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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파리광장 답사기- 콩트르스꺄르프 광장 Place de la Contrescarp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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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르스꺄르프 광장                                                                                    이미지  출처: 구글


라틴구역이라 불리는 파리 5구역에는 아주 조그만 광장이 숨어 있다. 이름하여 콩트르스꺄르프 광장(Place de la Contrescarpe). 날이 좋은 날에는 멋진 악사들의 연주를 들으며 샌드위치를 먹을 수도 있고, 새로운 인연의 시작을 알리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주변에 소르본 대학, 앙리 캬트르 고교(Lycée Henri IV) 등의 학교 학생들이 학식(Cantine)이 지겨운 날 찾는 귀여운 광장이기도 하다. 나는 아롱다롱한 나의 20대 청년 시절의 한 부분을 이 광장에 위치한 좁은 다락방(하녀가 사용하던 방)에서 보냈다. 광장은 여러 방향으로 길이 나 있으므로 콩트르스꺄르프 광장에 도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지하철 10호선 꺄르디날 르무안느(Cardinal Lemoine) 역에서 밖으로 나오면 빵집 하나가 보인다. 케익과 디저트는 구경만 하고 바게트 반조각을 사서 나의 다락방이 있는 콩트르스꺄르프 광장으로 향한다. 빵집 옆에는 빨간색 출입문의 소방서가 있고, 소방서를 지나쳐 걷게 되는 이 길의 이름은 꺄르디날 르무안느다. 이 거리의 71번지를 지날 때 슬쩍 보이는 어마무시하게 부담되는 내용의 작은 푯말에 눈길이 간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 20세기를 대표하는 문학작품 《율리시즈》(Ulysses)를 완성한 장소… »

 

크아 ! 제임스 조이스라 하면 의식의 흐름과 관련된 문학작품이라는 정도로 해두고나는 빨리 나의 생각의 흐름을 멈추고 음, 흐흠, 숨을 고른 후 계속 길을 간다. 걷다 보면 어느 새 74번지에 도달한다. 이곳을 지날 때 나는 가난하지만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한 행복한 22세의 미국 남자와 인사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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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도착하기 어네스트 헤밍웨이                                     

이미지 출처 : 브리타니카  

 

: 안녕 ! 어네스트(Ernest) ! 하이 ! 좋아 ! 좋아 ?

아이근데 나는 제임스에게는 정이 안가

 

어네스트: 그뢔 ? 아무튼 그는 이미 완전 떠 가지고 설라무네, 게다가 스폰서가 있어서 방 임대료도 안 낸다는데, 다음 주에 나에게 밥도 사주고 술도 사달라고 해 보려고.

 

: 어떻게, 너는 밥은 먹고 다니냐 ?

 

어네스트: 너의 처지와 비슷할 걸 ? 아침에 바게트 빵을 샀어. 품에 안고 다니다가

너무 배고파서 위산이 나오면 조금씩 먹어. 네가 알다시피 나는 커피 한 잔 시키고

그 카페에서 하루 종일 글을 쓰니까.  ! 근데 오늘 센 강 쪽으로 내려갔더니 대박 !

포도주를 도매가로 엄청 싸게 파는 거 있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배고픔을 참고

저녁 때 포도주로 하루의 고단함을 마감하려고, 아니, 파리에 사는 기쁨을 향유하고 있어 ! 근데 넌 ? 바캉스 안가 ?

   

: 못 가내 고향은 지구 반대편이고, 나도 너처럼 돈이 없어.

근데 내가 사는 다락방이 여름에는 너무 더워.

 

어네스트: 그래 ? 군대 가서 만기 제대한 예비역이라 더니 엄살은

나도 제대하고 나서 파리에 도착했거든. 너도 글을 쓰지 ?

 

 : 글을 쓰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야.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드라마를 쓰는 법. 그런데 소르본에서 배우는 문학, 언어학, 중세 프랑스어, 라틴어 등 소위 필수 과목들이란 것이 내 미래에, 아니 내가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어. 사실 난 극작법을 배우려는 건데다행히 다음 학기에 극작법 중 « 이국적  드라마(théâtre exotique) » 라는 수업이 있어.

 

어네스트는 미국에서 온 작가 지망생으로, 후일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란 이름으로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는 파리 도착 전 19세 때 이탈리아군 야전병원에 의용군으로 참가했었다. 이 시절의 경험은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1929)의 기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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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파리 생활 회고록 « A Moveable Feast » 표지.

이미지 출처: OverDrive 


그는 22 때에 이곳 74번지에 머물렀는데 비록 수돗물조차 나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가 회고록 « A Moveable Feast »에는 파리에서 보낸 시간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적혀 있다. 책은 한국에서 《움직이는 축제》, 《움직이는 향연》 또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굶는 날이 많아도 사람들에게 방금 배불리 먹었다고 맑게 웃으며 거짓말하던 어네스트는 이후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를 세상에 발표한다. 그의 아파트를 지나면 바로 콩트르스꺄르프 광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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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일  파리 8대학 연극영화  박사, 파리 10대학 비교문학 연구자,  무성영화 변사. 저서로는 «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Ocrée Editions, 2021) », 

«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Ocrée Editions, 2023) »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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