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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아틀리에 탐방] «서정적 극사실주의»의 진수, 화가 "임 길 프랑소와(Franço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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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길 작가는… 


현재 파리 아트클럽 갤러리(Artclub Gallery)와 옹플뢰 르(Honfleur)의 갤러리 오베니쉬(Galerie Obéniche) 전속작가로 활동 중이다. 2000년 도불한 이후 프로방스와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작가는, 2013년 파리 르 살롱(Le Salon)전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지난 2021년부터 구상 대전(서울 예술의 전당)을 비롯해, 2022년 부산 국제 아트 페어(벡스코), 2023년 로뎀 갤러리(서울 동안교회) 전시 등에 참여하며 예술활동의 폭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작품 활동 외에도 사단법인 ICCMF 불어권 선교회 이사(문화, 예술)를 역임하고 있다.  


화가 임 길(본명 임정길)은 자신을 극사실주의 작가로 소개한다. 극사실주의(Hyper realism)가 대상을 사진처럼 치밀하고 정밀하게 재현하려는 경향을 말한다면, 임 길의 작업은 일상의 순간 속에서 포착한 ‘아름다움’을 극(hyper)대화한 생생한 재현에 중점을 둔다. 감각적 재현을 넘어, 내면의 울림을 ‘시각화’하려는 그의 이러한 시도는 ‘서정적인 극-사실적 화풍’ 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하다. 

자연과 빛, 그리고 도심의 일상을 섬세하게 관찰하며, 그 안에 깃든 영적인 메시지를 화폭에 담아 내는 화가 임 길 프랑소와 (François)를, 파리 근교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프랑스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에 언제 왔나? 

-2000년에 가족과 함께 도불하여, 프랑스 남쪽 지방 몽펠리에 정착했고, 12년 간 살았다. 이후 2013년부터 파리에 정착했다.


프랑스로 오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94년도에 혼자 남프랑스에 왔었다. 당시 나는 한국에서 극사실주의(Hyper-realism) 경 향의 작업을 했는데, 별로 대중성이 없었다. 예술적 돌파구를 찾기 위해 한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무작정 왔지만 막막했다. 지인이 있는 남불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당시 그림 감정을 하던 프랑스 신인상주의 화가 조 르주 쇠라(Georges Seurat)의 손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를 통해 한 화랑 대표를 만나, 내 작품을 보여줄 기회가 있었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했다. 그곳에서 3개월 정도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프랑스로 다시 가기 위해 약 5-6년간 준비했다. 


극사실회화 작업을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1980년대 한국 화단에 나타난 하나의 경향이기도 했는데, 작가적 시각에서 어떤 특별한 매력을 느꼈었나?-20대 초반 극사실주의가 한참 유행했다. 단순히 사진처럼 대상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모순이나 이슈 등 중요한 쟁점을 다루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작가로서 매우 매력적이었다. 


전업작가를 목표로 도불한 것인가?

-기본적으로 전업작가, 즉 ‘작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림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작가 활동을 유지하고 싶지 않았고, 오직 작품을 통해 생활하고, 재투자하고 가족도 부양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으로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왔고, 남불에 정착할 수 있었다.


프랑스로 건너온 이후, 전업 작가로서의 길은 비교적 수월했나? 남프랑스 현지에서의 작업 환경이나 적응 및 도전 과정도 궁금하다. 

-처음에는 작업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작품을 들고 화랑마다 전전했지만, 그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물론, 동양인이라는 점도 한 몫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극사실회화 자체가 프랑스 미술계와 맞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극사실 기법으로 풍경이나 정물 등을 그렸는데, 사람들은 관심은 보였어도 작품을 사지 않았다. 그때부터 3년간 프랑스인(관 객)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내 작업 스타일, 색채 등 모든 것을 바꿨다. 달리 말하면,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인상파를 사랑한다. 프랑스에서 (화가로) 활동하려면, 특히 그런 ‘프랑스 색’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랑스만이 가지고 있는 색’. 

화랑, 컬렉터들은 ‘그’ 부족한 부분을 단번에 알아챈다. 더구나,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은 동양인을 터부시하는 면도 있었다. 3년 동안 내 기존 스타일을 완전히 버리고 바꿨는데, 그 결과 아무도 내 작품이 동양인 작가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작가명도 프랑소와(François)로 바꿨다. 당시, ‘이’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이름까지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업이 되려면 [그] 문화에 철저하게 녹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지금도 그 믿음엔 변함없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한 화랑 대표의 눈에 들었다.


'색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전업작가로서의 내 경험에 근간한 생각이지만, 각 국가마다 ‘고유의 색’이 있다. 한국은 색동으로 대표된다. 색이 강하다. 프랑스(인)는 그런 색을 쓸 수가 없다. 보이는 풍경 자체가 그런 색이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빛에 따라 색상이 바뀌고 희미해진 듯한, ‘햇볕에 날아간 (파스텔보다도) 바랜 색조’에 가깝 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내가 보고 알기는 해도, 표현이 안 된다는 거다. 프랑스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색깔과 특유의 방법이 있다. 또 하나는, 프랑스 관객들은 [이] 그림 안에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즉 « 시적인 (Poétique) » 면을 중요하게 여긴다. 왜 이렇게 그렸나? 무슨 사연이 있을까? 이런 질문을 많이 한다. 이런 사실들을 알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내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도불 후 3년 만에 갤러리 전속작가가 된 것인가?

-갤러리 대표의 눈에 들었지만, 지역 화가들의 반대가 심했다. 작품은 프랑스인이 그린 거 같은데, ‘동양인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낙심하고 돌아섰는데, 문득 지금까지 (내가 행한) 모든 일, 각오, 변화, 시도 등이 ‘내 의지보다는 신앙의 힘으로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찾아가 문을 두드렸고, 그 대표가 다른 화랑을 소개해줬다. 신생 화랑이었는데, 그곳 전속 작가 베스트셀러로 6년간 활동했다. 인상파 계열의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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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길 작가의 작품 <초대> -"삼위일체 그리고 화면 속 나비는 ‘나’ 자신이다. 하나님이 나를 저 공간으로 초대한 것이다."


기독교인으로 현재 교회 장로다. 신앙이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신앙은 내 작업의 근간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나의 기본 감성이며 삶의 가장 좋은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에서 발하는 빛과 색에서 아름다움을 그리는 행위는 그 섭리 속에서 자유하며 평온하다. 출애굽기 25장과 29장에 기록된 영과 진리의 색과 아름다운 모양들은 진리의 말씀을 담아내고 영감 넘치는 작업 추구에 예시이며 방향을 알게 한다, 유화로 작업하며 물감이 지니고 있는 색의 깊이와 투명성을 붓질을 통해, 아름다움 속 신비에 드리운 영적 의미를 상상하고 상황에 포착된 색과 깃들인 빛을 표현한다. 작품에 껍질을 벗고 화려하게 부활한 나비를 등장시킴으로 미성숙의 굴레를 벗고 거듭난 우리를 의인화하여 인생의 참 모습으로 표현 하였다. (고:15장 인용)


프로방스 지방에서 흥행 작가였다. 왜 파리로 올라오게 되었나?

-매너리즘에 빠진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점차 내 스스로 내 그림을 복사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림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결국에는 작업을 포기하게 될 거 같았다. (작가로서) 변화가 절실했다. 


파리 미술계의 첫 인상은 어땠나? 

-(남쪽 지방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우선, 인상파풍의 회화는 전혀 없다. 파리에 와서, 첫 한 달 동안 갤러리를 찾아 무작정 돌아다녔다. 우연히, 갤러리 미카엘 마르시아노(Galerie Mickael Marciano) 대표의 눈에 들어, 그가 한 달 안에 작품 30점을 가져오라고 했다. 데뷔전을 위한 개인전 팜플렛을 만 들기 위해서다. 프랑스 미술계는 (문화적으로) 전업작가라면 작품이 항상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고, 약 5주간의 우여곡절 끝에 갤러리에서 전시할 수 있는 유화 작품들을 완성할 수 있었다. 파리에서 첫 데뷔는 성공적이었고, 이후 9년간 전속작가로 활동했다. 


유화 작업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구상화는 유화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화가 색상이 오묘하다. 특히, 신비스러움을 내포하는 색상과 투명함은 아크릴 보다 훨씬 뛰어나다. 유화의 기름 성분이 색과 색 사이 공간을 만들어 주면서 입체감을 살려주기 때문에 더 실감난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익숙한 재료이기도 하다. 남불에 서 다작을 하면서 유화 물감의 사용이나 색을 도입하는 나만의 방식을 찾게 됐다.


현재까지 전업작가로 활동하며 (본인) 스스로 갖춰야 할 자세나, 혹은 작품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예술가로서 프로가 되려면, ‘작품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야기한다면,)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내 작품에 공감할 수 없다면, 결국 [그] 작품은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세계를 표현하고, 나의 예술적 철학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타인의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면 의미가 반감된다. 감동은 예술의 본질이며, 공감은 그 감동을 이어주는 다리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림을 판매하려 한다면, 작품을 감상하고 구입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할 책임이 작가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활동하는 곳의 문화와 환경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 작품 안에는 (작가의) 철학뿐 아니라 관객(감상자)의 이야기도 담겨야 공감과 감동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단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는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는 있어도,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을 끌어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안에 감동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유화 작품임에도 색채가 맑고 투명한 느낌이 드는 것이 인상적이다. 


색채에 대한 특별한 철학이나 신념이 있나? 

-(일반적으로 사람은) 모양이나 형상보다 ‘색’에 더 큰 감동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마치 음악이 음으로 감정을 울리듯, 그림은 색으로 마음을 움직인다고 느낀다. 즉, 사람을 감동시키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은 색에서 나오고, 아름다움 역시 그 색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내가 그리는 모든 작품은 무엇보다 ‘아름 다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렇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작품을 관통하는 큰 주제 또는 모티브는 무엇인가?

-순간의 일상을 포착한다.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장면들 속에 아름다움이 숨어있다고 느낀다. 특히 사람, 움직임, 그리고 (그) 도시 속에 쏟아지는 빛, 이 세 가지 요소가 어우러질 때 그 장면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런 (지나칠 수 있는) 순간들을 산책 중에 발견하기도 하고, 사진을 통해 기록해 작품으로 발전시킨다.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을 붙 잡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작가로서 예술적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는 태도가 인상 깊다. 앞으로 작품의 방향이 궁금하다.

-구상회화를 정말 좋아하지만, 추상적인 표현에 대한 고민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다. 최근 이미지를 점차 덜어내고,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작품처럼 보다 영적인 면으로 접근을 모색 중이다. 구상 특유의 감성을 유지하면서, 색(면)을 통한 공간의 표현에 집중해, 더 깊은 추상의 세계로 발전시키고 자 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현재 여성 선교사들을 위한 영상전을 준비 중이다. 올해 7회를 맞는다. 작품 판매 수익금은 전액 그들의 치유를 위해 기부된다. 앞으로도 선교를 목적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음악 공연과 함께 영상 전시로 선보일 예정이다. 순간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퍼포먼스도 계획하고 있다. 계속 내가 좋 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즐기고, 신앙인으로서 내 작업이 치유의 도구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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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경 기자 dongsimj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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