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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KLEE (폴 클레) ‘L’IRONIE A L’OEUVRE’(풍자회화)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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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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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적 감수성’을 지닌 화가 폴 클레(Paul Klee, 1879-1940)의 작품을 파리 퐁피두센터(Pompidou centre)에서 오는 8월 1일까지 감상할 수 있다. 폴 클레는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독일 화가이자 스위스 활동작가. 청기사파* 바우하우스** 등과 관계를 맺었으나, 결국 클레 자신만의 고유한 화풍을 개척하며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다. 특정 미술 사조로 분류하기 어려운 대표적 인물로 평가되며,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작가 중 하나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작가 인생의 결정적인 ‘창조적 영감’을 받았으며, 나치(nazis)에게 102점의 작품을 몰수 당하는 등 핍박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기도 하다. ‘풍자 회화(l'ironie à l'oeuvre)’라는 주제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그의 미술세계를 반추하는 회고전 형식으로 회화와 데생 230여점 이상이 소개된다. 


* 청기사파 : 독일 표현주의의 주요한 유파로서, 이 명칭은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와 마르크(Franz Marc, 1880-1916)가 1912년에 피퍼(Piper) 서점에서 간행한 잡지 ‘청기사’에서 유래됐다. 1909년에 만들어진 뮌헨의 신미술가협회가 원류지만, 위 사람 외에 야블렌스키(Alexej von Jawlensky,1864-1941), 클레(Paul Klee,1879-1940), 막케(August Macke) 등이 포함되며, 후에는 프랑스의 브라크(Georges Braque,1892-1963), 루소(Henri Rousseau,1577-1640) 등의 작품도 독일에 소개되어, 범(汎) 유럽적인 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의해 청기사파는 자연 해산되었다. 이 파의 경향은 색채에 상징적인 의미를 주고, 독일 고대의 낭만적 심성을 화면에 형상화하는 것으로, 제작자의 내면 표현을 존중함으로써 추상화로의 길을 가게 된다. 이 그룹은 칸딘스키의 정신성, 마르크의 종교성에 의해 주도되어 추상표현주의의 모태가 되었으며, 이들의 작품은 최초의 추상이라 평가될 수 있다.


** 바우하우스(Bauhaus) : 독일 바이마르에 있던 조형학교. 1919년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가 미술학교와 공예학교를 병합하여 설립하였다. '바우하우스(Bauhaus)'라는 이름은 독일어로 '집을 짓는다'는 뜻의 하우스바우(Hausbau)를 도치시킨 것이다. 주된 이념은 건축을 주축으로 삼고 예술과 기술을 종합하려는 것이었다. 바이마르에서 출발한 바우하우스에서는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 폴 클레(Paul Klee),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등이 교육을 담당하였다. 바우하우스는 1933년에 완전히 폐쇄되기는 했지만, 이 곳에서 제작한 제품들은 많은 곳에서 모방되었다. 또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물건들을 단순하고 편리하게 설계하는 방법 역시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교수법과 교육이념 역시 세계 곳곳에 널리 보급되어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예술 교육과정에 포함될 만큼 현대 조형예술 분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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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클레는 1879년 스위스의 수도 베른 교외 뮌헨부흐제(Münchenbuchsee)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음악교사인 아버지와 성악을 배우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7세 때부터 바이올린 교습을 받은 전문가 수준의 바이올린 연주자였으며, 이후 그의 아내(1906년 결혼)역시 피아니스였을 정도로 ‘음악적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된 일생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아내와 함께 고향인 베른 심포니에서 연주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그의 삶은, 물론 화가였지만, 평생 음악과 매우 밀접한 ‘예술가적 삶’이었다고 볼 수 있다. 21세때 회화를 선택한 후에도 W.R.바그너와 R.슈트라우스, W.A.모짜르트의 곡들에 심취하여 많은 영향을 받은 것도 그런 이유다. 때문에, 클레의 (작품,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독자적 예술 정신’을 이해하는데 음악은 하나의 열쇠라 말 할 수 있다. 

폴 클레의 작품은 구상적인 미술양식과 추상적인 미술양식 모두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특정 미술 사조에 속한다고 단정 짓기는 불가능하다. 그는 작품에서 엄격한 입방체와 점묘법, 자유로운 드로잉을 실험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접했던 모든 미술 사조의 가증성을 탐색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1914년 아프리카 튀니지 여행 중 색채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당시 색채의 발견은 그의 예술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졌다. 튀니지 여행 후 그는 « 색채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나는 화가다 » 라는 말을 남긴다. 1920년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에 초대되었고, 30년 뒤셀도르프의 미술 학교로 옮겼다. 1933년 교직을 떠나 베른에 정착. 도상, 색채의 전조(轉調)나 큐비즘적 공간 구성, 초현실주의(Surréalisme)의 자동기술법(automatisme)***을 구사하여, 각 시기마다 독특한 화풍을 개척하였으며 말기에는 아동화와 같이 단순한 표의적 형상·기호·암호에 의한 작가 자신만의 화법을 구사한다.


*** 자동기술법 :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사용한 기법으로 무의식적으로 자동작용, 자동묘법이라고 한다. 자동기술법은 초현실주의 미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20세기 미술 및 문학 등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즉 모든 습관적 기법이나 고정관념, 이성 등의 영향을 배제하고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리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특히 잠든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중간 상태가 좋은데, 여기서 자연히 표출되는 선이나 형태 또는 말은 무의식 세계를 투영하고 있다. 초현실주의의 초기에는 특히 '수면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자동기술법, 꿈의 기술, 영매술적 실험 등이 많이 행해졌다. 그들은 꿈과 우연, 원시적인 이야기 등에서 힌트를 얻어 불가사의하기 짝이 없는 이미지를 자유로이 전개, 새로운 미의 세계를 펼쳐 예술계를 풍미했다.


< 파리광장 / 현 경, dongsimijs@gmail.com >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23-01-21 16:25:14 문화 / 예술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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