진 양탄자같다" 라는 시적 표현에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그녀는 피부도 소화기관도 소녀같다

질이 좋지 않은 옷감을 걸치면 피부가 가렵고, PH 밸런스가 조금이라도 깨지는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난다

그녀는 유기농 신선도 테스터같다.

 

하지만 그녀의 생활은 그리 소녀같지 않았다. 그녀는 욕심 많고 정 많은 무남독녀였다. 시대의 아픔 탓이었을까, 그녀의 타고난 능력 탓이었을까? 무남독녀의 귀함보다는 책임감으로 뭉쳐진 그녀였다

워낙 똑똑했기에 힘들디 힘든 초등교사 시험에도 합격했고, 그녀의 마음 속에는 강인한 자존감이 끊어지지 않는 단단함으로 자리잡고 있었다매사를 본인의 결정대로 본인이 책임지고 갈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본인이 노력하면 다 되었고, 양 여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가 되어 버렸다.

가난했지만 성실한 어느 청년과 결혼도 했다. 그녀의 표현대로 라면 "숟가락 몽댕이" 하나없이 시작해서 열심히 일해 직원 100여명의 사업체도 만들어냈다. 무남독녀로 자란 외로운 환경이 싫어 자식도 4남매나 낳았다

그리고 일이든 사람이든,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무조건적 희생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힘들 때는 한 순간 화를 내는게 전부였다. 그리고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잠시 웃었다

무거운 현실 앞에서 늘 차가운 이성으로 스스로를 동여매고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워낙에 소녀 같은 그녀가 그 모든 걸 감당하기란 분명 힘들었기에, 늘 눈아래 그림자와 한번씩 힘 없는 

뒷 모습에서 그녀의 쓸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결코 그건 그녀가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힘든 현실이었다

하루가 힘겹기는 했지만 보람과 희망을 댓가로 성취형 양 여사는 잘 견뎌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리 똑똑한 양 여사도 뒤에서 불어오는 운명의 바람에는 넘어질 수 밖에 없었다

IMF라는 국가적 위기에 40년 동안 일구어 놓은 사업체를 정리해야하는 위기가 왔다

누군가 그녀를 이해한다는 건 위선 밖에 되지 못할만큼 그녀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정리 마저도 깔끔하게 해내고 작은 아파트에서 예전 같이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일상들에 만족하며 새로운 생활을 꾸려갔다

진천동 양 여사는 38년생 범띠 만 84세 나의 엄마다

한국전쟁, 보릿고개, 새마을 운동, 수출 100억불 달성의 힘겹고 배고픈 시대를 겪으시고, 

2000년 대의 편리한 기술과 정보가 조금은 불편해져 버리신 우리 엄마다

그리고 인생의 동업자이던 아버지 제사도 이제 두 해 지냈다

요즘 양 여사는 진천동 어느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신다

물론 둘째 언니가 옆 아파트에 살아 자주 그녀의 안부를 보살핀다

일주일에 한번 노래교실, 안마, 평생을 기대고 사신 종교생활을 하시며 취침 전 돋보기 독서도 거르지 않으신다

진천동 양 여사는 이제  작은 숲속 요정 같다

지금도 양여사는 여윳돈만 생기면 아끼시는데 여념이 없는 눈치기에 넌지시 물어본다.  

"이제 와서 어디 쓰실라꼬? " 새침한 그녀 눈빛이 조용히 대답을 대신 한다.  '

"느거한테 폐 안끼치게, 느거 안힘들게 조금이라도 남기고 가야지"  

나 또한 시린 눈빛으로만 답한다.  

"여태 그만큼 주셨음 됐지. 그 빚 나 어떻게 다 갚으라고이제 엄마 위해 다 쓰고 가시지" 


나이 탓일까? 세월 지난 여유 탓일까? 요즘 들어 점선면의 법칙보단 면선점의 본질적 촛점들을 돌아보면,  

그 자리엔 부모님의 애틋한 사랑이 늘 머물러 있다

진천동 양 여사의 복사꽃 같은 피부는 여전히 곱다

아마 소녀같은 그녀의 마음이 바래지 않아서인가 보다.


<땡큐 맘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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