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냑-제이 미술관, 《Correspondances》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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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 튀르노에, 18세기와 오늘의 대화
©한지수
1929년 개관한 코냑-제이 미술관은 백화점 ‘라 사마리텐’의 창립자 에르네스트 코 냑(Ernest Cognacq)과 마리-루이즈 제이 (Marie-Louise Jaÿ)가 파리시에 기증한 컬렉션을 기반으로 한다. 마레 지구의 고급 저택을 개조한 공간 안에는 18세기 예술에 특 화되어 있으며 회화, 조각, 작센 자기, 금세공 품, 명품 가구 등 계몽주의 정신을 반영하는 풍부한 소장품을 갖추고 있다.
계몽의 시대와 현대 예술이 만나는 자리
이번 전시《Agnès Thurnauer: Correspondances》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감 각이 교차하는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프 랑스-스위스계 작가 아녜스 튀르노에(Agnès Thurnauer, 1962-)는 언어를 회화의 중심에 두고 사유와 이미지를 엮는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18세기의 대표적 화가 프랑수아 부셰, 프라고나르, 카날레토뿐 아니라 여성 예술가 아델라이드 라비유-기아르, 비제-르브랭, 코프만, 그리고 철학자 에밀리 뒤 샤틀레와 스탈 부인 등과 대화하며 시대를 초월한 감각적 공명과 새로운 해석을 제안한다.
이름을 뒤집어 묻다
튀르노에의 중심 회화 연작 중 하나인 초상 시리즈는 이름을 확대해 표현한다. 18 세기의 인물들을 성별 전환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미술사 속 젠더 권력의 구조를 유머러스하게 뒤집는다. 남성의 이름을 여성형으로 바꾸어 당시 남성 중심으로 기록된 미술사 속 인물을 재구성한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수아즈 부셰(Françoise Boucher)’는 퐁파두르 부인의 총애를 받았던 화가 프랑수아 부셰를, ‘엠마뉘엘 칸트(Emmanuelle Kant)’ 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를 여성형 이름으로 다시 부른다. 그 변화된 이름 속에는 단순한 장난이 아닌 ‘누가 역사를 쓸 자격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 숨어 있다.
언어로 짜인 회화, 회화로 구현된 사유
2005년부터 이어진 역사화(Peintures d’histoire) 시리즈는 미술사의 명작들을 텍스트와 함께 재구성한다. 단어와 인물이 뒤엉킨 회화들은 읽기와 보기의 경계를 허물며 보이지 않던 주체들의 목소리를 시각화한다. 2012년 시작된 주형들(Matrices) 연작에서는 석고로 만든 글자 조각을 통해 언어의 물질성을 탐구한다. 언어를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만지고 재배치할 수 있는 물질처럼 다룬 것이다. 비워진 형태는 틀처럼 남아 언어를 새로 조합하고 사유의 근원으로 되돌리는 실험적 장치로 기능한다. 또한 Prédelles 연작은 ‘제단화 하단’을 뜻하는 단어를 ‘Près d’Elles(그녀들 가까이)’로 변주하며 역사 속에서 지워진 여성 예술가들에게 헌사를 바친다.
©한지수
‘앉는’ 행위로 완성되는 언어
튀르노에의 의자 연작은 전시 공간 마지 막 부분에 설치되어 관람객이 직접 앉아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색채의 모체(Les Matrices Chromatique)는 앉을 수 있는 조각이라 불리는 알루미늄 벤치 시리즈다. 관람자가 직접 앉음으로써 언어·색·공간의 관계를 신체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은 “언어를 앉을 수 있는 조각으로 만든 실험”이다. 그녀에게 의자는 사유의 자리이자 존재의 은유이며 배제된 이들에 게 자리를 돌려주는 상징적 행위다.
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드는 예술
작가는 18세기 미술과 오늘날의 시각을 교차시키며 예술사 속 여성의 위치와 언어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전시 전반은 회화, 조각, 설치, 텍스트가 서로 맞물리며 구성되어 있는데 특정한 메시지를 강하게 주장하기보다 관람자가 언어와 이미지 사이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게 만든다.
전시 정보
● 전시 기간: 2025년 10월 02일–2026년 02월 08일
● 위치: Musée Cognacq-Jay (8 rue Elzévir 75003 Paris)
● 요금: 일반 11€/할인 9€ (18-25세, 학생)
● 운영 시간: 10시 - 18시 (월 휴무)
<한지수 hanjisoo03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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