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작가 <프로방스 여행> 연재(8) -마르세유(Marseille) : 이질적이면서 조화로운 문화가 공존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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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광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연재 이후,
<프로방스 여행-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연재합니다.
연재를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를에서 출발하여 원산지 등록 라벨(A.O.C.)을 획득한 건초를 생산하는 광활한 크로 대초원 지대를 지난 열차는 서서히 프랑스 제2의 도시이자 최대 항구인 마르세유(Marseille)로 진입한다.
노틀담 드 라 가르드 성당이 보이는 마르세유 항구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에 살던 포카이아 사람들이 건너와 건설한 마르세유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이민자들의 물결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 뒤로 이 도시는 율리우스 케사르에게 점령당하면서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연이어 서고트족과 동고트족의 손에 넘어가면서 그리스인과 아르메니아인, 이탈리아인, 코르시카인, 유대인, 스페인인,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 북아프리카인, 베트남인, 캄보디아인, 코모르인 등 전 세계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1822년 그리스인들은 터키인들의 학살을 피해 마르세유로 대거 밀려와 구두장이와 양복장이, 어부, 상인이 되었다. 19세기 말에는 본국에서 심각한 농업 위기를 겪은 엄청난 숫자의 이탈리아인이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이들은 부두와 담배 공장, 건설 현장에서 자신들을 ‘보보스’라고 부르며 못살게 구는 프랑스 사람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살아남았다.
마르세유 전경
1915년의 아르메니아 학살과 1922년의 터키 독립 전쟁 당시에는 수천 명의 아르메니아인과 그리스인들이 마르세유로 유입되기도 했다.
1925년부터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이탈리아인들이 다시 한번 이민의 물결을 이루었고, 얼마 안 있어서 프랑코 독재로부터 추방당한 스페인 공화주의자들이 이 도시에 자리 잡았다.
마르세유에는 이미 오래 전에 북아프리카 이민의 역사도 시작되었다. 특히, 20세기 초 북아프리카 사람들, 그중에서도 알제리인들이 대거 ‘수입’되어 도시 북부에 정착해 기름 공장과 설탕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는 마르세유 근교의 포스 제철소에서 일하게 될 알제리인들을 수천 명 불러들였다.
이 수많은 민족들은 갈등과 투쟁, 화해를 거치며 마르세유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프랑스의 그 어느 도시도, 그 기원이 너무나 다른 이들의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를 마르세유만큼 조화롭게 결합시킨 곳은 없다.
마르세유에서 가장 오래된 서민 동네, 르 파니에
나는 이런 마르세유를 좋아한다. 수 세기 전부터 인종 통합의 종교를 신봉하면서 함께 어울려 사는 이 도시가 좋다. 특히 르 파니에(le Panier)를 좋아한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동네’다. 이 동네에는 삶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이 존재한다. 옛 것과 새 것이,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큰 것과 작은 것이 공존한다.
마르세유 서민 동네, 르 파니에
한편에는 비에이으 샤리테(Vieille Charité)나 오텔디유(Hôtel Dieu), 메종 디아망테(Maison Diamantée) 같은 크고 화려한 건물이 있고, 다른 편에는 바다를 건너 마르세유에 온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고 소박한 집들이 있다. 한쪽에는 로마인들이 지은 고대 극장의 잔해와 13세기에 지어진 노트르담데아쿨 성당(Église Notre-Dame-des-Accoules)의 종탑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는 예술가들과 장인들이 그들의 작은 아틀리에에서 만들어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이 있다.
마리우스와 자네트처럼 어울려 사는 곳
나는 이 동네에 사는 마리우스와 자네트가 좋다. 이 동네가 배경인 게디귀앙 감독의 작품 〈마리우스와 자네트〉에 등장하는 자네트는 바른말 잘 하고 싹싹하고 마음 여린 40대 여성으로 슈퍼에서 계산원으로 일했으나 지배인과 싸우는 바람에 해고되어 실업자가 되었다. 그는 안뜰을 가운데 두고 여러 가족이 모여 사는 지중해의 전형적인 다가구 주택에서 피부 색깔이 다른 남매를 데리고 산다.
자네트는 문을 닫은 시멘트 공장에서 페인트 통을 훔치다가 경비원인 마리우스에게 들킨다. 마리우스는 자신을 파시스트로 취급하는 자네트에게 총을 겨눈다. 그러나 그는 자네트의 집으로 찾아와 페인트 통을 돌려주고 집에 칠도 해준다. 그리고 아이들과 이웃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축하해 주는 가운데 두 사람은 사랑을 꽃피운다.
그러나 이들의 결합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사회적 상황으로부터 기인하는 어려움뿐만 아니라 삶으로부터 입은 상처가 그들을 가로막는다.
그러자 ‘한 지붕 세 가족’이 나선다. 말솜씨 좋은 전직 초등학교 선생님 쥐스탱, 젊었을 때 독일 강제수용소에 끌려갔었던 골수 공산주의 투사 카롤린, 항상 활기찬 모니크와 그녀의 비실비실한 남편 데데가 이들을 격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게 다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일 때 마리우스가 더 이상 자네트를 찾아오지 않고 시멘트 공장에 틀어박혀 버린다.
그 때문에 자네트가 활기를 잃자 쥐스탱과 데데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마리우스를 찾아간다. 잔뜩 술에 취해 술집에서 난투극을 벌인 끝에 마리우스는 사고로 인해 아내와 아이들을 잃었으며 다시 가정을 이루기가 두렵다고 고백한다. 쥐스탱과 데데는 잠든 마리우스를 한밤중에 자네트에게로 데려가 다시는 종적을 감추지 못하도록 침대에 꽁꽁 묶어놓는다.
마당을 둘러싸고 모여 사는 등장인물들은 마치 일상사를 언급하듯 교조주의와 극우파 르펜, 실업과 신자유주의를 이야기하며 정치와 종교가 점차 관용이라는 미덕을 잃어가는 현실을 걱정한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장황한 이론으로 그런 문제들을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이들은 아이올리 소스를 만드는 방법에서도 현실의 법칙을 발견한다.
“마늘은 아직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식물이야.”
또, 이들은 단 한 문장으로 사회 문제를 요약해 버린다.
“세잔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풍경과 동네를 그렸지요. 하지만 그의 그림들은 부자들의 집에 걸려 있는 걸요.”
그리고 이들은 극우 정당인 인민전선에 투표한 데데에게 욕설을 퍼붓고 핏대를 올리며 비난하지 않는다. 그냥 그가 잘못 생각한 것이라고 가르쳐 줄 뿐이다.
이 노동자의 소우주는 현대판 모권사회다. 여기서 여성들은 강하다. 마르세유의 강렬한 태양 아래서 그들은 수다쟁이가 되어 토론을 이끌어 간다. 말도 많고, 목소리도 크다. 그들은 반항하고, 때로는 사랑한다.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그곳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놀고, 꿈꾸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피부색이 다른 남성과 여성, 아이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방식은 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공동체가 붕괴되어 가는 이 시대에 과연 어떻게 함께, 그리고 몸을 부딪쳐가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제시해 준다. (계속 이어집니다)
<글 사진: 이재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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