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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 수교 140주년 기념 특집] 프랑스인 다즐레, 1787년 울릉도 발견하여 서양에 최초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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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를 이끈 라페루즈 백작(좌) 과 울릉도를 발견한 라페루즈 원정대 일원 다즐레(우)


우리나라 동해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 울릉도를 발견하여 최초로 서양에 알린 사람은 프랑스인이었다. <파리광장>은 <프랑스 한국의 맛 연구소>와 함께 한불 수교 140주년 기념 특집으로 울릉도를 서양에 최초로 알린 프랑스인 다즐레와, 그가 참여했던 라페루즈 원정대, 그리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는, 영국의 대탐험가 쿡(Cook)이 끝내지 못한 지역에 대한 원정 탐험을 계속하여 이를 보완하라는 임무를 라페루즈 백작- 장프랑수아 드 갈롭(Jean-François de Galaup, comte de Lapérouse)에게 맡기게 된다. 라페루즈의 사명은 아메리카 대륙의 북부와 아시아 대륙, 특히 쿡이 1776~79년 사이에 실행하지 못한 조선의 동해안, 타타르 해안, 일본의 홋카이도, 쿠릴 열도, 캄차카반도 등을 탐험 관측·조사하는 것이었다. 


고 이진명(프랑스 리옹 3대학) 교수가 1997년 신동아(6월호)에 밝힌 것에 따르면 "당시, 과학 기술의 발달에 고무되어, 영국과 프랑스는 세계 탐험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었다. 과학의 발달로 항해술이 발달했고, 위도와 경도를 세밀히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대의 탐험은 백과사전파들이 표방했던 단순한 「지식의 확대」에 대한 갈망 뿐만이 아니라 식민지를 넓히려는 영국과 프랑스 간의 경쟁적인 야망도 크게 작용했다".


이로써 라페루즈 백작이 이끄는 라페루즈 원정대의 세계 일주 항해(1785-1788)가 시작된다.  

 

1741년 프랑스 남부 알비에서 태어난 라페루즈는15세 때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한 후 영국과의 7년 전쟁에 참전했다. 1779년 프랑스가 미국 독립전쟁에 뛰어들자 라페루즈의 군대는 영국 해군과 접전을 벌여 큰 공적을 남겼다. 1783년 미국 독립전쟁을 종결한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면서 라페루즈의 해군 생활은 끝나게 된다. 이후 루이 16세의 명으로 세계 일주 항해를 떠난다. 고 이진명(프랑스 리옹3대학) 교수가 1997년 『신동아』(6월호)에 발표한 것에 의하면, 함대는 새로 건조한 두 척의 최신 호위함, 라 부솔(La Boussole)과 라스트롤라브(L'Astrolabe)로 구성되었다. 모함인 부솔함에는 해군 중위 2명, 소위 3명, 준사관 4명, 박식한 과학자, 천문학자, 생물학자 및 화가 10명, 하사관 9명, 포수와 사수 8명, 목수, 선체수리 전문가와 닻 담당 10명, 조타수 및 수병 38명, 보트병 12명, 잡역부 9명, 하인 7명 등 112명이 승선했다. 아스트롤라브호에도 비슷한 인원이 승선했으므로 2백20여 명이 탐험에 참가했다.


조사 작업에 필요한 당대 최신 과학 장비와 각종 자료(중국, 한국, 일본 등에 관한 책과 지도 등), 백과사전, 학술 논문 등도 적재했다. 특히 항해 장비는 그때 처음으로 사용한 복각계(伏角計, 경사 나침반) 등 세계에서 가장 앞선 것이었고, 영국인들은 쿡이 사용했던 장비들을 대여해주기도 했다. 그외에도 200여 명의 인원이 수년간 먹을 식량과 보금품도 두 함정에 나눠 실었다.


원정대는 1785년 프랑스 브레스트항을 출발해 카나리아제도를 지나 대서양을 가로질러 칠레 해안에 도착했고, 이어 하와이제도를 거쳐 캘리포니아 해안을 탐사한 후 1786년 9월 태평양 횡단에 나서 1787년 1월 마카오에 닿았다. 한 달 후 필리핀으로 떠났으며 필리핀 기항 후 북상하면서 제주도(화란 이름인 켈패르 - Quelpaert -가 20세기 중엽까지 서양 지도에 사용됨)를 스칠듯이 가까이 지나, 탐험에서 가장 흥미있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동해를 탐험하게 된다. 


울릉도 발견한 프랑스의 천문학자 다즐레(Dagelet)

1787년 5월 27일 동해를 항해 중인 라페루즈 탐험대는 보유한 지도에 없는 섬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 라페루즈 원정대의 대원이었던 조세프 르포트 다즐레(Joseph Lepaute Dagelet, 1751-1788)였다. 조세프 르포트 다즐레는 프랑스의 천문학자가이자, 수학자, 파리왕립군사학교의 수학, 천문학 교수, 프랑스 최연소 과학 아카데미 회원(1785년)이었고, 라페루즈 탐험대의 천문학자로 참여했다. 이에 라페루즈 탐험대는 서양 최초로 울릉도를 발견하고 다즐레의 이름을 따 울릉도를 ‘다즐레(Dagelet)’로 명명했다. 이후 150여 년간 서양에서 제작된 지도에는 울릉도가 다즐레로 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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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페루즈 원정대가 그린 울릉도 지도


남태평양 바니코로(Vanikoro)에서 난파

원정대의 프랑스 귀환은 1789년 여름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라페루즈가 1788년 3월 호주에 기항한 이후 왕실은 아무 소식도 받지 못했다. 이에 국왕은 구조 원정을 파견했으나, 결과는 허사였다. 라페루즈 원정대의 흔적은 1826년 영국인 선장 피터 딜론에 의해 바니코로에서 처음 확인됐다. 이후 아스트롤라브호의 잔해와 유물은 여러 차례 회수됐고, 1828년, 프랑스의 군인이자 탐험가인 뒤몽 뒤르빌은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다. 1962년에는 마침내 모함 부솔호의 잔해가 발견돼, 폭풍우로 암초에 좌초해 파괴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울릉도 탐사 경위는 1797년 초판이 출간된『라페루즈의 세계 탐험기』에 수록돼 있다. 이 항해 일지에는 울릉도와 제주도, 한반도 남·동해안의 실측 해도와 지도가 담겨 있으며, 이는 서양인이 한국을 직접 관찰·측정해 기록한 최초의 과학적 자료다. 라페루즈 탐험대의 측량 결과는 매우 정확해 프랑스 해군이 반세기 넘게 그대로 사용했을 정도였다.


2017년 프랑스 라페루즈 협회 회장 울릉도 방문

2017년『아주경제』기사에 의하면, 1787년 5월 27일 울릉도를 발견해 서양에 처음 소개한 프랑스의 라페루즈 백작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라페루즈 협회 관계자가 그의 울릉도 발견 230년이 되는 해를 맞아 울릉도를 방문했다고 전했다. 18세기 서구사회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과 태평양 항로 개척을 목적으로 시작된 라페루즈 탐험대의 활동은 한반도 근해 최초의 해양 조사라는 의미와 함께 울릉도가 서구사회에 최초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장 마리 페스텔 라페루즈 협회장은 “첫 한국 방문인 만큼 라페루즈와 깊은 관계가 있는 울릉도 탐사가 더욱 의미가 깊다”며 라페루즈 제독 기념 주물을 울릉도·독도 해양과학기지에 기증,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아주경제』는 밝혔다.

 

라펠루즈 원정대와 울릉도, 독도 한국 영토 입증 

고 이진명 교수는, "라페루즈 탐험기는 객관적인 제3자의 관찰로 울릉도가 한국 섬임을 밝혀 주고 있다. 즉 1787년 (正祖 11년) 5월에, 적어도 2개 집단의 한국(당시 조선) 사람들이 울릉도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해변에서 배를 건조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라고 1997년『신동아』6월호를 통해 밝혔다. 또한 라페루즈의 원정대는 울릉도 상륙 전에 철수하여 독도는 보지 못하고 항로를 북쪽으로 하여 타타르 해협으로 향하고 만다고 밝히면서, 라페루즈 일행은 베테랑 해군 장교와 학자로, 동양 자료를 참조하며 세밀히 측정해 정확한 해도를 작성했다. 탐험기의 기록에 따르면 울릉도에는 한국인 주민과 조선식 배 건조 현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어, 울릉도가 한국 고유의 영토임을 입증한다. 이는 부속 도서인 독도까지 한국령임을 시사하며,『라페루즈의 세계 탐험기』의 의미를 보여준다고 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블로그를 통해 라페루즈 세계 일주 항해는 유럽인들의 지리적 지식과 항해 기술을 크게 발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양에 울릉도를 처음으로 알린 탐험대로, 한국 근해 최초의 해양조사로서의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파리광장, 프랑스 한국의 맛 연구소 공동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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