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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갤러리89’에서 ‘200 K-Women’ 전시를 주최한 김효선 여성신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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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여성신문사 대표,  "갤러리89" 에서  


2월 24일부터 4월 5일까지 파리 12구에 위치한 ‘갤러리89(관장 안은희)’에서 ‘200 K-Women’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한국의 여성신문사 주최로, 출판사, 후원자, 한국미술협회, 문화체육관광부 협력하여 서울에서 먼저 전시를 가지고 이번 파리는 순회전의 일환으로 개최되고 있다. 

한국에서 여성작가의 창작을 발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세계에 전달하며,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지원하기 위한 공모전으로 기획되어, 출품자의 약력, 수상경력 소속은 묻지 않고 오로지 작품의 창의성과 독창성만을 기준으로 평가하여, 600여 점의 작품이 접수된 가운데300점의 국내 전시작과 200점의 파리 전시작을 선정했다. 

제 1차 파리 전시(2024년 2월 24일-3월 4일)가 시작되고 나서 여성신문의 김효선 대표가 ‘갤러리89’를 찾았다.

여성신문은 1988년 12월, 1000여 명의 주주가 성평등 실현을 위해 창간한 대한민국 유일의 여성정론지로서, 주간으로 발행되고 있다. 

여성적 관점에서 한국 여성을 대변하며 매주 한 건 이상의 특종을 보도했고, 여성들에게 안전한 삶, 사회경제적 지위에서의 평등, 현명하고 지속 가능한 소비,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약속하기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파리를 방문한 김효선 대표를 만나 전시 기획 의도와 현재 한국에서의 여성의 지위, 그리고 그동안 여성신문의 활약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를 위한 공모 취지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

-여성신문이 문화예술 사업을 많이 해요. 문화 파트가 여성운동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고요, 예술하는 여성들이 많쟎아요. 그런 여성들이 본인의 능력과 가능성을 실현시킬 기회를 충분히 받고 있지는 못하쟎아요 ? 그런 기회를 여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주최를 했어요. 문화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여성들이 자기를 성장시키고 재능을 확대해서 해외로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게 저희 여성신문의 창간 취지하고도 맞아서요.


올해가 두번째인 것을 알고 있어요.

-네 두번째인데 조금 더 확장되었고, 작품 수준도 좋아졌다고 하고요, ‘갤러리89’에서의 반응도 좋아서 판매 문의도 많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예전에 비해 한국여성들의 위상, 지위는 많이 높아졌지요? 대표님 보시기에는 어떤가요?

-매우 높아졌어요. 그리고 그건 기대 수준의 문제이기도 한데, 여성신문이 1988년도 12월에 창간을 했어요. 여성의 대변지, 여성운동을 하는 매체가 한국에 처음 나온거에요. 그때 여성신문을 보고 ‘너무 과격하다’, ‘너무 진보적이다’라는 반응이 있었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여성신문에서 ‘어린이 집’을 만들자라고 했고, 여성의 정치참여를 독려하고, 그리고 성폭력 사건 등을 알린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의 인권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우리를 과격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 여성신문이 너무 앞서간다고 했던 주제들이 지금은 전부다 우리 일상 생활화 되었어요. 사회수준이 많이 올라갔고요. 예전에 정치인들 인터뷰를 하다보면 별 소리를 다 들었어요. 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자기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했다고 하는 등, 지금은 그렇지 않고, 정책을 이야기하는 등, 사회분위기는 많이 바뀌었어요.


그사이 여성신문의 위상도 많이 높아졌겠어요 

-제가 편집장을 10년 정도 했는데요, 저희가 주식회사로 5천원씩 주식을 모으는걸로 펀딩을 했어요. 너무 작은 자금이라 경영난에 부딪혔죠. 그때 신문 가판대 주인 분들이,  ‘좀 재미있는거 싣어라’, ‘연예인도 나오고, 건강, 뷰티 같은거 좀 다루어라’고 하는거에요. 저희 창간 이념이 주체적인 여성관을 확립하고 공평한 세상을 마련하고, 평화적인 공동체를 위한건데, 그 당시의 여성지들이 봄철이 오면 화사한 색깔의 벽지 ? 예뻐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 등을 다루었는데, 우리는 여자들의 인권, 지위, 가사 노동의 가치를 이야기하니깐 재미가 없죠. 그때 우리가 타협을 안했어요. 우리가 갑자기 상업지 만든다고 하면 경쟁력이 없고, 여성신문 창간의 의미도 없어지고, 그래서 ‘우리의 길을 가자’, ‘가치있는 이야기를 하자’ 해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신문이 되자는 그 취지를 한번도 놓은 적이 없어요. 전 세계에서 페미니즘만을 가지고 30년 이상을 지속한 미디어가 없어요. 사람들이 다 기적이라고 해요. ‘기적의 허스토리(Her Story)’라고요.


여성신문에서 이슈화 시켜서 법제화된 것들이 있다면요 ?

- 그런거 많죠. 지금 한국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여성관련 법안들이 여성신문만이 나서서 만들어진건 아니에요. 그건 한국사회의 민주화 운동하고 연결이 되어 있는데, 1987년의 6.29선언 이후 바뀐게, 미디어나 다른 여성단체들을 만들 때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바뀌었어요. 내가 하겠다고 하면 하는거에요. 그때 여성단체들이 많이 생겼어요. 문제가 있으면 여성신문에서 보도하고, 그거 보고 여성단체들이 뭉쳐서 행동을 했죠. 그 중에 유명한 ‘안동주부사건’이 있었어요. 여성신문에서 크게 다루었는데요, 피해자의 과잉반응으로 법정 판결이 났는데, 그때 여성신문 기자가 안동법정까지 가서 취재해서 정말 열정적으로 보도하고 난 이후에 여성단체들이 들고 일어나서 결국 그 사건이 정당방위로 판결이 났었어요. 그게 영화화되기도 했어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라고 원미경 씨가 주인공이었죠. 

‘황혼이혼사건’도 있었는데, 오죽하면 75세인 부인이 이혼을 요구했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찾아가봤더니, 평생 남편 폭력에 시달리셨어요. 그분이 ‘난 내일 죽더라도, 오늘 이혼하고 싶다’라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저희 기자에게 말씀하셨어요. 그 표정 그대로 클로즈업해서 신문 표지에 나갔죠. 그게 또 크게 이슈가 되었어요. 그 사건은 대중적인 호소력이 있었어요. 여성운동에 관심 없는 분들도 그분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반응들이 많았어요. 기억 나는게, 천원짜리 열장을 봉투에 넣어서 그분 지원하는데 쓰라고 주신 분이 있었어요. 변호사들이 무료변론을 해서 이혼이 되었어요. 재산권 청구도 하게 저희가 도와드렸죠. 저희에게 고맙다고 후원금을 주셨어요. 그 돈으로 여성인권센터를 했죠. 그 이후로 황혼이혼 사건들이 저희 신문에 많이 나왔어요. 한편에서는 가정을 파괴시킨다고 그랬죠.

그때는 그런 사건을 여성신문만이 다루었는데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해서 다른 미디어에서도 젠더 데스크들이 있죠. 많이 법제화되었고요. 한국의 여성운동사에 여성신문의 역할이 있었던거죠. 전대 사장님은 여성운동상을 받으셨고요, 저도 삼성에서 주는 여성선도상과 훈장을 받았고, 여성신문사는 대통령,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어요. 


이번 전시 외에도 주최한 행사가 있다면요 ?

-문화사업도 많이 했습니다.  열린음악회, 마라톤 대회, 마라톤 대회는 여성 관련 행사들 중 제일 큰 규모에요. 만명씩 와요. 오월 첫째주에 서울시하고 같이 해요.

문체부하고 양성평등 문화사업을 해요. 매년 초에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지도자 상을 줘요. 미지상이라고 해서 미래를 끌어갈 차세대 리더들을 뽑아서 상을 주는데, 수상하신 분들 중에는 국회의원도 나오고 여성운동을 하신 분들은 한번씩 거치는 상이에요. 

   

요즘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젠더 갈등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젠더 갈등이 심하죠. 정치권에서 그걸 이용해요. 여성들한테 많은 혜택이 있으니깐 여성운동에 대한 곡해, 왜곡된 시선을 정치지도자들이 나서서 조장을 해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대세라는게, 즉 시대 정신이라는게 있기에 그 흐름을 꺾을 수는 없다고 봐요. 지금 한국사회에 남녀 임금 차별이라든지 완전히 해결된건 아니에요. OECD기준에서는 제일 낮거든요. 구조적인 문제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죠.     


가부장적이었던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것 같습니다. 어떻게 극복해 나가신거에요 ?

-용감하게 미움 받을 용기를 가지면서 나아간거죠. 올바르니까. 여성신문 혼자한게 아닌 다른 여성 단체들과 연대했어요. 시대 정신을 구현하는 매체로서의 역할을 한거에요. 그래서 힘을 받을 수 있었죠. 


올해 여성신문이 계획하고 있는게 있다면요 ?

-작년이 35주년이었어요. 제가 지금 21년째 대표를 하고 있는데, 올해는 모바일쪽으로, 디지털 전환에 애써보려고 하고 있어요. 저희 여성신문이 지금 네이버에 들어가는 인뉴스 매체에요. 네이버에서 컨텐츠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신문이에요. 그것을 더욱 가속화 시켜 나아가고자 하고요, 아까 말씀하신데로 젠더 갈등이 심하쟎아요. 이럴수록 페미니즘에 대한 원래의 가치와 지향이 무엇인지 설득시켜 나가려고 하고 있어요.


<파리광장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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