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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연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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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13회에 걸쳐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를 연재합니다. 

게재를 허락해준 이재형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나즈비나스에서 오브락, 생첼리도브락을 거쳐 생콤돌트까지(32킬로, 2일 소요)


 ■ 오브락 자선 병원

 

 오브락 고원의 오아시스 오브락은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2 5000헥타르의 고원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현무암으로 덮여 있는 화강암질 기반이다. 이곳에는 경작지가 없다. 오직 풀과 바위만 끝없이 펼쳐지다가 구불거리는 계곡과 소나무 숲, 밤나무 숲, 이탄지만 이따금 나타날 뿐이다. 이곳에서는 용담과 콜키쿰이 자란다. 그리고 살을 에듯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 순례자의 뼛속까지 파고든다.

  이곳의 순례길은, 날 좋은 봄 가을철에는 목가적인 산책이 될 수도 있지만 겨울에는 끔찍한 시련으로 변할 수도 있다. 이 지역에는 추위와 눈, 폭풍우가 빈번하게 찾아온다. 몇몇 작은 마을과 양치는 목동의 땅딸막한 오두막집 몇 곳만이 이 사막처럼 황량하고 웅대한 풍경 속에 이따금 등장한다. 그리고 목동들은 이 오두막집에서 은자처럼 살며 치즈를 만든다. 이런 자연환경은 지금도 적대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니 혹독한 기후에 강도가 출몰하고 군대가 노략질을 일삼던 옛날에는 어떠했겠는가. 951년에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이 모셔져 있는 도시의 주교였던 고데스칼크가 처음 연 르퓌 순례길은 바로 이 오브락 고원을 지나간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순례자의 수가 매우 많았지만 안전은 보장되지 않았다.

 12세기에는 오브락 자선병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지역은 “공포와 깊은 적막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라고 묘사될 만큼 적대적이고 악명이 높았다. 중세에 이곳을 지나가던 순례자가 이 같은 위험을 직접 겪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아달라르로 플랑드르의 백작이었다. 그 역시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서쪽 끝을 향해 걸었다가 다시 돌아왔다. 오브락 고원을 지나갈 때는 강도들에게 공격받았고, 돌아올 때는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때 그는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몸을 피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병원과 수도원을 짓겠다고 맹세했다. 이렇게 지어진 수도원과 병원은 수도원 원장 휘하에서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규율에 따라 살아가는 동Dom(수도사)이라고 불리는 수도사들이 관리했다. 이 규율은 공동생활과 침묵, 순결, 복종을 요구했다. 이 수도사들은 또 일주일 중에 4, 5일은, 그리고 종교축제 때는 육식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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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오브락 자선병원 도므리(DÔmerie)는 교황의 직속 기관이었고, 수도사들은 자신들이 직접 동들을 임명할 수 있었다. 옷도 변변하게 못 입고 신발도 제대로 못 신었던 옛날의 산티아고 순례자들은 게다가 늑대들과 강도들의 위협에 맞서야만 했을 것이다. 오브락 자선병원은 순례자들과 여행객들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오브락 고원에는 일 년 내내 안개가 자주 끼어서 방향을 분간 못할 위험이 매우 컸고, 특히 겨울에는 눈보라 때문에 길을 찾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게다가 중세 초부터는 도둑 떼가 이 지역에 들끓는 바람에 순례자나 여행자는 만약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여러 명이 모여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수도사들은 순례자가 나타나면 맞아들여 우선 손을 씻으라며 물을 가져왔다. 그런 다음 두 발을 씻겨 주고 입고 있는 옷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이와 흙을 털어낸 다음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했다. 수도사들의 이 같은 행위는 유용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상징적이기도 했다. 즉 성서에 따르면 가난한 자를 맞아들이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순례자는 별도의 건물에서 보살피고 치료해주었다. 그들에게는 신경도 더 쓰고 더 많은 식사(알리고)와 푹신푹신한 침대를 제공해주고 머리맡에서 치료해주었다. 이들이 묵는 건물은 조명도 더 밝았다. 이들은 다 나을 때까지 얼마든지 오래 머물 수 있었으며, 동행이 있을 때는 이들이 다 나을 때까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만일 순례자가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망하면 수도사들이 나서서 묻어주었다. 성당 종탑에는 다섯 개의 종이 매달려 있었고, 그중 하나는 ‘마리아’ 또는 ‘길 잃은 자들의 종’ 이라고 불리면서 눈이 오거나 안개가 끼는 날에 길을 잃은 순례자들을 인도하기 위해 낮이고 밤이고 몇 시간 동안 울렸다고 전해진다. 이 종에는 이렇게 새겨져있다. “종이 신을 찬양하고 / 수사들을 위해 노래하고 / 악마들을 쫓아내고 / 길 잃은 자들을 데려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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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즈비나스에서 오브락까지는 9킬로미터. 해발 1300미터의 오브락 고원을 지나가는 이 길은 르퓌 순례길에서 가장 아름답다. 이 길은 4월 초에는 많은 눈이 내릴 가능성이 높으며, 5월에는 이름 모를 들꽃으로 덮여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이 길에 소를 방목한다. 순례자는 풀을 뜯고 있는 소들 사이를 지나가야만 할 수도 있다.

 

   영국인들의 탑’은 순례자들의 숙소다. 그러나 취사 시설은 없으므로 식사는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되는도므리 식당(Restaurant de la Dômerie)’에 가서 해야 한다. 오브락에는제르멘네(Chez Germaine)’라는 오래된 카페가 있다. 이 카페는 과일을 듬뿍듬뿍 올리는 파이로 유명하다. 나는 오브락에서 잠을 자든, 아니면 오브락을 그냥 지나치든 항상 이곳에 들러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파이 한 조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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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브락에서 생첼리도브락까지

 혹시 5월 중순 이후에 르퓌길을 걸을 계획이 있다면 반드시 오브락에서 매년 5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열리는 이동목축 축제(Fête de la Transhumance)를 구경하기 바란다. 순례자는 오브락 주변의 여러 마을에서 수백 마리나 되는 소들이 뿔을 강렬한 색깔의 알록달록한 화환으로 장식하고 사람들과 함께 걷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소들은 저지대에 있는 겨울 방목지를 떠나 해발 1300미터의 오브락고원에 있는 여름 방목지까지 가깝게는 15킬로미터, 멀게는 70킬로미터를 걷는다. 이 소들은 가을까지 이 여름 방목지에서 풀을 뜯게 될 것이다.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에 따르면완화된 노마디즘’의 한 형태인 이 이동목축은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에 시작되었고,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실천되고 있다. 20세기 들어 서서히 쇠퇴했던 이 이동목축은 최근 지속가능한 농업과 생물 다양성, 농촌 공간의 다목적 이용 등에 대한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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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브락에서 생첼리도브락과 생콤돌트를 거쳐 에스팔리옹으로 가지 않고 르카이롤에 있는 본발 수도원Abbaye de Bonneval에서 하루묵고 에스팔리옹으로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수도원에서는 현재 29세부터 98세에 이르는 수녀 30명이 생활하고 있다. 시토 수도회에 소속된 수녀들은 베네딕트 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기도와 일을 병행하는데, 본발 수도원의 수녀들은 1878년부터 초콜릿을 만들어 판매한다.

   오브락에서 생첼리도브락까지는 8킬로미터. 오브락에서 생첼리도브락을 거쳐 생콤돌트까지는 계속해서 내리막길이다. 생첼리도브락에서는 Gite d'etape SaintAndre(randogitestandre@free.fr)라는 숙소를 추천한다. 음식도 맛있고, 이 숙소에서 내려다보이는 전망도 아름답다

 

<, 사진 이재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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