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칼럼 분류

이재형 작가 <프로방스 여행> 연재(36) -고딕 양식의 정수, 아비뇽 교황청

작성자 정보

  • 최고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파리광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연재 이후, 

<프로방스 여행-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연재합니다.

연재를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번 여행의 종착지이며 파리에서 남쪽으로 600km 떨어져 있는 아비뇽(Avignon)에 도착했다. 교통의 요지였던 이 도시는 14세기에 교황청이 자리 잡으면서(흔히 ‘아비뇽 유수’라고 부른다) 모습이 확 달라졌다.

교황청은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비뇽은 세계 최대의 연극제가 열리는 연극의 도시이기도 하다.
매년 7월이 되면 아비뇽은 거대한 연극 무대로 바뀌어, 3주 동안 도시 곳곳에서 연극이 공연된다.

아비뇽 연극제 ‘인 아비뇽(Inn Avignon)’은 2023년에 77회를 맞으며, 거의 같은 시기에 열리는 비공식 연극제 ‘오프 아비뇽(Off Avignon)’ 은 57회째다.

036a3d1a38b0fae28e85d8c8fb920014_1731970190_0819.jpg
아비뇽 교황청

교황청(Palais des papes d’Avignon)이 아비뇽에 들어서게 된 것은 원래 교황청이 있던 로마에서 교황파와 반교황파가 편을 갈라 싸우는 바람에 사회적 상황이 극도로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로마 교황을 견제하여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프랑스인 클레멘스 5세를 교황으로 임명하고 1309년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기게 했다.

그 뒤로 1377년까지 모두 7명의 교황이 여기서 살았고, 1378년부터 1403년까지는 각각 로마와 아비뇽에서 교황이 선출되었다. 건축가들은 론
강이 훤히 내려다보일 정도로 높이 튀어나와 있는 아비뇽 북서쪽의 바위산에 교황청과 교회를 지었다. 한편으로는 침수를 방지할 수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론강이나 도시에서 보면 높은 곳에 있어서 웅장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교황청은 2명의 교황에 의해 건축되었다. 북쪽의 옛 건물은 1334년에서 1342년 사이에 베네딕토 12세 교황 시기에 건축되었고, 남쪽의 새 건물은 1342년에서 1352년 사이에 클레멘스 6세 교황 시기에 건축되었다. 구조상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어둡고 복잡한 통로가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 고딕 양식의 교황청은 5km에 달하는 외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거대한 성을 연상시키는 교황청의 문은 의외로 작은데 아마 안전 때문에 이처럼 만들었을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넓은 마당이 나타난다. 마당에 나무 한 그루 없고 사면 이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꼭 교도소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마당을 지나면 추기경들이 모였던 추기경 회의실(Consstoire)로 들어가게 된다. 이 방은 각국 왕과 대사, 교황 특사를 접견하고 시성(諡聖)을 선포하는 등 교황청이 벌이는 외교 활동의 중심지였다.

교황은 추기경들에게 둘러싸인 채 연단에 앉아 있었고, 참석자들은 벽을 따라 설치된 돌의자에 자리 잡았다. 이 방의 서쪽 내벽에는 시몬 마르티니가 1340년경 노트르담데돔 교회의 현관을 장식했었던 벽화와 스케치가 붙어 있다.

그랑 티넬
추기경 회의실 2층에 있는 그랑 티넬(Grand Tinel)은 48m x 10.25m의 넓이에 천장이 매우 높아서 강당이나 체육관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방은 식당이나 연회장, 교황을 선출하는 장소로 쓰였다. 14세기에는 이 방의 벽 아랫부분이 별들을 수놓은 푸른 천으로 덮여 있었다. 연회가 열리면 교황은 여러 가지 색깔의 벽걸이 천으로 장식된 닫집을 씌운 고딕식 의자에 앉았고, 손님들은 벽을 따라 길게 놓인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교황의 식탁에는 값비싼 식기들이 놓여 있었고, 헤드 웨이터는 음식이 나올 때마다 프로바라는 도구로 음식에 독이 있는지를 검사했다.

이 방은 1413년 불이 나서 완전히 타버리는 바람에 ‘불탄 방’이라고 불리다가 1414 년에서 1419년 사이에 지붕과 테라스가 보수되었다. 그랑 티넬 안에는 예배당이 있다. ‘작은 예배당’이라는 뜻의 카펠라 파르바라고 불렸던 이곳에서는 교황과 소수의 인원이 일요일과 축제일에 미사를 올렸다.

마테오 지오반네티는 클레멘스 6세 교황의 요청으로 1344년에서 1345년까지 이 예배당을 프랑스 리무쟁 지방의 사도인 마르시알 성인의 일생을 그린 벽화로 장식했다. 이 벽화들은 원근법을 능숙하게 적용했고, 옷과 벽지, 타일, 융단 등 세부를 세련되게 표현했으며, 얼굴은 직접 보고 그린 것 처럼 생생하다. 캡션이 붙어 있으며 알파벳 순으로 정렬된 장면들은 천장에서 아래쪽을 향해 나선형으로 읽힌다. 한 벽화에는 베드로 성인이 마르시알 성인에게 지팡이를 건네주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아비뇽 교황권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클레멘스 6세 교황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036a3d1a38b0fae28e85d8c8fb920014_1731970236_8791.jpg
그랑 티넬

그랑 티넬 옆에 붙어 있는 귀빈실(Chambre de Parement)은 교황의 대기실 과 알현실, 비밀 추기경 회의의 모임 장소로 사용되었다.
콘클라베실(Salle du Conclave)은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회의를 하던 방이다. 회의가 열리지 않을 때는 장 르 봉 프랑스 왕과 카를로스 황제, 아라 곤왕, 오를레앙 공작 등 지체 높은 사람들이 머물던 숙소로 쓰였다.

콘클라베(Conclave)란 무엇일까? 1274년에 리옹에서 열린 종교회의는 교황이 선출되는 동안 추기경들은 반드시 감금되어야 한다고 정했다. 이 규정이 ‘자물쇠로 잠그다’라는 뜻의 라틴어 쿰 클라베에서 파생된 단어 콘클라베의 기원이다.

교황청에 감금되기 전에 추기경들은 교황이 선출되는 동안 사망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자신의 재산 목록과 유언장을 작성한다. 20명에서 30명에 이르는 추기경들은 각각 성직자와 하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2백여 명의 사람들은 교 황청에서 콘클라베실과 귀빈실, 그랑 티넬에 머물렀다.
베네딕토 12세 교황이 죽고 나자 아치 모양의 사잇문을 2개 뚫어서 이 3개의 방을 하나의 방으로 만들었다. 그런 다음 이 방의 문과 창에 벽을 쌓아 막고 추기경들을 계속 감시했는데, 이들이 외부로부터 압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출구는 음식물을 들여갈 수 있는 작은 구멍뿐이었다. 교황이 선출되면 이 3개의 방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재형 작가>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