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작가 <프로방스 여행> 연재(9) -마르세유에서 가장 오래된 서민 동네 르 파니에 (전편에 이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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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광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연재 이후,
<프로방스 여행-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연재합니다.
연재를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는 마르세유의 르 파니에 동네를 찾을 때마다 20대를 보낸 서울의 금호동 동네를 떠올리곤 했다. 경사진 언덕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동시에 2명이 지나가기도 힘들어 보이는 좁고 가파른 골목, 창문마다 널려 있는 빨래, 이집 저집에서 흘러나오는 고함과 웃음소리, 마늘 냄새, 사람 냄새….
마르세유에서 가장 오래된 이 서민 동네는 지금 젠트리피케이션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가 가진 얼마 안 되는 것과 잔정을 이웃과 나눈다.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네와 정환이네, 선우네, 택이네, 동룡이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동네는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 1942년 독일군은 전격적으로 프랑스의 자유 지대를 침공하고 마르세유를 점령했다. 이에 반발한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가들은 1943년 1월 독일군 장교와 병사들을 살해했다. 그러자 독일군은 이 활동가들이 르 파니에 동네에 숨어 지내면서 범죄를 저지른다고 판단하여 같은 해 2월, 이 동네에 대해 대규모 일제 단속을 벌여 유대인 782명이 포함된 1,642명을 체포하여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그러고 난 독일군은 여기 사는 주민 2만여 명을 몰아낸 다음 1,200채의 주택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해 이 동네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마르세유를 세 번째 찾아갔을 때였나, 네 번째 찾아갔을 때였나….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구항(Vieux Port)의 어느 술집에 앉아 파스티스를 찔끔찔끔 입안에 흘려 넣고 있었다. 그때 옆자리에서 나처럼 파스티스를 마시고 있던 한 80대 노인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끝에 나는 그의 삶을 아주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는 세 살 때 아버지의 품에 안겨 이탈리아를 떠나 마르세유로 이민을 왔다. 아버지는 뱃사람이었다. 열 살 때 그는 르 파니에에 있던 집이 독일군이 설치한 다이너마이트에 의해 폭파되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순간, 그의 어린 시절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처럼 뱃사람이 된 그는 지금도 문이 바람에 쾅 하고 닫히기만 해도 공포에 사로잡힌다고 한다. 전쟁이 그에게 치유하기 힘든 트라우마를 남긴 것이다.
▯ 파스티스
프로방스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암묵적인 전통 같은 것이 있다. 점심을 먹고나서 낮잠을 자는 것, 늘 평정을 유지하는 것, 마을광장에서 벌어지는 페탕크 시합에 참여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장에서 한가로이 돌아다니는 것, 동네 카페에서 파스티스(Pastis)를 한 잔 시키고 테라스에 앉아 있는 것.
나 역시 바쁜 하루 일정을 마치고 프로방스 사람처럼 구항의 한 카페 테라스에 앉아 파스티스를 주문했다. 피처럼 붉은 해가 저 멀리 수평선 위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내 앞에 놓인 파스티스도, 내 마음도 붉게 물들었다.
파스티스는 여름철 프로방스의 태양과 환희, 흥겨운 분위기, 카바농(Cabanon)이라고 부르는 작은 별장에서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식전주다. 여름에 더울 때 파스티스를 마시면 갈증이 싹 가신다.
파스티스는 아니스 열매로 향을 내던 음료들 중 하나로, 19세기부터 공복이나 식사 전에 소량만 마셨다. 의약품이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파스티스는 소화를 도와주고 입맛을 돋우며 위의 통증을 가라앉게 한다.
파스티스
마르세유에서는 생트마르트 동네에 있는 와인 상점 주인의 아들 폴 리카르가 1932년 파스티스를 제조하여 상용화했다. 그는 감초와 아니스 같이 지중해 연안의 황무지에서 자라는 식물을 주성분으로 하여 이 술을 제조했고, 제조법은 비밀에 부쳤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알코올 도수 16도이상되는 술은 병사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파스티스가 다시 상용화된 것은 1951년이다. 그리고 같은 해, 페르노(Pernod)는 그만의 노하우로 ‘파스티스51’이라는 상표를 시장에 내놓아 대히트를 쳤다.
여름은 물론 겨울에도 식전주로 마시는 이 술은 파스티스 한 수저 분량에 다섯 수저 분량의 물을 타서 마신다. 여기에 석류 시럽이나 박하 시럽, 보리 시럽을 첨가할 수도 있다. 파스티스 한 수저 분량에 다섯 수저 분량의 콜라를 타서 마시는 사람도 있다.
<글 사진: 이재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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