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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엡도 테러와 1월 11일의 대국민 행진에 대해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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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안티샤를리, 그리고 샤를리 자체가 없는 부재 상태의 프랑스가 있다.
지난 1월(2015년) 샤를리 엡도 테러와 유대인 식품점 인질극이 일어난뒤 4개월동안 많은 저서들이, 테러 이후 대국민 행진인 1월 11일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최근 엠마뉴엘 토드Emmanuel Todd의 <샤를리는 누구인가 ? Qui est Charlie ?>라는 에세이로 인해 다시 1월 11일의 행사에 대해 새로운 분석이 나오면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테러를 규탄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1월 11일의 대규모 행진에 대해, 엠마뉴엘 토드는 무의식적으로 이슬람혐오가 있는 나라에서 과연 ‘’샤를리는 누구인가 ? 종교적인 위기의 사회학’’이라는 책을 통해 다루었고, 세르지 페데르뷔쉬Serge Federbusch는 그의 저서에서 ‘’공권력에 의해 조장된 프랑스’’라고 했으며, 철학자인 레지 드브레이는Régis Debray는 ‘’민주적인 매카시즘(1950년대에 미국을 휩쓴 극단적인 반공운동)’’이라고 했다. 이외에도 여러 해석들이 있다. 표현의 자유, 정교분리원칙과 평등이라는 기치하에 프랑스는 두개로 갈라진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아메드 부바케르Ahmed Boubaker는 샤를리 엡도 테러는 이미 존재했던 프랑스의 골절이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1월 11일의 행진은 연합의 느낌은 없었지만 평화적이었고, 더불어 살아가기의 기운이 있었다고 한다. 그날 모든 프랑스인들이 행진에 참여한것은 아니지만 부정적인 분위기는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사회학자는 정부의 태도에 놀랐다고 한다. 국민들에게 시위, 즉 행진하기를 호소했다는것이다. 어떤 이들은 시위하라고 강요받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무슨 만장 일치된 동의안 같았다고 한다.
그런데 4개월이 지난뒤 그런 샤를리의 정신은 무엇을 남겼냐는것이다.
주된 실수는 정치인들은 1월 11일의 정신을 영속시키지 못했고, 부정적인 질문에만 전념했다. 이를테면 샤를리가 아닌 이들에게 대해서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냐는 의문 보다는 1분 침묵을 하지 않은 아이들을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그는 지금은 누가 샤를리고 아니고가 아니라, 어떻게 샤를리가 하나의 이름이 되었냐는 것인데, 부정적이었다. 왜냐하면 1월 11일 이후 이슬람혐오에 관련된 행위가 전례없이 많았다.
테러이후 정부가 취한 안전조치에 대해서 아메드 부바케 사회학자는 테러 행위에 대항한 예방책은 아주 좋았으나, 그것이 인구의 일부분에 있는 차별이나 통합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프랑스가, 극우파 같은 정체성 문제를 위한 정교분리원칙과 공공장소에서 종교를 전적으로 없애기 위한 좌파의 정교분리 원칙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사회학자는 전 총리였던 쟝마크 아이로 정부때에 통합정책을 위해 참여한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그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이유는 사회정치분야에 충분한 예산이 없었기 때문인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의 사회정치는 현재 골절 상태라고 한다. 오늘 날 프랑스의 문제는 사람들간에 분열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1월 11일 행진은 이 모든 골절을 보여준 것이었다고 한다.
프랑스는 점점더 공동체 사회가 되어가고 있냐는 질문에, 그는 통합보다는 프랑스 사회안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맞다고 했다. 프랑스는 지금 미국화가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북아프리카 출신의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의 가치를 나누고 있고, 문화적으로는 통합되었지만, 사회적으로는 분리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이 같은 갈등은 오랜시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었고, 30년전부터 거론해왔지만 변한게 없다고 했다.
<파리광장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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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2015년) 샤를리 엡도 테러와 유대인 식품점 인질극이 일어난뒤 4개월동안 많은 저서들이, 테러 이후 대국민 행진인 1월 11일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최근 엠마뉴엘 토드Emmanuel Todd의 <샤를리는 누구인가 ? Qui est Charlie ?>라는 에세이로 인해 다시 1월 11일의 행사에 대해 새로운 분석이 나오면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테러를 규탄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1월 11일의 대규모 행진에 대해, 엠마뉴엘 토드는 무의식적으로 이슬람혐오가 있는 나라에서 과연 ‘’샤를리는 누구인가 ? 종교적인 위기의 사회학’’이라는 책을 통해 다루었고, 세르지 페데르뷔쉬Serge Federbusch는 그의 저서에서 ‘’공권력에 의해 조장된 프랑스’’라고 했으며, 철학자인 레지 드브레이는Régis Debray는 ‘’민주적인 매카시즘(1950년대에 미국을 휩쓴 극단적인 반공운동)’’이라고 했다. 이외에도 여러 해석들이 있다. 표현의 자유, 정교분리원칙과 평등이라는 기치하에 프랑스는 두개로 갈라진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아메드 부바케르Ahmed Boubaker는 샤를리 엡도 테러는 이미 존재했던 프랑스의 골절이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1월 11일의 행진은 연합의 느낌은 없었지만 평화적이었고, 더불어 살아가기의 기운이 있었다고 한다. 그날 모든 프랑스인들이 행진에 참여한것은 아니지만 부정적인 분위기는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사회학자는 정부의 태도에 놀랐다고 한다. 국민들에게 시위, 즉 행진하기를 호소했다는것이다. 어떤 이들은 시위하라고 강요받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무슨 만장 일치된 동의안 같았다고 한다.
그런데 4개월이 지난뒤 그런 샤를리의 정신은 무엇을 남겼냐는것이다.
주된 실수는 정치인들은 1월 11일의 정신을 영속시키지 못했고, 부정적인 질문에만 전념했다. 이를테면 샤를리가 아닌 이들에게 대해서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냐는 의문 보다는 1분 침묵을 하지 않은 아이들을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그는 지금은 누가 샤를리고 아니고가 아니라, 어떻게 샤를리가 하나의 이름이 되었냐는 것인데, 부정적이었다. 왜냐하면 1월 11일 이후 이슬람혐오에 관련된 행위가 전례없이 많았다.
테러이후 정부가 취한 안전조치에 대해서 아메드 부바케 사회학자는 테러 행위에 대항한 예방책은 아주 좋았으나, 그것이 인구의 일부분에 있는 차별이나 통합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프랑스가, 극우파 같은 정체성 문제를 위한 정교분리원칙과 공공장소에서 종교를 전적으로 없애기 위한 좌파의 정교분리 원칙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사회학자는 전 총리였던 쟝마크 아이로 정부때에 통합정책을 위해 참여한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그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이유는 사회정치분야에 충분한 예산이 없었기 때문인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의 사회정치는 현재 골절 상태라고 한다. 오늘 날 프랑스의 문제는 사람들간에 분열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1월 11일 행진은 이 모든 골절을 보여준 것이었다고 한다.
프랑스는 점점더 공동체 사회가 되어가고 있냐는 질문에, 그는 통합보다는 프랑스 사회안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맞다고 했다. 프랑스는 지금 미국화가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북아프리카 출신의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의 가치를 나누고 있고, 문화적으로는 통합되었지만, 사회적으로는 분리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이 같은 갈등은 오랜시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었고, 30년전부터 거론해왔지만 변한게 없다고 했다.
<파리광장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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