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칼럼 분류

<땡큐 맘, 지니의 단상> 20세기 소녀

작성자 정보

  • 최고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e18058c46a60a7963ddd17a1ac838643_1681755778_0571.png 

오늘 아침 도시는 수분을 흠뻑 머금은 모습이다. 연회색 구름, 촉촉한 공기,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만한 잔잔한 바람. 아직도 날씨에 따라 기분과 감정이 바뀌는 건 나이에 걸맞지 않은 철없음일까 ! 아직도 남아있는 순수 감성일까 !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에서 "유럽같은 날씨"는 오늘 같은 날씨의 대명사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그날 하루는 일상에서 벗어나 감성 여행이라도 떠나보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은 표현인 것 같다. 까페든, 집이든, 차 안이든, 공간에 상관없이 마음만이라도 대기의 향기에 맡긴채 어디론가 떠나보고 싶다.

20세기 소녀다. 지금의 MZ세대에게는 태고적 이야기같은 삐삐나 랩 뮤직, CD의 탄생마저도  나에게는 소녀시절의 종결을 의미한다. 워크맨, 안테나 꽂힌 라디오, 카세트 테이프, LP,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지금도 감성으로 절여진 기억들로 남아있다. 지금의 LG, 그당시  'Gold Star ' (금성)라고 적혀 있던 녹음기에 꽂아 듣던 테이프는 툭하면 늘어지고 줄이 꼬이고. 그나마 지속성이 좋은 LP판도 툭하면 판이 튀고 (트랙반복)바늘의 잡음소리가 귀에 거슬렸건만 이젠 그 잡음마저 향수로 자리잡아 버렸다.

20세기 소녀의 그리움 요소는 하나 더 있다. 연습장 노트  표지의 단골시,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질수록 /그대를 향한 마음이 희미해진다면/이 먹빛이 하얗게 마르는 날  /나는 그대를 잊을 수 있겠습니다 /초원의 빛이여/꽃의 영광이여. " 월리엄 워즈워스의 "초원의 빛 "이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 

연습장 노트에 적힌 시에 대한 나의 감응력이 발동을 한 걸까 ? 우스운 이야기겠지만 작고한 어느 시인에게 결국 사랑에 빠진 적이 있었다.  "윤동주" 가늘지만 선량한 눈매, 갸름한 얼굴, 순수한 얼굴표정, 북간도, 저항시인, 옥사의 비극까지 20세기 소녀는 영화 같고 소설 같은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 '에 가슴 시린 적도 있었다.  그 당시 내게 일급 보물은 당연히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였고, 페이지 마다 사계절의 마른 꽃잎과 낙엽은 책갈피로 끼워져 있었다. 아무도 몰래 시들을 필사도 해 보고 외우기도 했었다.

 역시 이상은 이상이었나 보다. 이상과는 별개로 지극히 현실적이고 행동파 이과 남자를 만나 지혜로운 이중인격자의 모습으로 21세기 현실을 잘 살아가고 있다. 얼마전 둘째 아이가 뜬금없이 아이폰3을 중고시장에서 구입해왔다. 아이폰 14까지 나온 시기에 왜 굳이 아이폰3이냐고 물었더니 화질이 더 레트로하다고 했다. 내가 봐도 더 흐리긴 하지만 빈티지한 느낌이 잔뜩 묻어 있었다. 실제 선명한 기억은 없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늘 그리운 향수의 유전자가 아련히 전해지나보다. 초록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건 원시 시절 사바나에 대한 그리움의 유전자 때문이고, 동물 문양의 옷이 아직도 멋져 보이는 이유도 수렵 채집 시절에 대한 잠재적 그리움 때문이라 한다. 세대를 초월해 우리 모두는 봉인된 그리움을 하나 둘 씩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하고 있는 듯하다. 마음의 고향을 찾아 떠나고 싶은 우리는 모두가 심미적 여행 동지이고, 노스탤지어의 향기는 영원한 위안이고 휴식이다. 오늘 아침, 움직임 없는 이 바람은 마음의 귀환을 몰고가는 향기 묻은 바람인가보다.


<땡큐맘, 지니 >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