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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안느의 드러낸 가슴 » : 공화국의 알레고리와 마뉘엘 발스 총리의 실수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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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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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들은 마리안느(Marianne)에 대해서 말해야 합니다 ! 마리안느공화국의 상징 ! 그는 가슴을 드러냈습니다왜냐하면민중을 부양했으니까요 ! 그는 머리에 두건을 쓰지 않았습니다왜냐하면자유로웠으니까요이것이 바로 공화국입니다 ! 이것이 바로 마리안느입니다 !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입니다 ! »

지난 29일 월요일 꼴로미에르(Colomiers)에서 열리 사회당 행사에서 마뉘엘 발스(Manuel Valls) 총리가 연설 마지막에 마리안느(Marianne)와 공화국(République)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이같이 펼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발스 총리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역사학자(혁명과 시민권 전문가마틸드 라레르(Mathilde Larrère)는 즉각 비상식적인 왜곡이라 평했다고대 모델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하나의 예술적 코드일뿐 마리안느는 여성을 대표하는 어떤 경우에도 속하지 않는체제의 알레고리즉 공화국이다그는 여성들이 자유와 멀었던 시대에 등장한다여성들은 미성년자와 같은 지위를 가졌다예를 들면 투표권이 없었던 시대다결국가슴을 드러낸 이 마리안느의 이미지는 프랑스의 정신과 일치하는 그것과 거리가 멀다다시말해벗은 가슴은 고대 미술 양식을 따른 것일 뿐여성성이나 공화국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리안느는 프랑스 대혁명 시기 프랑스 여성들의 일반적인 이름인 마리(Marie)와 안느(Anne)를 합친 것으로 자유평등박애라는 프랑스의 가치를 나타내는 여성상으로 알려져 있다.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 때 공화국의 상징으로 채택되었다.

프랑스 곳곳에 설치된 마리안느 상은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역사학자 라레르에 따르면, 19세기 프랑스에서는 두 가지 형태의 마리안느가 경쟁했다고 한다하나는 옷을 모두 입고 무장하지 않으며 프랑스 혁명 당시 자유의 상징인 원뿔 모양의 프리지어 모자를 쓴 형태이고다른 하나는 가슴을 드러내고 무기를 든 형태다.

이번 발스 총리의 발언은 여성의 몸을 가리키는 뷔르키니(Burkini, 무슬림 여성이 입는 전신 수영복)가 프랑스 공화국 가치와 맞지 않는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최근 프랑스 최고행정법원이 뷔르키니 금지는 개인의 기본적 자유권을 심각하고 명백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그럼에도 불구하고일부 지차체에서는 뷔르키니 금지 조치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혀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발스의 이같은 발언 이후 역사학자인 니꼴라 르부르는 리베라시옹에 « 발스가 1830년 들라크르와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마리안느를 헷갈린 것같다 »고 말하며 수습하려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들라크르와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은프랑스 공화국이 아니라 자유를 상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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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젠 들라크르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들라크르와의 정식 이름은 페르디난 빅토르 외젠 들라크르와(Ferdinand-Victor-Eugène Delacroix). 1798년 샤렌통 생 모리스에서 태어나 1863년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번 발스 총리의 실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작품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들라크르와가 1830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그는 당시 프랑스 7월 혁명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 1831년 파리 살롱전에 혁명 (Scènes de barricades)’이라는 제목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이후 1863년 부터 룩셈브르그 박물관에서 전시되었으며, 1874년에는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전되어 가장 자주 찾는 작품들 중 하나가 된다. 이 작품은 최근 루브르 렌스의 시대관에 전시되었다.

아이들의 세계사 교과서에서 프랑스 혁명을 논하면서 언제나 등장하는 대표작. 작품의 알레고리적 양상과 정치적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탓에 이 작품은 자주 민주주의나 프랑스 공화국의 상징으로 선택되었다. « 나는 함께 싸우지 못했다. 조국을 위해 적어도 그림이라도 그리겠다. » 라고 쓴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들라크르와의 열망, 그의 자유를 향한 불같은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또한 화폭의 아우라를 느끼는데 더욱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 들라크루아는 열정을 열정적으로 사랑했지만 냉정하게 열정을 표현한 화가였다. »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시인, « 악의 꽃(Les Fleurs du Mal,1857) » 으로 유명한 샤를 보들레르 (Charles-Pierre Baudelaire, 1821~1867)’의 말이다. 보들레르의 말처럼 들라크루아는 열정 그 자체였다. 열정적이었던 그가 자유의 상징으로 혹은 혁명의 상징이 된 작품을 제작한 것은 이상한 사실은 아니다.

실제로, 들라크르와는 공화정에서 왕정으로의 반동에 저항해 혁명이 재점화돼 활활 타오르는 순간을 포착해 1830년 프랑스 7월 혁명의 모든 것을 말하려고 했다고 평가된다. 이후, 180여 년이 흐른 오늘도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자유를 쟁취한 민주주의 혁명의 상징으로 빈번히 등장한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들라크르와의 말에서 보듯 작품 그 자체보다 작품이 매개하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더 중요하다. 샤를 10세가 의회를 해산하고, 다수의 시민들에게서 선거권을 박탈함과 동시에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침탈하면서 시작된 민중 봉기는 결국 혁명을 일으키고 마침내 성공한다. 당시 금지된 삼색기(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사용되었던 것으로 부르봉 왕정 복고 이후에 금지 되었다가 7 28일 혁명의 상징으로 다시 거리에 등장한 것이다.)를 높이 치켜들고 바리케이드를 넘어서는 여신, 마리안느가 중심에 서서 민중을 이끌며, 화폭 전체에 역동적인 빛으로 가득한 이 혁명 당시의 숨막히는 순간을 마치 영상의 한 장면처럼 화폭에 담아낸 들라크르와. 바리케이드를 넘어, 왕의 군대를 넘어, 전진하는 앳된 노동자와 거리의 젊은이, 마리안느 옆의 양손에 총을 든 소년은 군대라기보다는 자유를 향한 열망 그 자체다. 이 역동성이 살아 숨쉬는 듯한 묘사는 계급과 계층, 성별과 나이를 넘어선 거대한 파도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은 사실 고전적이고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같이 인물들의 힘찬 움직임, 열정적인 색채의 사용, 시내 곳곳에 타오르는 불길과 연기의 묘사는 결국 들라크르와가 추구했던 낭만주의 미술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날짜가 명기되어 있기는 하지만 특정한 사건을 묘사한 것은 아닌 이 장면을 낭만주의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화면 중앙에 등장하는 자유의 알레고리인 여성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사실과 비유의 혼합으로 이 작품은 7월 혁명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의 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자유의 이상, 추상적인 혁명의 이미지, 동시대 소재를 이용한 서사시가 되었다.

감정에 충실한 색과 형태를 중시한 낭만주의의 대표주자 들라크르와. 하지만, 그는 자신을 고전적인 화가라고 생각했고, 자신을 낭만주의자라고 할 때는 항상 단서를 달았다고 한다. 들라크르와는 « 낭만주의가 내 개인적 인상을, 학교에서 배우는 틀에 박힌 유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내 노력을, 아카데미 요소에 대한 혐오를, 자유롭게 선언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지금 낭만주의자일 뿐 아니라 15세부터 낭만주의자였다 » 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어쨌거나, 그는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 자유로운 색채의 사용으로 더할 수 없이 생동감 넘치는 화면을 만들어 내었다. 그가 사용한 색채와 그에 따른 배치, 구도는 불쾌감, 분노, 탄식 등이 고스란히 살아 움직이도록 배치하면서 감정의 고조를 이끌어낸다. 이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강조해 대상에 대한 의도적 변형까지 마다치 않는 신고전주의 화가들의 표현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사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실제 상황을 포착해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요점을 확대해 사건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었으리라. 이는 인간중심의 예술에 대한 희구를 드러내는 또 다른 방편이기도 하다.

이 모든 사실을 뒤로하고, 들라크르와는 사실 그가 활동하던 19세기, 당시 프랑스 혁명과 반혁명이 거듭되어 정치 제체만도 여러번 교체되던 시대, 정치활동이나 정치적 견해를 표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다시말해, 화가로서 프랑스 현실을 자신의 화폭에 담은 것도 바로 이 작품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유일하다.  


< 파리광장 / 현 경, dongsimijs@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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