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작가 <프로방스 여행> 연재(3) -반 고흐와 고갱이 그린 〈레잘리스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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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광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연재 이후,
<프로방스 여행-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연재합니다.
연재를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반 고흐와 고갱이 그린 〈레잘리스캉〉
1888년 10월 23일, 반 고흐는 파리에서 내려온 고갱과 함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아를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고흐가 귓불을 자르면서 파탄을 맞지만, 둘의 관계가 처음부터 나빴던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뜻이 잘 맞아 같이 그림을 그렸다.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 〈레잘리스캉〉이다.
아를의 라잘리스캉 공동묘지
반 고흐 <레잘리스캉>
레잘리스캉(Les Alyscamp)은 아를 변두리에 있는 공동묘지로, 로마 시대부터 존재했다. 이 묘지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이곳 출신으로 303년에 참수당한 쥬네스트 성인(Saint Genest) 덕분이다. 그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아를의 주교들처럼 이 묘지에 묻히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한때는 수천 개의 석관이 몇 열로 놓여 있었다고 전해진다.
고갱의 〈레잘리스캉〉은 오르세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이 작품에 석관은 등장하지 않는다. 후경에 반구형 탑과 로마네스크식 성당의 일부, 전경에 들판과 나무들, 수로가 그려져 있으며, 전통 복장을 입고 있는 두 여성과 한 남성이 수로를 따라 걷고 있다.
화면을 병치시키고 선영을 넣는 등 이 작품은 고갱이 주도한 종합주의 기법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는 세잔에게서 빌려온 이 같은 붓놀림으로 현실 세계를 모방하지 않고 모티프를 표현할 수 있었다. 매우 강렬한 색의 사용 역시 그가 풍경을 주관적이고 장식적으로 해석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갱 <레잘리스캉>
같은 해 반 고흐가 그린 〈레잘리스캉의 가로수길〉은 2015년 소더비즈 경매에서 한 아시아 수집가에게 약 716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더 악화되다가 결국 12월 23일, 격렬한 다툼 끝에 반 고흐는 자신의 왼쪽 귓불을 자른다. 그 다음 날, 그는 오텔디유 병원에서 자신을 치료해준 의사 레이의 초상화를 그린다.
1889년 2월 7일, 아를 사람들은 반 고흐가 공공질서를 해친다며 추방할 것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한다. 들롱 의사는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그가 환청과 환각에 시달린다는 진단서를 작성한다. 3월, 반 고흐는 〈귀에 붕대를 감은 남자〉를 그린다. 그는 오텔디유 병원에 강제수용되었다가 이 도시의 다른 동네에 있는 레이 의사의 아파트를 임대한다.
반 고흐가 남긴 자화상들
5월 8일, 반 고흐는 아를을 떠나 생레미드프로방스에 있는 생폴드모졸레 정신병원(Monastery St. Paul de Mausole)에 자진해서 입원하기로 한다.
매표소를 지나면 맨 먼저 반 고흐의 자화상 복제품(이 그림은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이 우리를 맞이한다. 그는 1886년에 생폴드모졸레 정신병원(Monastery St. Paul de Mausole)에 머무른 1889년 사이에 40여 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반 고흐 <자화상>
특히 생폴드모졸레 정신병원에 있는 동안 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자화상을 여러 점 그렸는데, 이 자화상도 그중 하나다. 자화상에는 왼쪽 옆얼굴만 보이는데, 이는 손상된 왼쪽 귀를 감추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 말고도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1887년 파리에서 그린 또 다른 자화상을 볼 수 있다. 오슬로 미술관에는 수십 년간 진위를 놓고 논란이 되었던 고흐의 우울한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 전시되어 있다.
<글 사진: 이재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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