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성, 펠리코의 용기 - 마장(Mazan) 성폭행 재판, 새로운 여성주의 아이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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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 의해 10년 동안 약물 중독된 상태서 남성들에게 성폭행
피해자 지젤 펠리코(Gisèle Pelicot), 공개 재판 요청
파리 인근 장티(Gentilly)에 그려진 지젤 펠리코 그래피티
"Pour que la honte change de camp(수치심은 가해자에게로 옮겨가야 한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그의 얼굴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짧은 갈색 머리와 선글라스를 쓴 지젤 펠리코(Gisèle Pelicot, 72세)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이 "P."라는 이니셜로만 불렸다. 하지만, 지난 9월 2일 월요일(현지시각) 보클뢰즈(Vaucluse)지방 아비뇽(Avignon)에서 열린 마장(Mazan) 성폭행 재판이 시작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의 남편과 50명의 공동 피고인들은 그가 지난 10년 동안 약에 취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섰다.
지난 2020년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이 ‘아내’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익명성’의 그늘 속에 머물러 있었다. 미디어의 주목을 이끌어 낸 것은 그의 딸 카롤린느 다리앙(Caroline Darian)이다. 그는 약물에 의한 성적 지배 현상에 대한 책을 쓰고 인터뷰를 통해 이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50년간 함께 한 남편이 10년간 총 92건의 성폭행 직접 주도
‘마장 성폭행’ 이라는 이름의 재판이 알려지면서 프랑스가 충격에 휩싸였다. 무려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아내에게 강력한 진정제를 먹인 뒤 수십 명의 생면부지 남성들을 모집해 아내를 성폭행하게 한, 이 경악스러운 일을 벌인 남성에게 프랑스 국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시선이 집중됐다.
지난 9월 3일(현지시간)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2020년 9월 지젤 펠리코의 전 남편인 도미니크 펠리코(Dominique Pelicot, 71세)가 현지의 한 쇼핑센터에서 여성 3명의 치마 아래를 몰래 촬영하다 적발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당시 ‘이 남편’은 ‘몰카’ 촬영을 하다 경비원에게 적발돼 경찰이 넘겨졌고,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몰카 보다 더 충격적인 범행의 증거들을 발견했다. 경찰은 그의 컴퓨터에서 의식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 아내 지젤 펠리코(72)가 등장한 사진과 영상 수백 건을 발견했다. 이후 조사가 진행됐고, 남편은 아내에게 강력한 신경안정제를 투여했다고 시인했다. 아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 남편은 인터넷 채팅 등으로 모집한 익명의 남성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아내를 성폭행하도록 했다.
경찰 조사 결과, 남편이 주도한 성폭행은 총 92건으로, 무려 72명의 남성이 해당 범죄에 가담해 최소 92건의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26세~74세의 각계각층의 사람들로 소방관, 언론인, 배달원, 교도관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일부 남성은 최고 6차례나 범행에 가담했다. 이 중 51명은 신원이 확인돼 남편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다.
지젤 펠리코, 공개 재판 요청- « 수치스러움은 피고인들의 몫 »
지난 4일(현지시각) 일간지 르피가로 등에 따르면, 지젤 펠리코 측은 지난 2일 아비뇽 법원에서 열린 피고인들에 대한 첫 심리에서 공개 재판을 열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또, 일반적으로 프랑스 언론은 성범죄 희생자의 이름은 절대 공개하지 않는 보도원칙이 있지만, 지젤은 언론에 (이혼 전) 이름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사건 이후 남편이자 가해자인 도미니크와 이혼한 뒤 남편의 성을 버리고 개명했다. 재판이 시작된 바로 그날 이혼이 공식화되었다.
물론, 검찰은 "이번 사건이 대중의 구경거리가 될 수 있다. 사안의 민감성 등을 고려했을 때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들 역시 "의뢰인의 사생활과 존엄성 보호를 위해 비공개 재판으로 해야 한다"고 검찰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피해자의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고 법정에 선 이들이 자신들의 존엄성을 운운하는 것에 지젤은 "참을 수 없다"고 거세게 항의했다. 지젤 측 변호인은 "내 의뢰인은 재판이 공개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가 겪은 일의 실체가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길 원한다
재판이 비공개로 진행된다면 그는 자신을 성폭행한 50여명의 남성과 오롯이 법정에 남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인 역시 "지젤은 가능한 한 이 일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한다. 그는 수많은 범죄 피해자에게 "우리가 정면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 주길 원한다"며 "공개 재판은 그가 보내는 메시지인 셈이다. 부끄러움은 피해자가 아닌 피고인들의 몫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비뇽 법원에 출석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상세하게 밝힌 지젤은 한편, "이 법정에 들어온 이후로, 나는 모욕을 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내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말을 듣고, 내가 그렇게 취해 있어서 (남편) 펠리코의 공범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라고 말하며, 자신에 대한 공모 의혹을 제기하는 시각을 강하게 비난했다. 또, 재판 중 제기된 몇 가지 질문, 특히 오래된 성차별적 편견을 다시 꺼내어 그를 비난하는 듯한 내용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성폭행 피해자들이 왜 고소하지 않는지 이해한다! 우리는 정말로 피해자를 굴욕 당하게 만드는 과정을 겪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때문에 그는 이 재판이 공개적으로 진행되기를 원했으며, "나는 이런 일을 겪는 모든 여성들을 위해 이렇게 하고 있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에 재판장은 지젤과 변호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사건을 공개 재판으로 진행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젤은 휴정 시간에도 일반인이 출입하는 정문으로 드나들며 피해자를 위해 마련된 별도의 출입문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는 변호사에게 "사람들이 내가 숨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젤 펠리코는 폐쇄적인 환경을 거부하며, 자신이 당한 성폭행을 숨기지 않으려 했다. 그의 이름은 엘 파이스, 뉴욕 타임스, 가디언, 코리에레 델라 세라, 인도의 힌두스탄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지면 등 세계 여러 신문에 실렸다. 그는 익명 처리나 많은 매체들이 처음 사용했던 "지젤 P."라는 이니셜조차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판이 시작된 이후, 지젤 펠리코의 이름과 얼굴은 세계적으로 새로운 페미니스트의 상징, 아이콘이 되었다. 그의 투쟁은 프랑스 전역에서 집회를 촉발시키고 있으며, 심지어 쟝티(Gentilly)에서는 그를 기리는 벽화까지 등장했다.
이 사건은 거의 인정받지 못하는 «모든 부부간 성폭행»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거울
해당 사건이 발생한 프랑스 남동부 마장의 루이 보네(Louis Bonnet) 시장은 지난 10일(현지시각)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연루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또 피해자가 죽었다면 상황이 더 나쁠 수도 있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서, "(피해자의) 가족은 힘들겠지만 삶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어쨌든 아무도 죽지 않았으니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인터뷰 후 시장은 여론의 격렬한 비판을 받으며, 시장직 사퇴의 요구로까지 이어졌다. 비난이 갈수록 거세지자 지난 19일(현지시각), 시장은 성명을 내고 피해자와 가족에게 사과했다.
마장 재판은 피고인의 수로 그 사건의 특성이 두드러지지만, 이제는 이 사건을 ‘특별한’ 사건이라거나 ‘비정상적인’ 범죄 뉴스로 규정하는 것을 멈출 때이다. 이 사건은 잘 다뤄지지 않고, 거의 인정받지 못하는 범죄인 «모든 부부간 성폭행»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파리광장/ 현 경(HK) dongsimj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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