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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아줌마의 <파리 유학생활-그때 그 시절> "프랑스어, 영원한 남의 나라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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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나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양 과목으로 영어가 있었다. 영어 교수님이 가족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나 공항에 도착해서 겪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영어를 모르는 가족들은 교수님이 환 한 표정을 지으면, 함께 환해지고, 침울한 표정이면 또 함께 침울해졌다는 것을 유학시절 의 웃픈 일화처럼 이야기해 주었다. 영어를 모르는 가족들은 교수님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교수님 표정에서 일의 진척 상황을 읽어내고는 그 같은 표정이 나왔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키득거리며 듣고 있을 때 내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이 흐르고 나서 나는 프랑스로 떠나오게 되었다. 비록 고등학교부터 제2외국어가 불어인 여고를 다녔고, 불어불문학을 전공해서 불어에 대한 낯설음은 없었지만, 이 땅에 떨어지고 나서 일상에서 부딪히는 언어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귀가 트이기까지 얼마, 말문이 트이기까지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린다는 말들이 유학생들 사이에 있었다. 언어는 그만큼 시간이 쌓여야 열리는 것이다. 그렇게 언어장벽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유학 생활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더군다나 문법이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르고, 말을 할 때 혀가 위치하는 구조가 완전히 다른 불어를 익히기는 쉽지 않았다. 프랑스인들은 일상 대화에서 말을 뱉어내기 보다는 자주 단어를 먹는 구조라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처음에 ‘파르동 (Pardon 다시 한 번 말해 주시겠어요?의 뜻) 파르동’ 거리곤 한다. 

나는 분명히 불어로 이야기했는데, 상대 현지인이 영어로 대답을 해오면 나의 불어 발음이 얼마나 구렸으면 그랬겠냐 싶어, 주눅이 자주 들었다. 또한 불어로 한 두어 시간 이야기하고 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곤 한다. 불어가 모국어가 아닌 탓에 직관적으로 나오지 않고 생각해서 말하기 때문이리라. 지금이야 번역기가 있고, AI마저 있으니 언어로 인해 문제점은 비교적 해결하기 쉬울 것이다.


불어 익히기 위해 한국인들끼리도 불어로 대화… 

나는 이곳에서 불어로 두 개의 논문을 썼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싶지만, 프랑스인에게 교정을 받았고, 교수님께서 자기 나라 언어가 아닌데 이만큼이라도 논문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배려로 논문은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나를 이끌어주며 함께 살았던 선배 언니는 참 야무진 사람 이었다. 어딘가 어설펐던 나와는 달리, 모든 면에서 단단하고 똑 부러졌다. 

어느 날, 언니는 프랑스 교수님과의 면담을 앞두고 불어에 익숙하기 위해서 둘이 대화를 불어로 하자고 제안해왔다. 좀 불편하고 오글거렸지만 언니의 제안에 따라야 했다. 지금 같으면 넉살 좋은 아줌마라 ‘에이~ 무얼 그렇게까지요’ 라고 했겠지만 당시 그럴 수는 없었다. 사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많이 오글거리기는 한다. 하지만 열심히 불어를 익히고자 하는 언니의 강한 의지가 있었고, 나 또한 그것으로 인해 혜택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상상을 해보라! 20대 여자 유학생 둘이 불 어를 좀 잘해 보자고 불어로 이야기하는 모 습을 말이다. 곧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때 를 떠올려 보니 참 풋풋했고 그 의도가 '갸륵하다' 싶다. 

선배 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홀로 생활하면서 교수님과의 면담을 앞두고 어느 누구 하고도 불어로 이야기하지 않았고, 논문 면담은 그럭저럭 소통의 차질 없이 잘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한번씩 생각이 나곤 한다. 둘이 불어로 이야기하던 그때가 말이다. 


프랑스에서 강산이 세 번이 바뀌는 시간을 살아왔지만 모국어가 아닌 불어는 영원히 남의 나라 언어일 수 밖에 없다. 성질 급하고 다혈질인 내가 급한 상황이라도 닥치면 혀가 꼬이면서 벅벅거린다. 한때 불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 불리웠던 적이 있다. 그건 멋진 배우, 알랑들롱이 아름다운 여인에게 사랑을 속삭 일 때인거 같고, 유학생 현실에 불어는 뛰어넘어 극복해야 할 장애물 중의 하나였다. 


<파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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