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작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연재 (15)
작성자 정보
- 최고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1 추천
- 목록
본문
오르세 미술관 아홉번째
파리광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연재를 마치고,
이재형 작가의 파리 저서,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2022년 디이니셔티브 출판)를 연재합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15. 반 고흐(Van Gogh, 1853-1890), <아를에서 반 고흐가 살던 방(La Chambre de Van Gogh à Arles)>, 1889,
57.3 x 73.5cm, 5층, 35번 전시실.
이 작품은 흔히 <노란 방>이라는 제목으로 불린다. 반 고흐는 <노란 방>을 세 장 그렸다. 1888년 10월에 그린 첫 번째 작품은 지금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고, 1889년 9월에 그린 두 번째와 세 번째 작품은 각각 시카고 미술관과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은 크기가 똑같고,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 있는 세 번째 작품은 크기가 앞의 두 작품보다 작다.
반 고흐는 1888년 2월 20일, 눈 내리는 아를 기차역에 도착한다. 처음에는 기차역 근처에 있는 “노란 집”의 일부만 빌려 아틀리에로 썼던 그는 9월부터는 이 집에서 살기 시작한다. <노란 방>은 이 집에 있던 그의 방을 그린 것이다(이 집은 2차 대전 때 폭격을 당해 지금은 없다).
반 고흐는 폴 고갱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아를에 내려와 예술적 체험도 공유하고 함께 그림도 그리자고 설득했다. 결국 폴 고갱은 1888년 10월말에 아를로 내려왔다. 반 고흐는 고갱이 내려오기 전 그를 기다리며 같은 달 <노란 방>을 그렸다.
반 고흐 <노란 방>
그런데 처음에 그린 <노란 방>은 바로 옆을 흐르는 론 강에 큰 홍수가 나서 “노란 집”까지 물이 넘치면서 훼손되었다. 그러자 동생 테오가 이 그림을 복원하기 전에 복사본을 한 장 그려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반 고흐는 그 다음 해인 1898년에 두 번째 <노란 방>을 그렸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노란 방>의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벽에 걸린 그림이다. 두 번째 그림에는 반 고흐의 자화상(다갈색 머리로 이 인물이 고흐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과 한 여성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이 그림을 몹시 만족스러워하던 반 고흐는 네덜란드에 사는 여동생에게 선물하기 위해 크기가 작은 세 번째 <노란 방>을 그렸다.
방 안의 가구들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반 고흐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가구만 갖추고 살았다. 침대 하나, 의자 두 개, 세수를 하기 위한 대야와 물을 담는 단지, 벽에 걸려 있는 수건, 거울,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초상화 두 점, 풍경화 한 점, 데생 두 점)은 그가 그린 것이다. 이 방의 가장 주요한 오브제는 침대다. 이 침대는 단순하지만 견고해 보인다. 침대는 온기와 안락함, 안전을 상징한다. 의자와 베개, 그림 등 다른 가구들은 두 개씩 그려져 있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은 평화와 질서, 평정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침대 다리는 양각으로, 즉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려져 있고, 의자와 책상은 부감으로, 즉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려져 있다. 반 고흐는 이 작품을 같은 시점으로 그리지 않고 사물마다 다른 시점을 적용하였다. 즉 주관적으로 공간을 지각한 것이다.
반 고흐는 태양이 강렬하게 빛나는 남프랑스에 살게 되면서 노랑과 초록, 파랑 등 밝고 순수한 색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는 현대회화에서 색의 사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색을 상징적으로 사용했다. 즉 빨간색과 초록색은 인간의 열정을, 노란색은 사랑과 믿음, 희망, 생명을 상징한다. 푸른색은 평화로운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한편 짙은 푸른색은 무한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검정색은 그의 불안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상징주의적이며 표현주의적인 작품으로 간주되는 <노란 방>은 19세기의 인상주의와 20세기의 표현주의를 이어주는 고리라고 할 수 있다.
16. 반 고흐, <자화상(Portrait de l’artiste)>, 1889, 65 x 54.2cm , 5층, 35번 전시실.
렘브란트나 고야처럼 반 고흐도 자기 자신을 모델로 하여 10여년 동안 43점 이상의 자화상을 그렸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쓴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데, 나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해. 그런데 자기 자신을 그리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어려운 일이야.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실물 이상이지. 나는 그의 자화상을 보고 계시 받았어."
반 고흐 < 자화상>
반 고흐는 마치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듯 평생동안 많은 자화상을 그렸다. 그는 1889년 8월에서 9월 사이 생레미드프로방스에서 이 자화상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 그는 사진처럼 닮게 하려고 애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신 상태를 표현하려고 애썼다. 정신 상태를 표현하는 데 색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고 있었던 그는 차가운 색을 사용하여 격렬한 터치로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 모든 것은 반 고흐를 뒤흔들어 놓고 있던 정신적 동요와 강렬한 열정의 반영이다. 결코 찌푸리지 않은 것 같은 그의 눈은 광기로 이어지게 될 엄청난 내면의 힘을 보여주는 듯하다.
"나는 앞으로 백 년 뒤의 사람들에게 마치 환영(幻影)처럼 나타날 자화상을 그리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사진처럼 닮게 보이려고 자화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열정을 표현하려고 자화상을 그리는 것이다."(반 고흐)
<글 사진: 이재형 작가>
관련자료
-
다음
-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