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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연재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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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13회에 걸쳐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를 연재합니다. 

게재를 허락해준 이재형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무아사크에서 오빌라르까지는 20.5킬로미터이다. 카날뒤미디 운하를 따라 걷는 구간이 대부분이어서 날씨만 좋다면 쾌적한 순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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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아사크를 떠난 순례자는 말로즈까지 10킬로미터를 계속 가론 강 측면 운하를 따라 걷는다. 가론 강 측면 운하란 툴루즈에서 보르도 근처의 카스테앙도로트까지 가론 강을 따라 건설된 길이 193킬로미터의 운하다. 이 운하는 툴루즈에서 세트까지 이어지는 길이 241킬로미터의 카날뒤미디 운하와 합쳐져(이 두 운하를 ‘두 바다의 운하’라고 부른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한다.

 그중에서도 카날뒤미디는 루이 14세 시대인 1667년에 시작하여 1681년에 끝낸 17세기 토목공사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이 거대한 운하를 설계하고 건설한 것은 왕의 징세 대리인이자 기업인이었던 피에르 폴 리케(Pierre-Paul Riquet)라는 인물이다.

   이 운하의 실현 가능성은 지중해 쪽과 대서양 쪽의 운하로 흘러 들어가도록 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리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예 근처에 위치한 영지와 영지 내를 흐르는 강에 대한 권리를 사들였다. 그리고 수리학을 공부하고 이 지식을 강과 도수운하에 적용해본 끝에 드디어 1660년에 해결책을 찾아냈다.

  즉 누아르 산괴山塊를 흐르는 물을 운하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해발 129미터의 노루즈 분수계로 끌어들인 다음 지중해와 대서양 쪽으로 흘려보낸다는 것이었다. 리케는 누아르 산괴와 소르강의 수로망을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기발한 관개 시스템을 상상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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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67 1, 공사가 시작되었다. 리케는 20~50세의 남녀 노동자를 고용한 뒤 이들이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일급이 아닌 월급을 지급하고 싼값으로 숙소도 제공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다. 그는 노동자들에게 평균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했을 뿐 아니라 전례가 없이 비 오는 날에는 공사를 중단시켰다. 일요일과 국경일에도 임금을 지급했으며, 아픈 사람에게는 병가도 주었다. 공사 구간은 여러 개로 나누어 하루에 최대 1 2000명까지 노동자를 투입하여 동시에 공사를 진행함으로써 작업을 합리화했다. 노동자들에게 작업 도구는 두 가지, 삽과 곡괭이였다. 파낸 흙을 남자들은 들것에, 여자들은 머리에 져 날랐다.

  이 운하 공사는 하마터면 중단될 뻔한 적이 있다. 베지에 서쪽에 앙세륀이라는 해발 60미터가량의 산이 있어서 터널을 파야 했는데, 확인해본 결과 단단한 토양 아래 매우 쉽게 부서지는 사암으로 이루어진 산이 숨어 있어서 터널을 파면 무너져버릴 위험이 매우 컸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콜베르수상은 공사를 즉시 중단시키고 전문가들을 파견하여 공사 재개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그러자 평소에 운하 건설계획에 반대했던 자들이 나서 리케를 중상모략하기 시작했다. 위기를 느낀 리케는 콜베르 수상 몰래 시험용 터널을 파기 시작해 8일 만에 완성한 다음 공사감독관에게 보여주면서 공사를 하게 해달라고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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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터널 공사는 시작되어 1680년 봄에 끝났고, 그로부터 몇 달 뒤에 리케는 세상을 떠났다. 카날뒤미디의 마지막 난공사였던 이 터널은 길이가 173미터, 폭이 6미터, 높이가 8.5미터다. 이 공사야말로 폴 리케의 집념과 결단력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터널의 이름도 ‘말파Malpas, 즉 ‘지나가기 힘든 통로’다. 준공식은 리케가 죽고 나서 7개월이 지난 1681 5 15일 툴루즈에서 본지 추기경이 탄 배가 맨 앞에서 가고 그 뒤를 10척의 배가 따르는 가운데 거행되었다.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카날뒤미디에는 63개의 수문과 126개의 다리, 55개의 수도교, 7개의 운하교가 있다. 리케는 베르사유궁 건설 다음으로 컸던 이 공사에 거의 전 재산을 쏟아 부었지만, 당시 프랑스가 전쟁을 하느라 국가 재정이 충분치 않아서 콜베르 수상이 공사 대금을 늦게 지급하는 바람에 큰 빚을 졌다. 그래서 그의 두 아들은 자기들이 받은 유산의 절반을 팔아야만 했다. 그러고 나서 1857년에 가론 강 측면운하가 완공되면서 선박은 멀리 이베리아 반도를 돌아가는 대신 곧장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갈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베지에 근처의 퐁세란 수문(Écluses de Fonseranes)은 한번 가볼만하다. 21.5미터의 고저차를 극복하기 위해 달걀 모양의 수문 여덟 개를 붙여 만든(총길이 312미터) 이 퐁세란 수문은 당시 프랑스 토목공학의 높은 수준을 잘 보여주는 걸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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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아사크 북쪽 지역은 프랑스에서 가장 넓은 자두 재배지다. 십자군들이 근동에서 들여오고 수도사들이 재배하기 시작한 자두나무는 이 지역의 약 1 3000헥타르에 이르는 땅에서 재배되어 매년 5만 톤 정도를 생산한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캘리포니아에 이어 두 번째로 자두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렇게 생산한 자두(Prune)는 말려서 말린 자두(Pruneau)를 만든다. 이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자두는 앙트라는 품종인데, 이것이 말린 자두를 만들기에 가장 적합해서다. 이 말린 자두는 크림이나 퓌레, , 주스, 시럽, 리큐어 술, 아르마냐크나 다른 도수 높은 술에 담가 과일주를 담그기도 하고 오리고기나 토끼고기, 돼지고기, 양고기에 곁들여 먹기도 한다. 또 속에 다진 야채나 고기를 넣어 먹기도 하고, 여러 가지 디저트의 기본 재료로 쓰기도 하니, 이처럼 쓰임새가 많은 과일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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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두 중에서도 특히 미라벨 자두와 렌클로드 자두를 좋아한다. 이 동그랗고 작은 자두, 특히 노란색을 띤 미라벨 자두는 프랑스의 로렌 지방에서 전 세계 생산량의 80퍼센트를 생산하기 때문에 프랑스가 아니면 먹어 보기 힘들다. 주로 8월 중순에서 9월 중순 사이에 출하되는데, 매우 달다. 초록색 자두는 렌클로드 자두다. 이 자두나무는 오토만 제국의 대사가 프랑스 왕인 프랑수아 1세에게 선물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프랑수아 1세의 왕비 이름이 클로드 드 프랑스(Claude de France) 이고, 선덕여왕(la bonne Reine)으로 알려진 이 왕비를 기리기 위해 렌클로드(Reine-Claude)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글 사진 : 이재형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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