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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일의 찾아가는 한국 영화>-툴루즈, 예술영화 전문상영관에서 신상옥 감독의 <지옥화>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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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툴루즈 예술영화 전문상영관 인스타그램 계정 


도시들을 산 넘고 물 건너 방문하는 ‘찾아가는 한국영화(Le cinéma coréen dans votre vill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10월 19일 툴루즈를 방문했다. 아름다운 붉은 벽돌 건물이 많아 장밋빛 도시(La Ville Rose)라는 별명을 가진 프랑스 남서부의 이 도시에는 르 크라테르(Le Cratère)라는 이름의 예술 영화 전문상영관(une salle de cinéma d'Art et d'Essai)이 있다. 이곳을 찾아 툴루즈 시내를 횡단했다. 걷기에 유쾌한 도시에 별점 가득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4개 도시를 순회하는 이번 행사는 korean french art connection 2025 - KFAC이 진행하는 제5회 한국영화의 만남의 일환으로 Festival Corée d'ici - Association Corée'Graphie의 남영호 예술감독의 빛나는 기획과 제작으로 뜨거운 프랑스 현지 시네필들의 반향과 함께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툴루즈 편에서는 한국영화의 전설 신상옥 감독을 주제로 그의 1958년작 «지옥화 »의 상영으로 시작되었다. 필름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빠르게 열화된다. 이에 따라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지닌 위대한 고전 영화들을 보존하고자 여러 나라가 오래된 필름의 복원 작업에 힘쓰고 있는데,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국립영화영상센터 (CNC. Centre National du Cinéma et de l’image animée)가, 한국에서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이 작업을 전담한다. 2008년도에 유실된 필름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지옥화 » 의 1차 복원 시도가 있었다. 2020년에 원본 필름 을 다시 스캔하여 4K 해상도로 고화질 디지털 화면 복원 및 사운드 보강 작업을 진행한 재디지털 복원이 이루어지면서 « 지옥화 »가 다시 태어났다. 나는 이 작품의 프랑스어 자막 번역을 하면서 여러 번 이 영화를 보았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 프랑스에 도착한 이 복원 버전을 2025년 가을 툴루즈의 시네필들과 함께 보면서 필름의 선명함과 70년 전 신상옥 군단의 놀라운 사진술법에 다시 놀랐다. 


신상옥 감독이 우리 곁을 떠나 하늘의 별이 되기 이전에 나는 프랑스 영화 전문지 까이에드시네마(Cahiers du cinéma)의 편집장이자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의 집행위원 장 샤를르 테쏭(Charles Tesson)과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20살 청년 신상옥은 당시 충무로, 즉 한국영화를 리드하던 최인규 감 독의 조수로 1946년 영화계에 입문하였다. 4 년 동안 온갖 기술과 충무로의 인맥을 꾀어 차게 된 청년 신상옥에게 별안간 날벼락이 떨어진다. 1950년 한국전이 시작된 것이다. 모두가 영화 작업을 포기한 이 시기, 25세의 청년 신상옥은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통에 서 자그만 16미리 카메라를 들고 그의 첫 장 편영화를 제작 연출한다. 제목은 « 악야 ». 전쟁으로 폐허, 아니 지옥이 된 한반도를 그리는 이 영화는 «지옥화»와 상당히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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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창일의 찾아가는 한국영화> 툴루즈의 예술영화 전문상영관에서 

왼쪽 사진: 강창일 . 오른쪽: 필립 뷔(Philippe Vu)-korean french art connection 2025 - KFAC 


신상옥 감독은 이 시기의 상황을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전쟁 후 모두가 굶주렸고, 그나마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라곤 미군 부대 주변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그곳에 남은 음식을 얻거나 훔치기 위해 드나들었죠. 폭탄에 팔다리를 잃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시신처럼 누워 있었고, 그 옆에선 어린 아기들이 울부짖었습니다. 어린 여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영혼 없는 기계처럼 미군들에게 몸을 파는 것뿐이었습니다. 제 영화가 우리 사회의 이토록 깊은 고통과 아픔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를 '한국적 리얼리즘'이라 부르며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1948년작 «자전거 도둑 (Ladri di biciclette) » 같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데 있어 한국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재정적 부분에 있었습니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 나아가 제가 구상하는 미래의 영화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산업적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좁고 악취가 나는 달동네와 판자촌을 촬영해 왔고, 당분간은 계속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 것이 바로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기차가 질주하고, 자동차 추격전이 벌어지며, 총탄이 빗발치는 액션 영화를 꿈꿉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꿈을 꾸게 합니다. 제가 처음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한국은 전쟁 중이었습니다. «지옥화»를 촬영할 때도 모든 한국인이 굶주렸습니다. 우리 촬영팀 전원 역시 굶주렸죠. 하지만 우리는 영화 이야기, 할리우드 스타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고픔을 잊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꿈을 꿉니다. 언젠가 한국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 부문의 오스카를 받을 날을 꿈꿉니다. 이는 할리우드에 대한 존경심의 문 제가 아닙니다. 저는 세상의 다른 끝, 할리우드와는 정반대의 곳에도 영화가 우리에게 꿈을 꾸게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내가 다시 신상옥 감독을 만난다면 기쁘게 웃으며 말할 것이다. « 감독님, 한국영화가 오스카 본상을 아예 휩쓸었어요. » 


                                            

<강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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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8대학 연극영화 박사, 파리 10대학 비교문학 연구자, 무성영화 변사. 프랑스 방방곡 곡을 누비며 강연회와 상영회를 통하여 한국영화를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 »(Ocrée Editions, 2021), «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Ocrée Editions, 202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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