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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필 교수의 세상 읽기] 손과 손, 그 촉각적인 만남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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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왼눈이 오른눈을 볼 수 없고, 왼쪽 귀가 오른쪽 귀를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손은 다르다. 커피잔을 들고 있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만질 수 있다. 그러면서 오른손은 왼손이 만지고 있는 커피잔을 간접적으로 만진다. 손이 손을 만질 수 있다.

하루를 시작하는 경험이 촉각이다. 우선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리고, 빵에 치즈를 올려 전자레인지에서 데운다. 그리곤 책상으로 커피와 빵을 손에 들고 가져와 앉는다. 그리곤 손으로 컴퓨터를 켜고 손으로 클릭한다. 그리곤 손으로 글을 쓴다. 촉각이 우선이다. 


하지만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시각 경험이 선행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우선 보아야 만질 수 있다. 시각이 먼저다. 사각이 먼저인 게 통상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전오식(前五識)은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다. 그중 안식이 첫 번째다. 시각이 모든 지각의 우위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백 번 듣는 게 한 번 보는 것과 같지 않다. 우린 보아야 확실하다. 


그런데 시각 경험이 과연 확실한가? 의심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자기 방에서 책을 읽다가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이 사람이 맞는지를 의심한다. 눈을 의심한다. 눈이 눈을 의심할 수는 없다. 마음이 의심한다.


눈은 사물의 본질을 오독할 수 있는 상상력의 생산지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맹인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오이디푸스에게 “그대는 눈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어떤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는지를 보지 못하며, 자신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누구와 살고 있는지를 보지 못한다.”고 반박한다. 눈은 다른 감각기관보다 훨씬 더 멀리 볼 수 있다. 이게 눈의 권력이다. 눈은 사물의 일부를 보고 마치 전체를 다 본 것처럼 위선을 부리고 오만을 뜬다. 내가 많이 다니는 골목길에 누군가가 써놓았다. ‘보이는 게 절대 다가 아니다’. 어떤 의도로 쓴 낙서인지는 모르겠다. 지나다니면서 눈이 자꾸 가는 글귀다. 


멀리서 바라보거나 지켜보는 대상이 사랑은 아니다. 다가가 손으로 만지는 대상이 사랑이다. 상대의 손을 만지면서 내 손 역시 상대의 손으로 만져진다. 손은 사랑의 직접적이고 생생한 채널이다.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만나서 손을 잡는 것으로 사랑은 시작된다. 

그러니 사랑을 느끼는 가장 원초적 경험이 촉각이다. 상대의 손을 만지면 그 감각이 나의 손에 자리잡는다. 이걸 ‘정위감각(定位感覺)’이라 한다. 나와 상대 사이의 공동 경험이 생생하게 원본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소가 손이다.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여전히 내가 본다는 주체의식이 살아있다. 하지만 상대의 손을 만지는 건 이미 내 손 역시 상대의 손으로 만져지는 상호주체적 경험이다. 


우리가 근성으로 하는 악수가 소중한 이유다. 상대를 하나의 사물로 취급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하는 첫 번째 소통이 악수다. 악수가 가장 보편적인 인사 방법인 이유다. 물론 일부 문화권에서는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악수는 공통적 인사 예절이다. 악수를 많이 해 손해 볼일은 없을 거 같다. 악수의 기원은 내 손에 무기가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방법이었다. 서로가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어도 좋다. 습관적으로라도 악수를 많이 하면 좋다. 난 당신을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고백이 바로 악수이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대구교대 장교수의 출판기념회를 한다. 장교수의 후배들과 대학원 제자들이 마련한 자리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다. 악수할 일이 많은 오늘이다. 


<김영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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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대학교 교수와 대구교육대학교 연구교수 역임. 철학박사(전공 서양철학 중 현상학). 저서로는 ‘여행, 인문에 담다(2020)’ , ‘욕망으로 성찰한 조선의 공간(2021: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신천에 철학 카페를 짓다(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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