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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연재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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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13회에 걸쳐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를 연재합니다. 

게재를 허락해준 이재형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 피자크에서 카오르까지(  피자크에서 카오르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카자르크와 리모뉴앙케르시를 거쳐 가는 방법으로 70~80킬로미터, 두 번째는 셀레 강을 따라가는 방법으로 80~90킬로미터 정도 되므로 이틀이나 사흘 걸린다)

 

 -코스  (Causse)라고 부르는 석회질 고원을 지나가는 첫 번째 길은 고인돌과 돌담, 연장을 보관하는 데 쓰이는카셀’이라는 이름의 둥근 돌집, 석회질을 좋아하는 마른 잔디, 석회질 자갈, 귀뚜라미와 독수리와 양, 양들에게 먹이기 위한 건초, 가시덤불, 잎이 솜털로 덮인 떡갈나무, 오리나무 등 건조하고 메마른 독특한 광물성 풍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 이 석회질 고원은 숲으로 덮여 있어서 걷기 편하지만, 1900년대에는 전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실제로 당시의 코스는 땅이 조금만 있어도 경작하거나 가축들이 풀을 뜯어먹게 하는 바람에 나무를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포도에 자생하는 진딧물인 필록셀라(Phylloxera)가 대부분의 농민들을 파산시켜 도시로 이주하게 만들자 자연이 다시 자신의 권리를 회복했다.

 지금 우리가 이 길을 걸으며 보는 참나무 숲은 이때 조림되었다. 이 석회질 고원에 다시 참나무 숲이 조성됨으로써 만족스러운 결과가 생겼다. 즉 로트 강 계곡을 유린하곤 했던 홍수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새로 심은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한1920년에 마지막으로 대홍수가 일어났다. 그 뒤로는 태풍이 불어 로트 강 계곡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리면 강이 넘치는 일이 있었지만, 범람은 국지적이고 대수롭지 않은 정도였다. 땅이 버려지고 나서 130년이 지난 지금 코스는 스펀지 역할을 해내면서 저장해 놓은 물을 조금씩 다시 되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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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는 또 하나는 피자크를 떠나 베두에르까지 갔다가 셀레 강으로 내려가 강을 따라 코른(Corn), 에스파냑(Espagnac), 마르시악쉬르셀레(Marcillac-sur-Célé), 솔리악(Saulliac), 카브르레(Cabrelets), 부지에스(Bouziès),생제리 (Saint-Géry), 아르캉발(Arcambal)을 지나 카오르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셀레 길’이라고 부른다. 셀레 강이 높고 가파른 절벽과 원시인이 그림을 그려 놓은 동굴, 아름다운 마을 사이를 구불구불 흘러가는 풍경은 원시적이면서 시적  詩的이다. 순례자는 시인 폴 발레리(Paul Valéry)가 영감을 얻으려고 찾아오곤 했던 베두에르, 수도원과 빨래터, 고성  古城의 잔해를 간직하고 있는 코른과 에스파냑, 집들이 절벽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솔리악, 폐허로 변한 로마네스크식 성당의 엄격미를 보여주는 마르시악쉬르셀레…… 그리고 카브르레의 페크메를르 동굴에서 들소와 말·소·매머드·손·반점·인물 등 구석기시대 벽화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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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르시 지방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료로 알려진 사프란이 재배된다. 《슬픔이여 안녕  Bonjour tristesse》이라는 작품으로 알려진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  (Francoise Sagan)의 고향이기도 한 카자르크에서는 매년 10월 셋째 주말에 카자르크 사프란 축제가 열려 사프란 재배지를 방문할 수 있다. 또 생시르크라포피에는사프란 박물관’이 있다. 사프란은 하나의 구근에서 두세 송이 꽃이 피어나는데, 꽃에 달린 2.5~3.2센티미터 길이의 붉은색 암술머리를 채취해 말려서 얻는다. 쓴맛에 건초 향이 나며 쇳내 같은 것이 느껴지기 때문에 향료나 염료, 의약품으로도 쓰이지만 대부분은 음식에 맛을 낼 때 쓰인다. 향도 향이지만 요리를 노란색과 오렌지색으로 착색할 수 있어서,  파에야나 부야베스, 리소토 요리에 쓰인다. 케르시 지방에서는 1년에 약 8킬로그램 정도의 사프란을 생산한다. 말린 사프란 1킬로그램을 얻기 위해서는 15만 송이의 꽃을 일일이 수확해야 하는 데다 꽃을 짧게 피우기 때문에 온 식구가 덤벼들어 1~2주 동안 밤낮으로 쉴 새 없이 일해야만 한다. 그러고 나면 30~35도의 온도에서 10~12시간을 말려야 한다. 이렇게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사프란은 1킬로그램에200만 원 정도 한다. 사프란은 몇 그램만 있으면 의학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고, 음식에는 암술머리 서너 개만 넣으면 충분하다. 사프란 1킬로그램에는 암술머리가 크기에 따라 15~40만 개 정도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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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이 되면 프랑스의 과일가게 진열대에는 본격적으로 무화과가 등장한다. 말하자면 9월은 무화과를 생으로 먹을 수 있는 달이다. 나는 매년 9월에 르퓌 길 순례를 떠날 때마다 길옆에 줄지어 서 있는(길이 지나가는 마을에서 순례자들을 위해 일부러 무화과 등 과실수를 심는다)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를 따 먹으며 허기를 채우곤 했다.

 기록에 따르면 무화과는 최소 1 1400년 전 지중해 연안에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하니,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과일이 아닐까 싶다. 무화과는 껍질이 매우 얇아서 굳이 벗길 필요 없이 그냥 통째로 씹어 먹으면 된다. 약간 물러진 바나나처럼 꿀을 넣고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도 맛있고, 염소젖 치즈와도 잘 어울린다. 여유가 된다면 푸아그라와 같이 먹어도 좋다. 말린 무화과는 고기 요리에 넣으면 감칠 맛이 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중세 시대에 무화과는 저주받은 과일이었다. 중세의 가톨릭은 어린아이와 여성을 종교를 통해 완전한 인간으로 교육해야 할 미완성의 존재로 간주했고, 무화과의 저 붉은색 단면은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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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라는 이름의 석회질 고원을 며칠 동안 걷다 보면 유난히 케르시 지방의 전통 가옥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19세기 말에 미국에서 건너와 로트 지방의 포도밭을 황폐케 한 벌레 덕분(?)이다. 필록셀라라는 진딧물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자 이 농촌 지역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고, 주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시로 이주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살던 수많은 농가가 주인 없이 버려졌다. 하지만 워낙 튼튼하게 지어진 덕분에 이 집들은 폐가가 되기는 했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70년 뒤, 이곳을 찾은 영국인들과 네덜란드인들, 독일인들이 이렇게 집이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사들여 원래 모습에 가깝게 복원한 것이다.

 이 지역에서 농업이 쇠퇴하고 주민들이 도시로 이주해야만 했던 이유가 또 하나 있다.  1차 세계대전이 그것이다. 르퓌에서 출발해 걷다 보면 거의 모든 마을에 위령비가 있는데, 거기 새겨진 이름이 꽤 많다. 프랑스의 시골은 이 국가적 자살행위에서 도시보다 더 큰 희생을 치렀다. 이 위령비에 이름이 새겨진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야 말로 프랑스의 미래였다. 하지만 그들은 한창 젊은 나이에 최전선에서 총알받이로 죽어갔다. 1918 11 11, 휴전협정이 맺어졌을 때 수백 만 명에 달하는 어머니와 아내, 약혼녀들이 홀로 남겨졌다. 이들은 자식을, 남편을, 약혼자를, 희망을 빼앗긴 것이다. 프랑스의 농촌은 쇠락하기 시작했다.


<글 사진 : 이재형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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