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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인작가 소개 IV> 사진과 출판의 경계를 허물고 출판 예술로, 엄도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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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리광장편집부 작성일 23-01-19 06:27 조회 3,33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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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과 예술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수 있다. 대부분의 예술 작품들이 도록으로 출판되어지기 때문이다. 

출판 예술, 즉, 책 예술을 다루는 한 방법에는여러가지가 있다고 한다. 개인의 작업물을 모아 출판한 형식을 띠고 있는가 하면, 이야기와 일러스트를 접목한 형태의 동화책이 있을수 있고, 책을 이야기 할 때 떠올려지는 활자나 간행물의 형태가 아닌 말 그대로 예술을 목적으로 한 출판물 제작이 있다. 이들 중 새롭고 흥미로운 것은 바로 예술을 목적으로 한 출판물이 아닐까 싶다. 


오로지 책 자체가 전시장이 되어 이미지와 텍스트를 구성해가는 작업을 하는 출판 예술에 주목한다. 

사진을 기본으로 출판예술 작업을 하는 엄도현 작가를소개한다. 그는 한국에서 공업 디자인을 공부하다가 프랑스로 유학을 와서 파리 세르지 국립 고등예술학교를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파리 8 대학교 사진과 현대 미술학과 석사 2학년에 재학 중이다.


<리스본의 아줄레호스, 백성을 보호하고 감싸주었던 왕 > 


파리 14구에서 열리고 있는, 파리 세르지 국립 고등 예술 학교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의 그룹 전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전시된 그의 작품들은 여러 타일 사진과 스냅 사진이 플렉시 글라스에 인쇄된 형태로  갤러리 곳곳에 퍼져서 전시되고 있었는데, 이번 작품을 착안하게 된 동기가 흥미로웠다. 엄도현 작가는 포르투칼 리스본 여행 중, 많은 건물들의 외벽이 타일로 장식된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아줄레호스(Azuléjos) 박물관에서 왜 타일들이 바깥 벽에 붙여지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

1755년, 지진이 일어나 리스본이 무너졌다. 이에 당시 왕실 정부는 어떻게 백성들에게 다시 희망을 주고 도시를 재건할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아줄레호스라는 타일 문화를 바깥으로 끌어냈다. 이것은 원래 귀족들의 집 안 장식을 위해 사용하던 것인데, 도시 재건 공사에 아줄레호스 타일을 이용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고, 아름답고 다양한 모티브로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했다.


작가는 이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고, 이것을 어떤 식으로 사진을 통해 보여줄 수 있을 지 궁리한 끝에 북 커버를 이용한 책 예술로 표현했다고 한다. 이 책 속에 들어있는 이미지들은 이번 전시를 위해 플렉시글라스 안에서 재탄생되어 있었다. 작가는 책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는 북커버에서 영감을 받았다. 아줄레호스 타일이 건물을 감싸주듯이, 백성들을 감싸주는 것을 북 커버로 표현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시된 그의 아줄레호스 작품들은 벽의 다른 모퉁이까지 감싸주듯 설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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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 디자인을 공부하다가 어떻게 사진과 출판 예술 작업을 하게 되었나요 ?


-한국에서 3년정도 공업디자인을 공부했는데요. 저랑 잘 안 맞았어요. 열심히 공부를 하기는 했지만 이것을 평생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정해져 있는 프로세스를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고 반복적인 작업들이 많았는데요. 그런 부분이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과 안 맞았어요. 그래서 프랑스에 와서 처음에는 그림을 많이 그렸고 조각, 비디오 작업도 했어요. 세르지 학교의 좋은 점은 많은 매체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이에요. 그 중에서 사진이 있었는데, 사진을 접한 건 저에게는 하나의 발견이었어요. 그 전에는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 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묘해요. 요즘은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잖아요. 그렇기에 사진작가의 정체성을 위해서는 더 연구하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럼 사진 작업을 하다가 어떻게 출판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


-제가 사진을 찍으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요. 보통은 그냥 단순히 벽에 걸어서 보여주었어요. 그러다가 세르지 학교 다니면서 에디션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어요. 정말 신선하고 재미있었어요. 책은 보통 글이 있고, 삽화가 있는데요, 에디션은 페이지 하나 하나가 전시장 벽, 그러니까 전시 공간처럼 되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그 안에 내 사진을 어떻게 배치할까 궁리하게 되는, 마치 제가 전시 큐레이터가 되는 거예요. 어떤 순서로, 어떤 크기로, 어떤 위치에 사진들을 배치해야 독자들이 책을 보면서 마치 사진들 사이를 걸어다니며 갤러리를 관람하는 느낌을 주게 할까 궁리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이 작업을 할 때 좋은 점은,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중에 꼭 어떤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는 거예요.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서 저의 개성을 더 살리게 되고 창의성도 더 부여하게 돼요. 예를 들어, 책을 만들 때는 북 커버, 페이지 순서, 규격, 제본 방식 등 고려해야 할 필수 요소들이 있는데요. 그 정해진 것들 안에서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작업들을하면서 이 분야에 대해 점점 더 매력을 느끼게 되었어요.


본인은 사진작가예요 ? 아님 출판예술가예요?


-저한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질문인 것 같아요. 어떤 쪽에 저를 위치시키는 지가 중요해요.아직까지는 둘 다 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작업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출판을 할 때 여러가지 목적이 있는데, 첫번 째로는 전시를 할 때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예요. 전시 도록이라고 하지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의 이미지적 지식이 사진에서 오는 것이에요. 예를 들면, 지금 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에 사람들이 루브르 박물관을 가보지 못 했지만 모나리자를 알고 있는 이유는 모나리자를 사진으로 보았기 때문이에요. 이런 경우의 출판은 정보를 기록하고 전파하기 위한 것일 텐데요. 제가 하고 싶은 출판은 책 하나가 예술 오브제가 되는거예요. 특정한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책을 손에 쥐었을 때 내가 예술 작품 하나를 만난다는 기분이었으면 좋겠어요. 페이지를 넘기면서 뭔가 독특한 경험한다는 느낌, 그래서 손끝으로 만지는 책의 종이를 선택하는것 조차 세심하게 신경써요. 그러니깐 사진과 출판의 경계를 허물어 사진을 기본으로 해서 출판을 예술화시키는 거라고 보면돼요.


그럼 거기서 사진 작품이 가지는 역할은 무엇이에요 ?


-사진이 시작이에요. 그것을 기본으로 해서 여러 요소들이 더해지면서 사진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극대화되는 거예요. 그래서 에디션 작업은 디자인과 아트의 경계도 넘나드는 것 같아요. 디자인은 유용성에 가깝잖아요. 제가 하는 작업은 철저하게 컨셉과 주제를 따르는 거예요. 컨셉에 맞다면 너무 작아서 읽을 수 없는 크기의 글자를 쓸 수도 있을 거고 때로는 글자가 아예 파편화되어 배치될 수도 있을 거고요. 그런 면에서 출판 예술 작업은 디자인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일종의 독립 출판(출판사가 아닌 개인이 주제, 형식, 틀부터 제작과 유통까지 직접해결하는 출판형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네. 이쪽 시장이 활발해지고 있어요. 유럽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작은 서점과 출판사들이 이런

독립출판물을 선보이고 있어요. 지금 사진 작가인 프랑스와 한국 친구들이랑 같이 출판사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아직은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각자의 성의 이니셜을 따서 ‘ces éditions’

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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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출판예술 상황은 어떤가요 ?


-프랑스는 출판 예술을 시작한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에 관련 독립 출판 서점들이 많고, 수집가들도 많아요. 독립 출판사를 위한 페어로는 ‘오프프린트offprint’ 가 있어요. 그리고 현대 미술 안에서도 책이라는 오브제를 이용해서 작업을 한 작가들이 많은데요. 마티스, Marcel Duchamp, Olafur Eliasson, Robert Filliou, Ed Ruchas 등이 그러한 예술가들이에요. 특히 개념미술 작가 중에서  Seth Siegelaub는 책을 전시 공간과 동일시하여 미술사에서 책이라는 매체의 영역을 넓힌 인물이에요. 2015년에는 ‘Pliure’ 라는 제목의 전시가 파리의 Fondation Gulbekian에서 열렸었는데요. 책을 주제로 한 전시로 예술가들이 어떤 식으로 책을 이용한 작업들을 했는 지 보여주는 전시였어요. 또 출판예술에 있어서 제가 좋아하는 작가는 Bruno Munari 와 Iruma Boom 인데요, 그들은 책이라는 매체 속에서 디자인과 예술 사이를 넘나드는 작업을 한 작가들이고요. 출판사 중에서는 MACK 과 Roma Publications, RVB Books 를 좋아합니다.


조금 전에 사진 작업은 출판 작업의 시작이자, 기본이라고 했는데, 사진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세요. 


-세르지 학교에서 사진 공부를 시작했는데요, 지금도 계속하고 있어요. 사진이 계속 변해요. 기술도 발전하고, 새로운 사진기도 나오니까요. 그런 것들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계속 공부해야 되는 것 같아요. 사진의 역사에 대한 것도 이해해야 되고요, 오늘날 사진이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 지도요. 요즘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리는 등, 사진찍는 게 일상적인 행위가 되었잖아요. 하지만 사진이 발견되었을 때는 비싸고 귀중한 것이라 누구나 할 수 없는 취미였어요. 그래서 ‘나는 왜 오늘날 사진 작업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제가 지금 책을 만든다든지 전시를 하는 행위 자체가 내 사진의 이미지가 존재할 이유를 주기 위한 것이에요.


이번 전시 사진 작품들을 보면 타일 문양과 함께 있는 이미지, 이 두개가 어떤 연관성이 있어요 ? 


-사진은 편평한 이미지잖아요, 저는 그 사진 속에 여러 층으로 깊이 있게 들어가는 이미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사진 속에 정치적인 메시지를 주는 이미지가 있다고 하면 그 안에 또 다른 이미지가 있는, 즉, 사람들이 사진을 보았을 때, 피사체에 대한 질문,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질문, 사진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한 질문 등 여러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제게 많이 하는 질문이 ‘도대체 이것을 왜 찍었냐’ 예요. 왜냐하면 제 사진의 피사체들이 매우 평범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그런 사진들을 찍는 이유는 그런 평범함속에서도 볼 것과 찾을 것, 그리고 아름다움이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줄레호스 사진들을 가지고 북 커버 작업을 했는데요. 북 커버가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오브제에요. 존재하고 우리가 접하는건데 그냥 제대로 관심 가지고 찾아보지 않는것이에요. 그래서 이 작업에서는 북 커버 한 장 한 장이 페이지가 되었어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중심에 두고 싶었어요. 이를테면 ‘평범한 것에도 가치가 있어요. 한번 봐주시고 질문을 던져봐 주세요’ 라고 제안하는거에요.


이렇게 사진 작품을 출판화한 주된 목적이라면요?


-사진이 벽에 걸려있을 때는, 그러니까 작품이 박물관이나 화랑에 걸려있으면 가까이 가면 안 될 것 같은 거리감을 느끼잖아요. 그런데 출판 작업은 책을 손에 들고 페이지를 넘기는 거예요. 독자와 작품이 손으로 맞닿아지는 물리적인 접촉이 박물관이나 갤러리에 있는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벽을 없애주는 거지요. 뿐만 아니라, 보통 실제 작품을 보려면 박물관이나 갤러리에 가야 되잖아요, 그런데 출판 예술 작업은 여기저기 퍼져나갈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어요.


출판예술에 대한 전망이라면요 ? 이 분야가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사실 쉽지는 않아요. 일단 사람들이 점점 더 종이 책을 많이 보지 않고, e-book으로 다운 받아서 보고 있는 상황이라서요. 하지만 제가 하려고 하는 책 시장은 그 쪽과는 다르게 직접 책을 만지고 책장을 넘기는 행위가 중요하기 때문에 별로 큰 영향은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e-book 시장을 활용한 에디션 작업을 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어찌됐든 이 분야는 상업적이지 못 해서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아요. 그래도 제가 출판 예술을 하고 싶은 것은 책에 대한 사랑, 열정, 애착이 커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만지는 느낌도 좋고, 읽을 때 한장 한장 넘겨가면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도 좋았어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으면 예술가가 되지 않았으면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어요 ?


-시 같은 짧은 글을 쓰는 것은 좋아해요. 그런데 보통 우리가 책이라고 하면 거의 글을 생각하잖아요. 물론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작가의 생각을 발견하는 것이 흥미로워요. 한국에 있을 때 책이라고 하면 무조건 ‘글’이 있는 책이었어요. 그런데 유럽에 와서 ‘책 속에 꼭 글이 없어도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한테는 큰 발견이었어요. 글이 없는 책들이 굉장히 많아요. 예를 들면, 동화책인데요, 그림밖에 없어요. 책을 넘기면 색깔밖에 없거나, 도형만 있거나. 특히 이태리에 그런 책들이 많아요. 또 Editions Xavier Barral 에서는 Mark Cohen의 사진으로 Dark Knees라는 책을 만들었는데요. 책 표지에 적흰 제목과 작가 이름이 그 책의 유일한 텍스트예요. 책 속에는 그 어떤 글도 없어요. 그것들을 보면서, ‘어떻게 이미지가 텍스트를 대체할 수 있을까 ? 사진의 경우, ‘사진이 텍스트를 대체할수 있을까 ? ‘ 하는 질문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저에게는 이미지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만약 제가 사진을 하지 않았더라도 글 쓰는 사람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제가 짧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글 자체가 이미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이 또한 이미지와 텍스트의 경계를 넘나드는거죠. 


앞으로 계속 사진과 병립해서 출판예술쪽으로 발전시켜 나갈 생각인가요 ?


-프랑스를 넘어서 유럽에서 이 분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갈거에요. 지금 저희들이 만든 출판사에는 프랑스인과 한국인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한불간의 교류를 계획하고 있어요. 프랑스 혹은 한국에서 아티스트들을 선택해서 그분들과 작업을 할 거예요. 한국에서 레지던시나 전시를 기획해서 프로덕션까지 할 수 있으면 재미있을 거 같아요. 한국와 프랑스, 각 나라의 좋은 점들을 최대한 이용해서 이 분야를 발전시켜 나갈 생각이에요.



<파리광장편집부>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23-01-20 18:13:12 인터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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