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파리아줌마 단상> 영화, "건축학개론"을 다시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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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리아줌마 작성일 23-01-19 00:40 조회 2,209 댓글 0본문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컴퓨터가 너무 느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용량을 줄이기 위해 외장 하드디스크에 사진들과 자료들을 옮기다가 우연히 그안에 영화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전 컴퓨터에 있던 영화들을 스스로 기특하게 여길만큼 그쪽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여유로운 어느날 밤, 영화 한편이 보고 싶어져서 외장 디스크안에 있는 것들 중 <건축학개론>을 다시 보게 되었다. 몇년전 그 영화를 볼때는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이란 곡이 좋아 즐겨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 영화를 다시 보니,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한게 어떤건지 더욱 새록 느껴지는 것이다.
감독과 배우, 그리고 스텝들이 공들여 만든 영화를 한번 보는 것으로 끝난다면 왠지 예의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상 처리, 이야기 구성, 그리고 배우들의 표정들 하나까지 순간 순간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느껴졌다.
물론 엉성한 이야기 전개도 있었지만 영화에 빠져드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단지 현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주인공처럼 찌질하게 굴까 하는 의아함 정도였을뿐이었다. 어떤 부분이었냐 하면, 만취한 여자 주인공이 선배에게 부축당해 자취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놀라면서 목격하기만 젊은 남자 주인공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년 아줌마에게는 젊은 남자 주인공의 이런 찌질함조차 이해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있는 영화였다. 그리고 나 같이 외국 사는 사람이 사뭇치게 그리워할 풋풋한 대학 시절의 젊은이들의 모습들이 있었다. 첫사랑에 설레하고 마음 졸이던 순수했던 마음들은 그동안 세상에 휩쓸리고, 휘둘려가며 살기 바빠 잃어버린지 오래고, 그래서인지 그 시절이 더욱 눈물나도록 그리워졌다.
어쭙쟎은 오해로 끝이 나 버린 첫사랑 남녀가 15년뒤에 다시 만난다. 서로 좋아했다는것을 안 순간 둘은 각자의 처소에서 괴로워한다. 아무리 첫사랑의 순수한 마음이 소중한들15년이란 시간을 뛰어넘고, 현실을 거스릴수는 없는 일. 15년전의 흔적들을 어루만지며 그들은 슬퍼한다. 돌아갈래야 돌아갈수 없고, 돌이킬래야 돌이킬수 없지만,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그들의 첫 사랑이 가슴 죄여 오는 것이다. 그리고 왜 « 건축학개론 »인지, 첫사랑과 추억, 그리고 사람의 모든 것들이 있는 ‘집’ 즉 ‘건축’의 중요성을 첫사랑과의 연관지어서 감독은 잘 이끌어내고 있었다.
15년전과 같은 집에 살고 있는 남자 주인공의 엄마, 그리고 15년뒤에 첫사랑을 찾아가, 남은 생이 얼마되지 않은 아버지와 함께 살 어린 시절에 살던 집을 다시 지어달라고 하는 여자 주인공. 추억, 첫사랑, 집은 이렇듯 묘하게 엮이게 마련이다. 그때의 열정도, 그 시절의 싱그러움과 순수한 마음은 지금은 무뎌지고, 닳아 변질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 영화 마지막 부분에도 나도 모르게, ‘’그래 나에게도 첫사랑이 있었지’’ 라는 말이 탄식처럼 흘러 나왔다.
<파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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