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아뜰리에 탐방] 추상의 몸짓, 온전(穩全)한 자유를 탐색하는 화가 최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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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퍼포먼스와 설치미술에서 평면회화로, 구상작업에서 추상작업으로
최영웅 작가
창작의 자유와 내적 갈망, 그리고 예술적 탐구. 그 사이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탐색하는 작가 최영웅을 베르사유 근교 자택에서 만났다.
"겨울에는 물감이 마르지 않아서, 집에서 작업을 한다"는 작가의 설명과 함께 들어선 거실에는 선명한 원색이 돋보이는 100호 크기의 추상회화가 빼곡히 전시되어 있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물성과 회화의 정신성이 그대로 얽히고 설켜, 마치 깊이 침잠할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 첫인상은 결코 유연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오히려 낯설고 생경한 에너지가 강하게 뿜어졌다.
한 눈에도 작품에 쏟아부은 엄청난 노동량과 그 응축된 에너지가 공간의 공기를 가득 메우는 듯했다.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무게감도 상당했다. 그런데 그 아우라는 낯설고 생경했다. 마치 전혀 가공되지도, 숙성되지도 않은 ‘날 것의 생생함’이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굳이 비유한다면, 갓 낚아 올린 바닷물고기가 펄떡이는 생명력에 가까웠다. 어쩌면, 인터뷰 전에 작가가 보내준 작품 사진 속의, 지극히 회화적이고 안정적이며, 다소 보수적이었던 첫인상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수선한 감정에 제대로 된 인사도, 자리에 앉을 겨를도 없이, 어느새 작품 앞에선 작가가 자연스럽게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두서없이 풀어놓기 시작했다.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그는 문득 본인의 ‘작업이 기존의 액션 페이팅과 닮았다’거나, ‘잭슨 폴록의 작품이 연상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고 담담하지만 거침없이 말했다. 그의 말투와 태도에서, 어쩌면 그의 작품이 작가 자신을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가 좀 더 깊이 들어보고 싶어졌다.
-작가로서 본인의 작품이 다른 어떤 작품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편할 리 없다. 그런데, 작품을 소개하며 스스로 먼저 이야기했다.
내 작업은 색을 쓰는(뿌리는)게 아니라 붙이는 거지만, 어떤 작품에서 화면 내부에서 색 면의 충돌이나 구성으로 인해, 액션 페인팅의 흐름을 보이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잭슨 폴록의 작품이 연상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물론 처음에는 화가 났다. 비슷하다는 말을 들으면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젠 좀 달라졌다. 내 예술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 발전과정 중이고, 지금은 (그런 과정 중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본인 소개를 부탁드린다.
1984년생이다. 한국에서 서울미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6년 군복무를 마친 후 바로 프랑스로 유학을 오게 됐다. 베르사유 미술학교(Ecole des Beaux-arts de Versailles)에서 수학 후, 파리 1대학(Université Paris1 Panthéon-Sorbonne)에서 조형미술 학사(Licence en Arts Plastiques en 2014) 와 석사(Master de recherche en Création et Plasticités Contemporaines en 2018)학위 과정을 마쳤다. 현재 박사과정(doctorat en Art et Sciences de l’art)에 재학 중이다.
-미술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적성에 맞았다. 스스로 그림이 좋아 선택했다.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한 것은 9살 초등학교 3학년부터다. 화가가 꿈이었다.
-고교 졸업 후 한국에서 대학을 가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
당시에는 대학수능, 입시제도 등 (제도권 교육)에 대한 거부감을 넘어 ‘타도해야 한다’ 이런 류의 생각이 있었다. 실제로 관련 활동으로 방송에도 출현했다. (물론 지금은 완전 변했다.) 당시에는 미술교육이나 입시미술에 대한 거부감이 많아서, ‘그런 것을 하지 않겠다’는 모토 같은 것이 있었고 실천에 옮긴 거다. 하지만, (대학 입학 대신) 전시나 퍼포먼스 같은 미술 관련 활동은 적극적으로 했다. 학창시절부터 군대 가기 전까지 꾸준히 전시에 참여했다. 아트 선재 같은 중견급 미술관 등에서 전시했는데, 그때는 너무 어리고 잘 몰라서, 그런 미술관의 전시에 참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이후 2004년에 군에 입대했고 2006년 제대하자마자 프랑스로 바로 왔다.
-프랑스를 선택한 이유는?
군생활을 하면서 외국 여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프랑스가 예술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지 않나…와서 겪어보니 예술에 대해 좀 더 개방적이고 특히, 여유, 기다림의 미학이 있는 곳이라고 느껴졌고 너무 좋았다. 예술가에게 기다리은 매우 중요한 거다. 적응하며 살다 보니 20여년이 흘렀다.
-현재 박사과정 중이다. 한국에서 제도권 교육을 거부해 대학 진학도 선택하지 않았는데, 어떤 계기로 프랑스에서 학업을 꾸준히 하게 되었나?
공부를 시작하면 그 끈을 놓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다는 점이 프랑스 학업 시스템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히, 학비가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원하면 학업을 스스로 계속 이어갈 수 있다. 나의 경우 일을 하면서 학업을 지속할 수 있었고, 그래서 (시작했으니) 공부를 한 번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또, 무슨 일이든 다 시기와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 역시 같은 맥락이다.
최영웅 작가 아틀리에
-졸업 예정이라고 들었다. 박사 논문 주제는 무엇인가?
올해 논문을 탈고하고 내년 초쯤 졸업할 예정이다. 논문의 주제는 « 이주 속의 예술(Migration dans l'art) »이다. 나는 항상 ‘이 그림이 어디서 왔는가’ 혹은 ‘이 그림의 형태들이 어디서 왔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예를 들면, 오리지널이 항상 존재한다. 먼저, 계속 쌓인 것들이 나의 오리지널이라면, 그것을 깎아 내고 걷어 낸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것을 표현하고 싶었고 어느 순간 느낌이 왔다. 좀 더 학문적으로 접근해 논문의 주제를 더 명확하게 들어낼 수 있는 접근 방법을 고민했다. 단순히 화면 표면에서 물감을 걷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물성의 확장(materiality)을 넘어선 극대화(maximization)’를 시도하는 거다. 보통, 화면에 여러 번 칠해 겹을 만들고, 그 (화면)안에서 해결하는 방식을 많이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방식을 넘어 어떤 한계를 돌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자유롭게, 저 물감들이 완전히 다른 물감으로 재탄생해 새로운 것을 만들자’ 이런 영감에 사로잡혔다. 그 때부터 이런 방식의 작업을 시작했다. 원판을 만들고 그 원판을 깎아내서 오리지널의 그 흔적들은 그대로 남겨 둔 상태에서 다른 새로운 작업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3년 전쯤 문득 들었다.
-« 이주 속의 예술 »이 현재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인가?
이 추상화들은 풍경 이미지의 ‘인상’을 표현한 것이다. 풍경 인상을 담는다는 것, 이것의 기본은 ‘이동’이다. 대부분의 내 작업은 이동하며 풍경에서 받은 인상을 표현한 것(이미지화)이다. 예를 들면, 아내에게 헌정한 작품이 있는데, 암스테르담 옆 쾨켄호프(Keukenhof) 마을의 튤립 농장을 여행하며 느꼈던 인상을 표현한 것이다. 예술가는 이주하지 않으면, 바꿔 말해 자신의 문화 밖으로 나와서 새로운 문화와 섞이지 않으면 그 상태에서 더 이상의 새로운 예술로 확장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몬드리안은 뉴욕으로, 피카소와 반 고흐는 파리와 남프랑스로 여행도 하고, 다들 이주를 경험했다. 프랑스와 전혀 상관없는 많은 한국 예술가들 역시 이곳에 이주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확장했고 하고 있다는 점은 실로 흥미롭다.
-평면 작업임에도 상당한 두께와 볼륨감마저 느껴져 마치 부조 작품 같다. 질감도 도자기 같고 어느 부분은 진짜 도자기 조각을 붙인 거 같은 느낌도 든다. 물감만 사용하나?
순수 아크릴 물감으로만 완성한 작업이다. 물감을 얇게 펴서 말리고, 그 과정을 반복한다. 겹겹이 쌓는 과정을 반복해, 마르면 걷어내서 자르고 그 조각들을 캔버스에 붙여 (재)구성하는 작업방식이다. 페인팅처럼 캔버스 위에 직접 하는 행위는 전혀 없다. 붓도 전혀 쓰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나이프를 사용한다. 별도로 제작한 이 물감 층을 걷어내어 잘라서 캔버스위에 미디움을 이용해 붙이고 (재)구성하는 작업방식으로, 특히 발색과 내구성이 매우 좋다. 이미지 상으로는 좀 부드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단단하다. ‘힘’이 느껴지는 이런 물성의 특징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다. 또, 요즘 실험중인 작업이 있는데, 데칼코마니처럼 한번에 똑같은 작품을 만드는 거다. 여러가지 아크릴 물감을 겹겹이 쌓아 올려 밑 작업을 하고, 그 표면을 나이프로 완전하게 걷어내서 다른 하나를 만드는 방식이다. 회 뜨듯이 얇게 걷어내면 한 면은 오목하고 다른 한 면은 볼록한 형상을 가진 두 개의 작품이 탄생한다. 1- 2년 정도 이런 다양한 실험을 통해 나름의 최적화된 조건이 갖춰지면 내년이나 내 후년쯤 100호 캔버스에 본격적인 작품에 들어갈 거다.
-추상회화 이전, 초창기에는 어떤 작업을 했나?
미술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작업을 위한 모든 예술적 테크닉은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고 자부한다. 처음에는 구상작업을 주로 했다. 정말 많이 ‘그렸다’. ‘풍요와 결핍’이 내 작업 개념 중 하나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특히 애니메이션 작업에 몰두했다. 지금 시대는 작업 툴이나 기술이 너무 보편화 되어 있지만, 2000년대 초 반만 해도 오로지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해서 작업해야 했다.
작업 중인 최영웅 작가
-언제부터 현재와 같은 추상화 작업을 하게 되었나?
약 3년 전 소나무 협회에 신입회원으로 들어가고, 첫 단체전에 참여 하면서부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협회의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전시를 하면서 긴장도 되고 스스로 많은 자극을 받았다. 한편으론 ‘나 역시 조금 더 대단할 걸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 작업은 칠하고 덮고 붓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두께(겹)가 있다. 그런데, 그 겹을 조금 더 극단적으로 늘려보자는 생각으로 한 첫 시도가160겹의 출발이다. 극단적으로 층수를 올려보자는 마음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코로나 당시 운동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아이들 재워놓고 밤새 그림만 그렸다. 물감조차 살 수 없었다. 그때부터 물감을, 그 전에 작업했던 것에서 색을 뜯기 시작했다. 색이 필요했기 때문에, 뜯어내서 다시 붙이고 재구성하기 시작한 거다.
-작업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데 보통 얼마나 걸리나? 기계를 쓸 수도 있는데, 수작업으로 뜯어내고 자르고, 다시 캔버스에 붙이고 하는 방식을 계속 고수하는 이유가 있나?
작품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어떤 작품의 경우 색감을 만드는 데만 3년 걸렸다. 100호 작품의 경우 물감 덩어리를 깎아 내는 데만 최소 3개월 걸린다. 어떤 작품은 10장에서 15장의 밑 작업 그림(판)에서 나온 조각들이다. 깎아 낸 조각을 다시 화면에 붙이고 쉬지 않고 반복해야 한다. 일종의 수행 과정이다. 수작업을 하는 이유는 기계를 사용하면 자국이 남고 원하는 느낌을 살리기 어렵다. 작품 하나를 들어가기 위한 준비작업은 힘들지만, 하나의 오리지널에서 작품이 두 점 혹은 세 점 시리즈로 탄생하면 그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시리즈 역시 처음부터 계획에 의한 것이라 준비 과정 역시 두 세배의 시간과 노력이 든다. 보통 연작은 세 점으로 구성한다. 아들이 셋인데 아이들에 대한 헌정 같은 거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다. 화가들은 보통 사랑하는 사람들, 부인, 아이들처럼 가족이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많다.
색상의 경우, 예를 들면 아이들의 레고 블록 장난감에서 영감을 받았다. 아이들의 행위나 종종 아이들이 그린 그림 같은 것을 보다 보면 순수함에서 나온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 (아이들이 있다 보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사실 시간의 소중함이다. 작업하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몰입할 수밖에 없다.
-예술가의 삶이 사실 녹록치 않다. 특히, 이렇게 엄청난 작업량을 필요로 하는 작품을 하는 경우 가정생활과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한번 작업에 몰입하면 중간에 멈추기도 어려울 거 같다.
그래서 작업실을 간헐적으로 운영한다. 작업실에 한 번 가면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하루 20시간씩 작업만 한다. 작업실은 일년에 총 6개월 정도 운영한다. 보통, 2개월 작업하고 2개월은 일상 생활을 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최대한 일상 생활과 작업 시간을 철저하게 분리시키려고 노력한다.
-원색 위주의 작업이 많다. 원시적이고 직관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에 반해 전체적인 느낌은 상당히 절제되면서 중후한 느낌이 있다.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화려한 색을 선호하는지, 혹은 자신만의 색상이나 특별히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는지 궁금하다.
오늘 거실에 전시된 작품들이 최신 작업이다. (여기까지) 지난 7년간 약 500점의 작품을 제작했다. 원래 색상이 훨씬 더 화려하고 에너지 넘치는 역동적인 작업을 많이 했다. 그런데 계속 하다 보니 어느 순간 톤을 좀 낮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맥락에서 가장 ‘극단적인 시도’가 올해 초 완성한 달항아리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내 작업은 화면 어느 한 곳 빈틈없이 꽉 채워졌다면, 달항아리 작업은 빈 공간(형상 외 여백)을 살린 첫번째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을 벽 면 한 곳에 걸어두고 매일 감상한다. 지금까지 내 작업에는 ‘빈 공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최근 들어 점점 ‘빈 공간’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화면을) 비어 놓으니 너무 좋다. 그러다 보니 ‘비우면 뭐가 있을까’ 안 붙이거나 아니면 색상의 톤을 좀 낮추고 차분하게 (구도도) 수평적인 느낌이 들게 구성해보려 한다. 지금까지는 무조건 원색만 사용하면서 화면에 극단적으로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고 해왔다. 이제는 ‘좀 비우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공간을 비워 보면 ‘나머지 것들이 더 잘 보인다’ 라는 생각이 이제 들기 시작한 거다. 달 항아리 작업의 경우 강한 색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이 (색상) 톤은 내 자신 스스로가 가장 타협해서 만들어낸 색감이다. 작품의 마티에르는 기존 작업과 비슷하지만 화면이 무채색에 가까운 이유다.
-대화를 할수록 마치, 내면에 폭발을 앞둔 용암을 머금은 화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학창시절에는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 애니메이션 등 보다 실험적인 형식을 추구하며, 스스로도 아방가르드적인 성향을 추구했다고 인정했다. 실제로 당시 제도권에 대한 저항을 실천에 옮기기도 했는데, 현재의 회화 작업은 상대적으로 전통적이고 정적이라 할 수 있다. 왜 평면 작업만을 고수하나? 혹시, 회화에 여전히 관대한 프랑스 미술계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치나?
한마디로, 추상화가 내가 가장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체로서 평면회화는 끝(한계)이 없다. 참 어려운 작업이다. 또, (다른 매체들에 비해) 흐름이나 유행, (작업) 환경에 덜 민감하다. 예술적 관점에서, 내 회화의 시발점은 추상(화)에 대한 궁금증이었고, 여전히 추상에 대한 풀리지 않는 갈증이 있다.
-왜 추상(작업)이 궁금한가?
개인적으로 ‘추상적인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면, 언제나 정해진 단계를 만들고 계획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사람이다.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을 정해놓고 하는 편이고, 그게 편하다. 그런데 추상작업은 그런 게 아니다. 빈틈, 쉼(우연성)과 유희가 있는데 그런 것을 몰랐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같은, 우연과 필연이 혼재하는 우주 같이 추상미술의 세계는 묘한 매력이 있고 계속 연구하고 싶게 만든다. 그림을 그릴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림 말고 다른 취미가 있나?
화가가 아니면 운동 선수가 됐을 거다. 특히, 주짓수(Jiu-jitsu) 검은띠 유단자다. 도장에 정기적으로 나가고 수업도하고, 프랑스 챔피언 쉽 에도 출전하고, 각종 대회에서 우승도 많이 했다. 운동이 확실히 예술세계에 주는 에너지(영감)가 있다. 예를 들면, 운동을 좀 줄이면 그림이 좀 차분해진다. 요즘 운동을 좀 줄이고 있다. 작업실 운영 전에 몸을 만들어 나야만, (노동집약적인)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 유명 예술가 중 운동에 열정을 가진 이들이 있다. 이브 클랭(Yves Klein)도 유도 4단의 유단자였다. 유도가 그의 파란색 작업과 바디 페이팅 퍼포먼스에 영감을 줬다고 할 수 있다. 이브 클랭이 나의 예술적, 정신적 지주다.
-작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계획이라기 보다는 재미있는 미술학교도 만들고 싶고, 영화 감독도 하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사실, 현재의 작업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항상 (작업) 임한다. 현실적으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사실 노동에 가깝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이런 작업을 할 수 없는 나이가 조만간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기기도 하고, 아마 앞으로 한 10여년 정도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계속 실험 중이고 좀 더 효과적인 방식을 연구 중이기도 하다. 미술사에 남을 만한 작가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나의 모든 시간을 작업에만 몰입할 수 있는 ‘전업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은 있다. 10년 안에 아트 바젤(Art Basel)에 참가하고 싶다.
-앞으로의 전시 계획은?
오는 2 월 18일부터 개최되는 아트 캐피털(Art Capital)의 살롱 콩파레죵(Salon Comparaisons) 섹션의 아트-메티스 그룹(Groupe art-metis)전에 참가한다.
<현 경 기자 dongsimj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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