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터뷰> 시간 밖의 시간을 찾아서 – 한명옥 작가와의 인터뷰(2)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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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리광장편집부 작성일 23-01-11 03:38 조회 3,048 댓글 0본문
«마르세이유 아르카드전»
-최옥경/ 프랑스 보르도 몽테뉴 대학 부교수-
okyang-chae@u-bordeaux-montaigne.fr

Porte-bonheur, 2016, acrylique sur papier journal 'le monde', 222 x 1461cm, exposition SAM, galerie Art-cade, Marseille
performance porte-bonheur(0,49m2 de
Sécurité), 2009 carton, plume, boule en laine, grelot, galerie municipale de
Vitry-sur-Seine.
When are you happy_ 2014, video interview
132mn, boules en laine.
현재 파리 장 브롤리 갤러리 (Galerie Jean Brolly 16, rue de Montmorency) 비트린에서(7월 30일까지) 한명옥 전시가 열리고 있고, 마르세이유 아르카드(Art-cade, Galerie des grands bains douches de la plaine)에서도 6월 18일까지 그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이 두 전시는 시각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면을 보여주지만, 일상적 소재의 사용, 단순한 모티브의 무한한 반복, 평면의 공간적 설치 등등 한명옥 작가의 작품 성향을 일관적으로 보여 준다. 인간 존재 조건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삶의 근원의 샘을 치고 다시 솟아오르는 그의 투명한 작품 세계로 두 번째의 인터뷰를 통해 더 가까이 다가간다.
최옥경 : 지난 주에는 현재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장 브롤리 화랑의 비트린전을 중심으로 얘기 나눴습니다. 이번 주에는 마르세이유 아르카드 공간에서 전시된 작품들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한명옥 : 이 전시는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것으로 한국 작가 세명이 각기 다른 작품들을 보이는 그룹전이에요. 전시공간이 3.5m × 19m 긴 복도같은 직사각형이어서, 그 조건에 맞춰진 작품을 선별했어요. 2008년 처음 스위스 기 바르치 갤러리에서 선보였던 '부적 Porte-bonheur' 시리즈 중, 르몽드 신문지 115장과 퍼포먼스 우산 ‘봉주르 봉스와르Bonjour bonsoir’ (2006) 그리고 2014년 아미 미술관 레지던시로 초대받아 갔을 때 만든 비디오 인터뷰 ‘우리는 언제 행복합니까?’ (132분)를 함께 보이고 있어요.
최옥경 :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파리 전시와는 달리 빨갛고 파랗고 노란 다양한 색원들이 그려진 르몽드 신문이 벽면 전체에 걸쳐 설치된 것입니다. 이런 작품을 만드신 어떤 계기라도 있습니까 ?
한명옥 : 2004년 팔레스타인과 갈등으로 긴장이 상당할 때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전시하러 다녀왔는데, 그때 파리로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안전'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2001년 9.11 사태이후 그당시 세상은 정말 지옥 같았잖아요. 파리 한국 문화원 도서관에 가서 그냥 막연히 어떤 책을 뒤적이다가 빛바랜 작은 사진이 눈에 띄었어요. 색 방울 열개 늘어뜨린 사진이었는데, 읽어보니 패용부적, 예전 우리 선조들은 어린아이에게 잡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아이 옷에 그런 색방울을 매달았고, 음양중 양의 기운을 가진 색의 에너지로 악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거예요. 아, 이거다. 그래서 방울종에 색실을 총총 감아 천정에서 약 1200여개 색방울을 이부자리 위로 늘어뜨린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방을 만들었고(porte-bonheur 2008), 그리고 세상의 안전을 위해서는 전쟁 재해 테러 사고 소식들로 가득한 '르몽드' 신문지 종이에 아크릴릭 물감으로 여러색깔의 동그라미를 붓으로 그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안전한 세상 르몽드, 그 작품이 현재 마르세이유 아르카드 공간에서 보여지고 있어요.
최옥경 : 지난 번 한국 아이의 돌상에 놓여진 실에서 시간의 모티브를 찾으셨듯이 이번에도 한국의 색방울에서 아이디어를 찾으셨군요.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후 외국에 나와서 근 30년간 작업하는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속에서의 한국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명옥 : 이 질문은 디종 미술학교 시절 오를랑Orlan 교수의 지적을 떠올리게하네요. 86년 가을에 디종미술학교 3학년에 편입되어 치룬 첫번째 시험에 페인팅을 보였는데, 글쎄... 빵점을 받았어요. 한국 떠날 때 특출난 작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한국에서 대학원 회화과 석사과정까지 이수한 사람에게 빵점이라니, 기가 막혀 자존감이 단숨에 무너졌어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생전 처음 만든 조각을 두번째 시험에 보였더니, 이번엔 오를랑 교수가 대뜸 그 분 특유의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질문을 했어요. '너는 한국문화 수출하기 위해 프랑스에 왔냐?' 학교 쫓겨나는 걸 모면하기 위해 급조되었던 작품은, 한국 전통 문살에 한지를 붙여 전구를 켜서 컴컴한 공간에 놓은 것이었어요. 겹바른 한지를 통해 여과된 불빛이 꽤 한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는데, 바로 그것이 내가 자랑하고자 했던 것이었어요. 그 질문을 들은 순간은 어떤 답도 못하고, 또 다시 '빵점'인가... 절망의 눈물만 쏟아냈어요. 다행히 빵점으로 시작했던 디종 미술학교 생활을 90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것으로 끝냈지만 그 질문은 그 이후부터 두고두고 비수로 꽂혀 나의 정체성에 대한 숙고를 하게 했어요.
최옥경 : 최근에 한국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 한 프랑스 철학 교사가 선생님 작품 속에서 ‘한국의 혼을 봤다. 그런데도 그것이 나를 지극히 감동시켰다’라고 쓴 것을 읽었습니다.
한명옥 : 삼십년 지난 지금 내겐, 한국성에 대한 질문은 더 이상 화두가 아닙니다. 나는 내게 충실하면 될 뿐, 그 문제는 내 작업을 보는 사람들에게 맡깁니다. 한 개인이 만든 작품에는 의도하지 않아도 고유의 어떤 것이, 예를 들면 작가의 성장배경이나 작가가 경험한 어떤 것들이 스며있기 마련이에요. 내 작업 속에서 누군가가 '한국성'을 찾아낸다면 반가울 테고, 그렇지 않고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다른 어떤 것을 찾아낸다면 그 또한 나는 기뻐할 거예요. 내 작품 앞에 선 사람은 그의 고유의 경험으로 또 그의 정신적 지적 문화적 수준으로 내 작품을 봅니다. 어쩌면 그 둘간의 소통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전혀 없을 수도 있겠지요.
최옥경 : 장 브롤리 전시 같은 경우는 전반적으로 그다지 색이 눈에 띄지 않는 소재로 작품을 하셨고 공간도 많이 비워두셨는데 마르세이유 전시는 다양한 색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파리의 절제된 공간과 마르세이유의 발랄한 색의 공간은 다른 두 세계인가요?
한명옥 : 물론 한 세계라고 말할 수도 있고, 아니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한 작가가 만든거니까 한 세계가 되는거고, 한 작가가 만들었어도 서로 의도하는 바가 다르니까 독립된 두 세계가 될 수도 있겠지요. 무색톤의 내 작업들에 익숙해진 이들은 아마 이 원색들의 등장에 난감해 할지도 모르겠어요.
최옥경 : 선생님의 작품 세계는 일관성이 있는데도 양식의 제한이 없이 자유롭고 다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데생, 설치, 조각, 영상 그리고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경계를 편하게 넘으시니까요.
한명옥 : 내 안엔 두문불출한 채 실놓기처럼 한가지만 계속하고 싶은 마음과 새로운 주제와 새로운 재료를 경험하고픈 일종의 모험을 찾는 마음이 늘 공존해요. 그런데 한가지 재미난 건, 그런 약간의 모험을 즐기다보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듯 항아리 앞에 앉아 실을 놓고 싶어진다는 거예요.
전에는 설치와 조각 또는 평면 작업의 경계선이 각기 분명해서 각 장르에 몰두되는 시기가 분명히 달랐고 그에 따른 마음가짐 또한 달랐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장르의 경계가 없어지고 있어요. 한가지 주제를 파고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표현방법을 조금 달리한 아이디어와 욕구가 생기죠. 그 대표적인 예가 이번 전시에 보이고 있는 '부적' 시리즈예요. 맨처음 시작된 입체 색방울 설치공간이 신문지에 색칠한 평면 작업으로 또 실제로 내 몸을 사용한 퍼포먼스로 자연스럽게 진전되었어요.
최옥경 : 이번에 전시된 가장자리에 다양한 색방울들이 길게 늘어뜨려진 하얀 우산이 실은 조각이 아니라 바로 퍼포먼스의 결과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명옥 : 어떤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싶단 욕구에 충실하다보면 강한 의지가 생겨서 없던 용기도 갖게 된다는 걸 퍼포먼스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남 앞에 나를 드러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미술의 여러 장르 중, 퍼포먼스는 나와는 상관 없는 표현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헌데, 2004년 부터 '부적' 아이디어에 몰두하다보니, 전쟁터에서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공간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사방 70cm의 두꺼운 종이 판자에 색 방울을 매달아서, 그걸 내 머리 위에 쓰면 색방울들에 뒤덮인 내 한 몸은 색깔의 힘으로 안전하겠다 싶었지요. 그렇게 만든 것에 '0.49제곱미터의 안전지대'란 제목을 부제로 달았어요. 이건 르몽드 신문이 놓여진 실내 공간용이었고, 길거리에선 이미 한사람 용으로 만들어진 우산을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겠다ㅡ아주 자연스럽게 떠올랐지요. 때마침, 2006년에 프랑스 남쪽 세트Sète 에서 퍼포먼스 비엔날레가 있어 생전처음으로 이 퍼포먼스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 2008년 스위스 기 바르치 갤러리와 2009년 비트리 아트센터에서 '부적'시리즈 작업을 보일 때마다 곁들여 했어요. 이번 마르세이유 아르카드 공간에서는 네번째로 '0.49제곱미터 안전지대' 사각판자를 머리에 쓰고 약 15분간 천천히 걸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독립적인 퍼포먼스 고유의 양식이라기보다 부적시리즈를 완성하기 위한 퍼즐 조각처럼 그 일부로 보는게 맞습니다.
최옥경 : 그렇다면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보여진 비디오 작품 ‘우리는 언제 행복합니까?‘는 어떻게 구상하신 것입니까?
한명옥 : 이 비디오 작업도 어떻게 보면, 제작연대나 동기가 '부적' 시리즈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다 해도 이 모든 것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부적을 써서라도 안전과 평화를 유지하고픈, 그 보통 사람들이 찾는 행복이 과연 무엇인가란 주제를 다룬 인터뷰 내용이, 부적을 보완하는 또다른 표현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번 전시에 함께 보여지게 된 거구요.
더 구체적으로 부언하자면, 2014년 초대되었던 충청남도 순성에 있는 아미 미술관은 내가 태어난 마을과 인접한 곳이었어요. 50년만에 고향땅으로 되돌아가면서 문득 난 지금 행복한가? 자문하게 되었고, 고향에서 만난 사람들은 행복할까? 호기심으로 질문을 던졌던거예요. 미술 장르 비데오에 도전하겠다는 의식도 없었고, 그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하려면 영상매체밖엔 달리 방법이 없었구요.
최옥경 : 어떤 사람들을 얼마나 인터뷰 하셨나요 ? 사람들은 결국 언제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는지요?
한명옥 : 미술관에 찾아온 관람객중 108명이 응했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일, 가족, 취미, 친구, 연애등등 일상에서 일어난 작은 일화들을 말했지요. 난 틈틈이 프랑스인들의 행복한 얘기를 녹화하고 있어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국에 보이고 싶은데, 그들 역시 일상의 얘기들을 많이 해요. 행복은 너무너무 작은 것들이라서 사람들은 잘 못 찾는다던 테레사 수녀님 말씀이 기억나더군요.
최옥경 : 두 주간 이어진 인터뷰를 접으며 선생님의 작업에 그토록 화두로 자리잡은 시간의 문제를 비껴갈 수 없습니다. 두 달전인가 크리스티앙 베르스트 아르 브뤼트Christian Berst Art Brut 화랑과 장브롤리 화랑이 공동 주최한 ‘Sur le Fil’ 전 (장 위베르 마르탱Jean-Hubert Martin기획)에 돌덩이 한켠으로 실뭉치가 자라나는 듯한 빠베Pavé 작품을 보이셨는데요, 이 작품도 생성감을 느끼게 한다는 측면에서 어떤 시간성을 드러냅니다.
한명옥 : 길거리에 깔려있던 포석(불어로 빠베Pavé)은 긴긴 세월동안 길거리에서 벌어진 인간의 역사를 아는 증인처럼 내 작업에 초대되었어요. 빠베 한모퉁이에 접착제를 묻혀가며 실을 반복해서 감다보면 의도하지 않았던 형태가 생겨나고, 실을 감는 제스춰가 멈춰지면 중첩된 실이 만든 이 형태 또한 멈춰져요. 나는 가변의 형태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쉼표처럼 멈춰진 빠베의 형태는 상상속에서 실을 더 이어 감는다면 무한히 또다른 형태로 변화할 수 있거든요. 사물도 우리 몸도 마음도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제나 변하잖아요. 그것처럼 내 실 작업은 쉼표일뿐 마침표가 없답니다.
최옥경 : 선생님께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전시 제목으로 자주 쓰시는 ‘잃어버린 시간Temps Perdu’ 이라는 표현에서 잃어진 것은 무엇입니까?
한명옥 : 내게 있어 잃어버린 (Perdu) 것은 얻은(gagnant)것의 역설적 표현이에요. 한명옥의 시간은 뭐냐? 난 물리학자도 또 철학자도 아니라서 논리적인 답변은 못해요. 실을 놓으면서 난 무궁무진 많은 생각을 해요. 과거로 갔다가 미래로 갔다가 또 어느 사이엔 현재로, 종횡무진하지요. 헌데 그러다보면 문득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순간이 있어요. 마치 그건 시간 밖에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 상태를 내가 좋아하는 것 같아요.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다' 라고 흔히 우리는 말하죠. 강물처럼 흘러가면 없어져야 하는거잖아요. 그렇다면 인생은 얼마나 허망한걸까요? 내 항아리에 담겨진 실은 흘러가버린 모든 것, 사라져버린 모든 것, 그리고 아직 다가오지않은 모든 것까지 불러모은 집합체라면 말이 될까요?
최옥경 : 결국 작품을 한다는 것은 선생님의 삶에서 무엇입니까 ?
한명옥 : 하루를 보내기 위한, 가장 적당한 소일거리 ? 나는 매일 매일 뭔가에 깊게 몰두해야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삶이 너무 헐겁고 멋이 없잖아요?
<파리광장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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