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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작가 <프로방스 여행> 연재(6) -카마르그 쌀이 유명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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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광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연재 이후, 

<프로방스 여행-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연재합니다.

연재를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로방스에서 살기 시작한 1996 9월 중순, 아를에서 출발하여 동쪽의 ‘집시 마을’ 생트마리드라메르로 가기 위해 국도를 달렸다. 그런데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황금물결이 길 양쪽에서 출렁이는 것이었다. 논에서 벼가 가을 햇볕을 쬐며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나는 놀랐다. 아니, 프랑스에서도 벼를 재배하는 거야? 목적지에 도착해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방금 지나온 카마르그 지역에서만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쌀을 재배한다고 한다. 기후가 온난하고, 주변에 론강과 가르강이 흐르고 있어서 안정적으로 물 관리를 할 수 있으며, 지형이 평평해서 벼를 재배하기에 최적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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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르그 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프랑스 정부는 1940년 초 식민지였던 베트남에서 2만 명의 노동자를 강제로 동원하여 프랑스의 무기 공장에서 일하게 했다. 전쟁으로 인해 식량부족이 우려되자 1941년 프랑스 정부는 이들 중 5백 명을 카마르그로 보내 다시 쌀농사를 짓게 했다. 이들의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해서 임금이 이탈리아나 스페인 출신 농업 노동자가 받는 임금의 절반에 불과했으며 수용소나 다름없는 임시 숙소에 갇혀 살았다. 카마르그의 논은 오랫동안 경작되지 않고 버려져 있었지만, 이들은 고국에서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노하우를 이용하여 1942 10, 250ha의 논에서 250t의 쌀을 수확, 성공을 거두었다. 그다음 해에는 500t, 1946년에는 1,000ha의 논에서 1,900t의 쌀을 수확하여 그들은 카마르그가 프랑스의 유일한 쌀 산지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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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르그 논


베트남 사람들이 8,000km나 떨어진 이국땅에 끌려와 고난 속에서 땀과 눈물로 일구어낸 이 카마르그평야를 보고 있으니 어렸을 때 부모님이 힘들게 쌀농사를 지으시던 호남평야가 오버랩되었다. 조정래가 쓴 대하소설 《아리랑》의 배경이 된 그 평야에서도 일제강점기에 생산된 쌀이 식민자에 의해 수탈되었다. 강자가 약자의 것을 빼앗는 것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역사의 법칙인가.


□ 집시들의 고향 생트마리드라메르

엑상프로방스 교구의 성무일과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많은 제자들이 팔레스타인에서 박해당하고 우리 지역으로 와서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였다.

마리 자코베와 마리 살로메는 마리 마들렌, 라자르, 막시민 등 많은 사람들과 함께 체포되어 돛도 없고 노도 없는 배에 강제로 태워졌다. 그러나 성령이 이들을 프로방스의 바닷가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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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라" 입상

제자들은 먼 곳으로 복음을 전하러 떠났지만, 제자들의 어머니였던 마리 자코베와 마리 살로메는 나이가 많았으므로 배가 닿은 바닷가에 머무르게 되었고, 이 바닷가 마을은 생트마리드라메르(Saintes-Maries-de-la-Mer), 즉 ‘바다의 성녀들’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두 성녀는 이 지역 사람들과 이 지역

을 점령하고 있던 로마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다.

카마르그의 남서쪽 끝자락, 지중해 변에 자리 잡은 생트마리드라메르 성당(Église de Notre-Dame-de-la-Mer des Saintes-Maries-de-la-Mer)의 지하 예배당에는 이 두 성녀의 입상이 모셔져 있고, 그 옆에 얼굴이 새까만 여성의 입상이 있다. 이 여성은 집시들의 수호 성녀인 ‘검은 사라’로, 마리 자코베와 마리 살로메의 하녀였다. 사라 성녀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옷을 입고 보석으로 장식된 모습으로 서 있다. 가운데 제단에는 그의 유해가 묻혀 있으며, 벽에는 집시들이 들고 가는 예배 행렬의 십자가가 기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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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마리드라메르의 순례 행사

매년 5월이 되면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집시들이 이 작은 마을을 찾는다. 그리고 5 24일과 25일에 이 마을에서 열리는 순례 행사에 수많은 집시들이 불 켜진 초를 들고 이 지하 예배당으로 몰려든다. 그들은 사라 성녀의 유해와 입상을 끄집어내서 바다까지 모시고 간 다음 바닷물에 담근다. 이것은 마리 지코베와 마리 살로메 성녀를 기다리고 맞이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글 사진: 이재형 작가>


1, 이재형 작가와 함께 하는 4월 "파리구석구석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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